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by breeze lee Nov 9. 2025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정현종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아이가 플라스틱 악기를 부-부-불고 있다
아주머니 보따리 속에 들어 있는 파가 보따리 속에서
쑥쑥 자라고 있다
할아버지가 버스를 타려고 뛰어오신다
무슨 일인지 처녀 둘이
장미를 두 송이 세 송이 들고 움직인다
시들지 않는 꽃들이여
아주머니 밤 보따리, 비닐
보따리에서 밤꽃이 또 막무가내로 핀다
(제가 대학생 때부터 좋아했던 시인의 시인데 오늘 주제와 관련 있어 초입에 넣어보았습니다.)
지난 추석 연휴가 끝날 때쯤, 중학교 동창의 생일이라 셋이서 함께 한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추석 잘 보냈냐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한 친구가 비가 많이 와서 벌초약속이 취소되다가 드디어 추석 때 형제들이 모여 벌초하였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이렇게라도 모여서 하지만 우리 다음 세대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작게 탄식을 하였습니다. 풀숲에 잠겨있을 묘가 생각났기 때문이지요.
천주교에 다니는 다른 친구는 몇 해 전 돌아가신 시아버님은 천주교 성당에서 운영하는 추모관에 모셨고 시어머니도 그럴 예정이라고 하였습니다. TV에 보니 수목장도 하던데 그런 건 어떨까 이야기하다 생각만큼 나무가 크지 않고, 작은 묘목이라더라 나무가 죽는 경우도 있다더라 이야기했고, 처음 말한 친구의 아버님은 시에서 운영하는 00 공원에 모셨는데 30년이 계약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물어보니 자신도 잘 모르겠다며 한번 알아봐야겠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딸이 하나인데 벌써 대학교 3학년으로 해외여행도 매년 같이 가며 친구처럼 지냅니다. 그런데 최근에 "엄마, 나 엄마 죽으면 어떡해?"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아마 형제가 없어서 벌써 걱정이 되기도 하나 봅니다. 그러자 친구는 '사람이 죽는 건 자연스러운 건대 뭐 슬퍼해. 엄마는 엄마 흔적은 남기고 가는 거 안 좋아해. 다 치우거나 없애주었으면 좋겠어. 그래도 엄마가 그리우면 목걸이로 만들어 가지고 다니던가"하고 담담하게 말했다고 하네요.
아마 딸의 불안함을 없애 주려고 그런 거 같아요.
친구와의 모임 이후 저는 다니는 절의 일주문 준공식이 있어 친정엄마, 남편과 함께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이 절에도 신도들 대상으로 추모탑에 모시기를 원하면 신청하면 되는데, 지난번 제가 서둘러서 어머니께 신청하시도록 하였는데 예약자만 250명이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먼저 돌아가신 분은 앞으로 당겨 주시기도 한다고 합니다. 친정어머니는 돌아가신 후에도 절에 머물며 예불소리 나 법문을 듣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도 작년에 절 행사에서 우연히 스님을 만나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 서둘렀기에 성사되었습니다.
사실 부모님의 죽음이라는 게 상상하기도 힘든 주제라 먼 남의 일처럼 자꾸 미루었으나, 제가 맏이다 보니 마냥 미룰 수만은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이가 점점 지천명에 가까워지고 주변에 부고 소식이 전해지니 남의 이야기 같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푸릇한 잔디 위에 나란히 줄 세워진 추모탑들을 둘러보며 편안하고 좋아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이상했지만 미리 준비하는 건 좋은 거 같았습니다.
준공식을 마치고 나가면서 주변에 또 추모탑으로 유명한 절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이곳은 가족탑이 있어 한 탑 안에 가족의 화장한 유해를 함께 모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가격이 이전에 문의해 볼 때 보다 많이 올랐다며 어머니가 놀라워하셨지만, 그래도 가족탑이라는 게 마음을 끌었습니다. 21명까지 모실 수 있으니 우리 자식들에게도 부담을 덜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평온한 안식에도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곳도 물망에 올려놓고 결정되면 전화드리기로 했습니다. 추모관 투어를 마치고 돌아올 때쯤 좀 노곤했지만 꼭 해야 할 일을 한 거 같아 마음이 좀 편안해졌습니다.
지난 금요일 직장에 연차를 쓸 일이 있었는데, 볼일을 마치고 친정 부모님 점심을 사 드렸습니다. 아버님이 초밥을 드시고 싶어 하셔서 초밥집을 갔는데, 친정어머니가 드시며 "지난번 옆집 명태조림집도 가 봤는데 괜찮았고 윗집 동태찌개 집도 괜찮더라. 다음엔 거기 가자 내가 살게"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언제 그리 다녔누라고 웃으니, 점심때마다 어느 집이 맛있나 모험 삼아 다니신다고 했습니다. 친정아버지가 10여 년 전 교장으로 퇴직하시자 엄마는 세끼 밥을 차리시기 너무 힘들어하셨고, 아버지도 엄마를 배려하셔서 그렇게 자주 다니십니다.
그런데 오늘은 아버지가 시무룩하시더니 " 이제 그것도 내가 운전할 때나 가능할 때 일이지...." 하면서 말끝을 흐리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약해진 모습에 마음이 저려왔습니다. 엄마는 이런 분위기를 상쇄하시려는 듯 " 그럼 그땐 택시 타고 다니면 되지. 모범택시 번호 알고 있으면 딱 집 앞까지 데리러 온대. 우리 언니도 전화만 하면 택시가 집 앞까지 와서 비 하나 안 맞고 탄대"라고 명랑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지난번에 "엄마, 내가 엄마 아빠 드시고 싶은 건 언제든 원 없이 사드릴 수 있으니 말만 하셔."라고 호언장담했는데 부디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을 오랫동안 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젯밤에 누웠다가 과메기가 제철인 거 같아 핸드폰으로 야채까지 곁들인 세트 우리 집 하나 주문하고, 부모님 댁에도 한 세트 보내 드렸습니다. 다음 주에 받아 보시고 "또 우리 딸이 보냈네!" 하고 좋아시며 "뭘 돈 없는데 보냈어"하고 전화주실 모습이 그려집니다.
P.S : 누가 그러더라고요 돌아가시면 어차피 후회할 거 지금부터 후회하지 말고 하나라도 후회할 짓 하지 말자라고요.
정미조(with 이효리)의 '엄마의 봄' 꼭 들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