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인 인사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한 문장쯤은 진심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by breeze lee Jan 14. 2026
얼마 전 고인이 되신 전유성 개그맨의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는 병상에 있을 때 사람들이 찾아와 건네는 위로의 말이 모두 “아프지 말라”는 상투적인 표현뿐이었다고 합니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닌데, 왜 모두 같은 말만 반복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돌아가신 분들께 흔히 쓰는 봉투 문구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대신, 오랜 친구였던 허참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근조 화환에
“허참아, 나는 믿고 싶지 않다.”라는 문구를 적었다고 합니다.
물론 댓글을 보니 의견은 다양했습니다.
상투적인 말 역시 아픈 이를 걱정하고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이라는 의견도 있었고, 전유성의 생각에 공감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 기사를 읽으며 저는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형식적인 말의 틀 속에 갇혀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그의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교직에 있으면서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학부모나 업무상 관계자와 통화를 마치거나 만남을 끝낼 때 건네는 인사,
“고생하세요~”라는 말입니다.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수고하세요’보다 조금 더 힘을 실은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인사를 들을 때마다 힘이 생기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더 무거워지고 처지는 기분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0여 년 전, 남들이 하도 이 말을 쓰길래 저도 헤어지며 “고생하세요”라고 인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네?”라고 되묻는 바람에 몹시 민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모두가 같은 말에 같은 의미를 담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요.
그 이후로 저는 이 형식적인 인사를 되도록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파트 경비원분들을 만날 때도 다소 어색하더라도 의미 있는 말을 하려고 합니다.
낙엽을 쓸거나 재활용품을 정리하시는 모습을 보면
“추운데 수고가 많으세요.”라고 말하거나,
고개를 숙여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합니다.
요즘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권하면 ‘꼰대’라는 말을 듣기 쉽지만,
그럴 의향은 전혀 없습니다.
형식적인 인사는 제 마음을 조금도 기쁘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말이 우리 사이의 거리를 알려주는 씁쓸한 신호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신문 칼럼에서 읽은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뉴욕 센트럴파크 등지의 공원 벤치에는 고인을 기리는 짧고 진심 어린 추모 문구들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정해진 형식이나 표준 문구는 없고, 기부자가 고인의 삶이나 추억을 떠올리며 자유롭게 적는다고 합니다.
달달한 사랑 고백부터 가족의 추억이 담긴 내용까지 갖가지 사연 가득한 이 벤치들은 일명 ‘어덥트 벤치(Adopt A Bench)’라고 불린다고 하네요.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입니다.
짧은 헌사 :
“Loved by many, missed by all.”
(많은 이에게 사랑받고, 모두에게 그리운 사람)
“Forever in our hearts.”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He loved this park.”
(그는 이 공원을 사랑했습니다)
개인적인 메시지:
"The best view in the city, shared with [이름]." (도시 최고의 경치, [이름]과 함께 나누며)
"Remembering our happy times on this bench." (이 벤치에서 우리의 행복한 시절을 기억하며)
"In loving memory of a wonderful wife, mother, and friend." (멋진 아내, 어머니, 친구를 사랑하며 추모합니다)
[미국 센트럴 파크 어댑터 벤치의 추모 문구]이 문구들은 ‘벤치 입양(Adopt-A-Bench)’ 기부 프로그램을 통해 금속 명판에 새겨지고, 이렇게 설치된 어덥트 벤치는 전체 벤치 수 9,000개의 3분의 1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공원은 운영비를 마련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공원에 담으며, 그 혜택은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가는 선순환. 진정한 공공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실천한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남편의 고모님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시아버님의 누나이자 첫째이신 분으로, 여든을 훌쩍 넘긴 연세에도 손톱을 분홍색으로 곱게 칠하시고 하얀 피부에 은발, 분홍 립스틱이 참 잘 어울리던 분이었습니다.
늘 밝은 에너지를 지니신 분이라, 마흔이 넘은 저와 이야기를 나눠도 세대 차이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영정 사진 앞에 섰을 때 조금 놀랐습니다.
한쪽 손을 볼에 댄 채 “나 예쁘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뒤로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바다 물결이 넘실대고 있었습니다.
엄숙한 증명사진 같은 영정이 아니라, 고모님의 성격이 그대로 담긴 사진이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던 중 따님들이 오셨습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남편이 돌아가신 경위를 묻자 긴 투병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이야기가 잠시 멈췄을 때, 저는 명절에 뵈었던 고모님의 모습이 떠올라
“은발에 피부는 얼마나 고우셨어요. 분홍 립스틱이 참 잘 어울리셨는데... 손톱도 늘 예쁘게 하고 다니셨잖아요. 저희랑도 서로의 나이를 잊을 만큼 이야기가 참 잘 통하셨어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따님은 “저희는 늘 공주라고 불렀어요.”라고 미소 지으시며, 잠시 어머니와의 행복한 기억에 잠긴 듯 보였습니다.
증세가 악화될까 암 재발 사실을 알리지 못한 것을 후회하시기에, 최선을 다하신 거라고 조심스레 말씀을 드렸습니다.
잠시 부족한 게 있으면 말씀하라고 하시며 자리를 뜨셨고 그때 앞에 계시던 고모부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쩜 그렇게 말씀을 잘하세요. 고인에 대한 이야기가 참 자연스러웠어요.”
저는 갑자기 들어온 칭찬에 좀 부끄러웠지만 이렇게 답했습니다.
“일부러 준비한 말은 아니었어요. 그냥 그때 기억이 떠올랐을 뿐이에요.
이제는 장례 문화도 조금 달라졌으면 해요.
고인의 생전 사진을 테이블에 놓기도 하고, 결혼식 피로연처럼 행복했던 순간들을 슬라이드로 보여줘도 좋을 것 같아요.
엄숙함만이 추모는 아니잖아요. 가족 외에는 고인을 기억할 시간이 사실 사흘뿐이니까요.”
아직은 우리 문화에서는 조금 파격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속 김감리 할머니의 장례식 장면도 떠올랐습니다.
슬픔보다는 고인의 뜻에 따라 잔치처럼 치러지는 따뜻한 풍경이 인상 깊었습니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중에서]
사람들이 모여 웃고, 먹고, 고인을 추억하는 모습은 또 다른 형태의 이별이었습니다.
올해는 사람들을 만날 때,
한 문장쯤은 진심을 담아 인사하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서가 아니라, 저부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