-자신의 촉에 충실하라-
나는 몇 해 전부터 유행하는 MBTI검사를 몇 번 해 보아도 INFP가 나왔다. 열정적인 중재자 또는 몽상가라는 특징이 붙어 있고 전 인류의 4%이라는 것을 보면 흔하지 않은 유형이다. (연예인 중 대표적으로 아이유가 있단다.^^) 이것은 나에게 자부심이자 어쩌면 독특한 인간으로 보일 수 있다는 약간의 우려도 된다. 특히 끝에 P(Perceiving)는 나의 특성을 대표하는 면인데 계획적이라기보다는 그때의 느낌이나 상황에 유연하게 변경한다는 것이다.
놀러 가서도 아침 일찍부터 스케줄을 소화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내가 아침에 눈이 떠지면~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그날 아침 컨디션이 좋아 눈이 번쩍 떠지면 해 뜨는 거 보러 가는 것이고, 아침에 나의 컨디션을 보아 도저히 일어나고 싶지 않다면 해 뜨는 것 보는 것은 미련 없이 내려놓는 것이다. 그렇지만 예민한 성격 탓에 같이 가는 사람들의 기분은 잘 맞추는 편이고 일정도 함께 잘 소화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런 예민한 성격 탓에 단체여행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내향적인 성격 탓에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맘껏 여행을 즐기지 못하므로, 편한 몇 명과 가는 여행이 더 성격상 잘 맞다. 항상 선을 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부드럽고 친절한 이타주의자입니다 자는 항상 선을 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부드럽고 친절한 이타주의자입니다. 중
나는 어릴 때부터 촉이 발달한 면이 있다고 나름대로 자부하고 있는데 좋게 말하면 그 상황에서 민감하게 느끼고 알맞게 대처한다고 볼 수 있고 어떻게 보면 상황에 따라 나의 말과 행동이 다르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촉이 좋은 사람은 직관력이 뛰어나서 상황이나 사람의 감정을 빠르게 파악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는데 나는 그 정도의 처세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겉은 도도하고 대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빈 구석이 있어 인간미 있고 다소 엉뚱한 면도 있어 더 좋아졌다고 동료들이 말하기도 한다.
재자는 항상 선을 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부드럽고 친절한 이타주의자입니다.
하지만 이런 촉이 좋게 작동하여 어쩌면 나의 일상이 이런 촉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INFP는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유형인데 이때 에너지가 생긴다고 한다. '촉'은 어떤 상황이나 분위기, 느낌 등을 직감적으로 알아채는 능력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어쩐지 불안할 때는 그런 일이 나랑 연관되어 있어 곧 그렇게 불안했던 이유를 알았던 적도 있고, 꿈에 해석이 현실로 일어난 적도 있다. 촉이 발달한 나는 꿈도 자주 맞는 편이다. 어쩌면 그런 불안이 미리 일어날 일을 알려주려는 거 같기도 하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에서도 딸 애순이가 납치범에게 잡혀 갈 순간 엄마는 직감적으로 불길한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납치범이 딸을 차에 실으려는 순간 가깟으로 위기를 넘긴다. 또 딸 금명이 가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혼미해질 때 엄마는 먼 제주도에서도 이상한 직감을 느끼고 부랴부랴 서울로 향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자주 하는데 작은 에피소드를 풀자면 며칠 전 꿈에서 깍두기를 한 통 담아 조심스럽게 들고 가는데 뚜껑을 안 닫아 불안스럽기는 했다. 아니나 다를까 곧 넘어져서 깍두기를 바닥에 다 쏟고 말았다. 꿈속에서도 그럼 그렇지! 그래도 싸다는 생각이 들어 엄청 후회하며 오던 길을 뒤돌아 오니 깍두기가 비닐봉지에 담겨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기쁜 마음에 비닐에 든 깍두기를 다시 들었다.
