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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신화의 탄생 -

by 글의사

언제인가 언급한 적이 있는데 영화나 책을 좋아하지만 베스트셀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대중들의 인식이나 선호를 신뢰하지 못하고 건방짐과 약간의 선민의식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참을 지난 후 그때의 베스트셀러를 우연히 접해서도 당시 판단에 후회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외 없는 법칙 뒤에 숨기에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이런 오만에 일침을 날립니다. 충분히 가치가 있었죠.


인지혁명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책에 서술된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허구"를 상상하는 능력, 신화, 가공의 접착제 등이 있습니다. 인지혁명은 새로운 견해가 아닙니다. 그동안 여러 동물행동학자, 생물학자등이 다른 유인원에게는 발견되지 않은 호모 사피엔스에게만 존재하는 탁월한 인지능력에 주목해 왔습니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집을 짓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고대광실이 아니라 그냥 소박한 집. 우선 대문과 현관의 위치를 정하고 방, 부엌, 화장실 등의 위치와 크기를 가늠하고, 그 외 창문, 전기, 수도, 하수도의 배선, 배관 타일과 벽지의 색상과 무늬까지 상상을 합니다. 이렇게 머리에서든 종이에 적던 설계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인지혁명이 아닐까 합니다. 설계능력, 설계도는 실제집은 아닙니다. 하지만 집이 될 수도 있습니다. 허구를 상상해서 실제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기능이 사피엔스를 지구의 정복자로 만들었습니다.


사회주의적 인본주의자들은 사피엔스의 유전자에 각인된 "구상(설계)"과 실행에 대해 이런 주장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역사가 발전해서 현대에 오면서 생산성 향상을 위해 고도의 분업화가 이루어지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기계화가 진행되어 구상의 부분은 극소수 사람에게 이관되었고 대부분의 인간들은 실행만 담당하고 있습니다. 유전자에 인식된 설계능력이 거세당하고 오직 지겨운 실행만 강요하는 사회. 노동의 즐거움이 삭제되는 비극적인 사태를 유식한 표현으로 "노동소외"라고 합니다. 이것은 어렵고,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어서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이런 유전자의 본성을 배반하는 시례로 "게걸스러운 유전자"에 대해서도 일부 의학자들은 현대병과 연관시켜 설명하기도 합니다. 즉 우리 유전자는 설탕, 소금이 귀하다는 인식이 각인되어 현재는 넘쳐나는데도 섭생을 조절하지 못해 폭식의 결과로 당뇨, 혈관기계통의 질병이 만연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유전자가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우리의 발전이 빨랐다는 반증이겠지요. 유전자와 현실의 어긋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67페이지에 적혀있는 구절고 인지혁명 부분은 마무리합니다.

"우리와 침팬지의 진정한 차이는 수많은 개인과 가족과 집단을 결속하는 가공의 접착제에 있다. 이 접착제는 인간을 창조의 대가로 만들었다. 물론 우리에게는 도구를 제작하고 사용하는 능력 같은 다른 기술도 필요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협력하는 능력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도구 제작 그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

인간이 이기적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존재라 할지라도 "협력"이 이룩한 기적 같은 결과를 생각하면 이타심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이기적 이타심이라 하더라도 큰 틀에서는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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