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과 윤동주 묘하게 겹쳐지는 밤

실패한 정의는 나약해서가 아니다

by breeze lee

오늘 출근길 차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이광수의 「단종애사」 한 구절.

그 문장을 듣다 INFP는 그만 눈물을 흘린다.

눈가의 화장이 번질까 휴지를 꺼내 눈가를 꼭꼭 누른다.


세종은 단종의 탄생을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세종의 첫째 아들 문종, 문종의 아들 세자 정통 중에서도 정통.

세종은 사흘 동안 모든 백성에게 도축을 금하며 세자의 탄생을 축복했다는 이야기가 가장 인상깊었다.

그토록 아끼며, 수복을 빌어 주었던 아이.

하지만 권력의 광풍 앞에서

그 어린 목숨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애달프다, 애달퍼.

세종이 하늘에서 이 모든 일을 지켜보았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조선 6대 국왕 단종 1441년 8월 18일~1457 11월 16일]



오늘 저녁 뉴스에서는 장항준 감독이 출연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12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소식이었다. 자신도 상상치 못한 일에 얼떨떨하다고 했다.

감독은 극장에서 요즘 벌어지는 풍경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함께 울고, 웃고, 분노하고, 손뼉 치는 모습이

마치 영화 Cinema Paradiso 속 장면처럼

예전 극장의 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고 했다. 인적이 드물었던 작은 극장에 사람들이 줄 서있는 진풍경에 극장 관련업자들도 놀란다고 한다. 또 외국인이 이 영화를 이해할까 했으나, 같은 포인트에서 웃더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흥미로운 일이다.

600여 년 전, 불의로 인해 정의가 무너진 사건에

지금의 사람들이 여전히 분노하고 눈물을 흘린다는 것.

외국 언론도 이 현상에 주목하며

한국인들은 불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에 놀란다고 한다. 그리고 덧붙여

단종문화제가 영월에서 59년째 이어오는데 다음 달 24~26일까지이며 장항준감독도 참여한다고 한다.

특히 26일 3 충신 추모제는 단종을 위해 목숨 바친 영월 출신의 충신 엄흥도, 정사종, 추익한의 넋을 기리는 행사이다.

단종의 죽음을 애도하며 아직까지 명맥을 이어오다니 그 진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장감독이 한 기억에 남는 말은 실패한 정의가 과연 그들이 나약해서일까? 오히려 누구보다 정의를 지키려고 한 강인하였던 분이 아니었을까? 이런 상상에서 탄생한 것이 지금 그 영화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 마음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안에 흐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밤, 아들은 논술학원 과제로 윤동주의 시를 읽고 있다.

윤동주의 「서시」를 또박또박 필사하더니

피곤했는지 이내 잠자리에 들었다.

모습을 보며 문득

여리면서도 강했던 두 인물이 묘하게 겹쳐 보인다.

한 사람은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지에서 열일곱에 생을 마쳤다.

또 한 사람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나라를 잃은 민족의 현실을 애달파했고

그에 비해 편안했던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했다.

그리고 결국

독립운동의 길을 택했고

일본의 생체실험 속에서 스물일곱의 삶을 마쳤다.

그러나 단종은 그들에 의한 죽음 즉

사약 을 거부하고 주체적인 방식으로 죽음 택했고,

윤동주 또한 안온한 유학생의 삶을 버리고

이미 짐작할 수 있었던 결말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여리면서 아름답고, 강인했던 두 사람.


오늘 밤

그들의 삶은 처량하기보다

어떤 꽃향기보다 더 깊고 고귀한 향기로

마음속에 번져 온다.

[영월 장릉]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오늘 철수는 버전으로 간결하게 써보려 했는데 간결한 것은 쉽지 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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