그다음 날 직장에서 일과를 어느 정도 마치고 핸드폰을 보니 부재중 전화가 10여 통이나 와 있었다. 그것도 엄마와 동생에게서... 나는 무슨 일인가 놀라서 엄마에게 전화를 해 보니 동생네 가족의 휴가에 맞추어 8월 주말을 낀 짧은 해외여행을 신청해 놓았는데 오늘 오후 1시까지 여행사에 여권 영문이름과 생년월일을 알려주어야 했었다. 오후 1시까지 알려주지 않으면 항공법에 의해 벌금이 인당 10만 원을 지불해야 했다. 여행사와 동생, 어머니에게서 문자와 전화가 왔지만 직장일을 하느라 못 본 것이다. 나의 불찰은 여행사 문자를 끝까지 안 읽어 오늘까지만 보내면 되는 줄 안 것이다. 가족 소통방을 보니 은행에 계시던 엄마가 동생의 연락을 받고 집으로 달려가고 남편과 전화통화를 통해 책상 서랍에서 가깟으로 여권을 찾아 10분 전인 12시 50분에 사진을 보냈다.
내용을 보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미션임파서블 작전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20cm 정도 띄우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들려올 말이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동생은 내 덕분인 줄 알라면 다음에 맛있는 거 사 달라고 한다. 어제 깍두기 꿈이 이러려고 그런 내용이었구나 싶어 신기해서 친정엄마에게 전했지만 은행에서 일보다 뛰어왔던 엄마는 어이구~ 하시고 대꾸도 안 하셨다.
두 번째 오늘 말하려는 주된 촉은 행복을 의식적으로 추구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행복의 순간들을 알아채고 즐기는 능력을 키워보자는 것이다.
말이 없는 첫째가 오늘 외식하면서 어제 가까운 곳에 사는 외할머니댁에 갔다가 아침에 할아버지와 목욕탕을 가고 아침에 해장국을 먹으러 간 것을 이야기했다. 말 수가 워낙 없는 녀석이라 남편도 기뻤는지 "00 이가 이렇게 말을 잘하네." 하며 좋아했다. 다른 집에서는 일상 같은 일이나 우리 집에서는 정말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듯 희귀한 경험이다. 외식하고 돌아오며 첫째가 출입문도 잡고 엄마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원래 어린 꼬마 때부터 "누가 뒤에 들어올 때는 문을 잡고 기다려주는 거야."라고 가르쳤다니 초등학교 때까지 잘해 주어서 손으로 마이크 잡는 시늉을 하며 매너맨 러브스 워먼~(when a man loves a woman 노래 개사)이라는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고 나서 핸드폰을 보며 혼자 들어가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아들이 놓은 문에 맞을 뻔한 적도 많아 혼도 내고 그때 그 아이는 어디 갔나 한탄한 적도 있었는데 오늘 다시 그 아이를 만난 것이다.
발달한 촉은 또 나의 건강 상태도 잘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이번 주말 일요일 충주로 그림책 연수를 다녀오려고 했다. 워낙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이번에 가려고 버스표까지 예매해 두었는데 발도 아프고 요즘 무리했는지 귀도 따끔거리고 방광염 증세도 있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같이 가려던 동료에게 미안하다고 하며 주말 버스표를 취소하였다. 원래 거절이나 취소하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하는 성격이라 아파도 좀 참으면 되지 하며 그대로 하는 성격인데, 이번에는 쉬지 않으면 다음 주에 큰 타격이 올 거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발이 아파 피부과에 갔더니 티눈이 생겼다고 해서 떼내려고 냉동치료를 하고 왔는데 오히려 지금 더 아프다. 멀리 연수 가는 것은 정말 무리였다.
평범한 일상 속에 촉을 세워 행복도 아픔도 거르지 말고 느껴보자. 그러다 보면 나를 더 이해하고, 행복은 더 흠뻑 느끼고 또 다가울 불행도 느끼고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밤이다. 마치 비가 오기 전 제비가 낮게 날고 개미가 이동하듯...
*내향인의 조언 : 촉이란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상태를 섬세하게 살피는 능력입니다. 그러려면 하루 중 조용히 10분 정도의 명상이나 산책을 하며 하늘과 나무 등 자연물을 보며 뇌를 쉬게 하는 게 필요합니다. 촉에게 끌려갈 필요는 없어요. 나쁜 꿈을 꾸었다면 나를 보호하기 위해 주는 신호라고 생각하고 조심하면 됩니다. 또한 기분이 나쁜 감정이 들었다면 지혜롭게 그 기분을 해소할 방법을 떠올려 보세요. 저는 감정 폴더에 각각 담아 놓는 상상을 해요. 이 감정 때문에 다른 일 전체를 그르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일단 해결되지 않는 감정은 마음폴더 한 곳을 만들고 넣어 둬 보세요. 그리고 여유가 될 때 열어보고 현명하게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세요. 그럼 모두 굿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