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가족과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 갔다. 가족이라야 아내, 작은딸, 나까지 해서 세 명이다. ‘오랜만’이란 단어를 굳이 넣어야 하는 사정이 있다. 전년까지만 해도 딸과 한 달에 한두 번은 영화나 공연을 함께 했다. 하지만 금년 들어서 딸애가 남자 친구를 알게 되어 데이트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나는 뒤로 밀려난 느낌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나이에 남자 친구도 없이 아빠 하고만 다닌다고 핀잔을 주었는데 어느새 상황이 달라졌다. 딸 나이가 삼십이니 결혼에 무심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다행인 것은 사실이다. 물론 약간의 서운함도 있기는 했다. 일주일 전쯤 섭섭함을 문자로 전했다. “요새 연애한다고 아빠는 완전 찬밥이네. 같이 영화 본 게 까마득하는구먼." 금방 답신이 왔다. "응, 이번 일요일에 영화 보러 가자. 단 조조"
오전에는 나하고 영화 보고 오후에는 남자친구 만나 데이트하겠다는 속심을 모를 리 없지만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라 했던가. 드러내 놓고 말할 수는 없어도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영화는 퀸 Queen의 리더 싱어인 프레이 머큐리를 다룬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음악 영화는 음악이라는 기본에 깊이를 담아내기에 영화로 제작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영화는 적절한 조합을 통해 감동의 멋을 표현한 훌륭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주인공 머큐리는 영국령 잔지바르 스톤다운에서 태어나 유년기에는 인도 뭄바이에 있는 영국식 가톨릭 기숙학교에 다녔다. 이 시기부터 프레디라는 별명을 이름처럼 불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흙수저의 성공신화에는 마침표가 필요한데 성공한 후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품을 지녀야 한다. 감독은 주인공 머큐리를 결코 미화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성공 전후해서 나타난 이기심, 탐욕, 방탕 등을 전부 표현했다.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이룩한 결과물에 대해서는 박수를 아낌없이 보낸다. 양성애자를 고백한 다음에도 메리와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풍경은 사랑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비록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음악이지만 새로움에 도전하는 자세는 외연을 넓히고 있다. 불온(不穩)이 역사 발전 일정 부분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면 불온의 자리에 새로움을 대치해도 하등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변방이 지닌 열정, 건강함, 새로움으로 중심에 진입한 하찮은 인간에게 사람들은 몰입한다고 할 수 있다. 1985년 7월 13일 런던 London 공연을 재연한 장면은 감독이 마련한 멜로의 승부수란 걸 알면서도 넘어가지 않을 도리 없어 눈물을 숨길 수가 없었다.
영화 감상을 마치고 아내는 볼일이 있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고 나는 딸과 적은 양의 낮술을 곁들여 코다리찜으로 점심을 했다. 딸의 다음 일정을 위해 식당을 나오면서 조심스레 “그 친구 한 번 볼까?" 했더니 딸은 주저함 없이 그러자고 했다. 그래서 딸의 남자친구와 근처 카페에서 마주 했다.
격식과 절차 없이 혹 사위가 될지도 모르는 친구를 그렇게 처음 상면하게 되었다. 가볍게 만나 즐겁게 얘기하고 멋지게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 옥상에 널어두었던 빨래를 걷으면서 아주 작은 걱정은 그 친구의 선함이 우유부단함과 만나서 자신의 부모와 딸 사이에서 고민한다면, 입장과 처지에 따라 이기적 생각을 하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쓴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