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은 비교적 우리에게 친숙합니다 500년의 시차기 있기는 해도 1492년 신대륙의 발견, 1789년 프랑스혁명 등 역사책에서 배운 사실들이 낯설지가 않습니다. 또 생명공학의 유전자 조작, 사이보그, 인공지능 등은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사항이기도 합니다.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이 제국과 자본의 전폭적인 지원, 특히 전쟁과 신성장 동력을 원하는 자본과의 굳건한 동맹으로 성사되었다는 사실은 역사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에게는 이제 진부한 얘기가 되었습니다. 세계의 권력이동이 이루어진 1850 ~ 1850년 제국의 패권이 정점인 시기를 지나 20세기 패권의 논리가 쇠퇴할 무렵, 제국에 부역했던 철학, 사회학, 생물학 등은 엄청난 비난에 직면했지만 "과학"만큼은 예외였습니다. 비록 제국과 자본의 시녀였지만 과학이 성취한 놀라운 성과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국(전쟁)의 시대가 저물고 자본과 과학의 밀착이 새 상품과 새로운 이윤의 창출이라는 무기로 지금까지 순항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의 16장 자본주의의 교리 편을 보면 농업혁명에 통한의 눈물을 흘렸지만 포기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듯이 자본주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합니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저는 현 자본주의체제를 상당한 손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 인류가 동의해야 가능한 일이지만. 이것과 별개로 자본주의가 이륙한 높은 생산성과 어느 정도의 낙수효과에 대해서는 인정해야 합니다. 그 높은 생산성이 어떻게 분배되고 "경제적 파이"가 지속가능할 것인가는 또 다른 차원의 논의 대상입니다. 인류의 발전과정에서 자본주의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역사적 필연성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처럼 말입니다.
"사피엔스"에는 수많은 사실들이 적시되고 신선하고 놀라운 해석들이 즐비 하지만 한마디의 키워드로 정리하자면 저는 "신화"로 읽었습니다. 사피엔스는 신화를 장착함으로 다른 호모들을 제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종이 되어 지구의 정복자가 되었습니다. 농업, 과학혁명을 지나면서 신화를 성숙시키고, 새로운 신화를 창조했습니다 이제 길가메시 프로젝트를 완성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과학혁명을 통과하면서 새롭게 창조한 신화 (허구적 상상력)가 틀린 것이라면, 혹은 아주 잘못된 것이라면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있을 것인가 묻고 있습니다.
7만 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에서 물리, 화학, 생물학, 역사학을 샅샅이 훑은 저자는 철학적 질문을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라고.
우리가 동의한 허구의 위계질서에 대해, 설계도에 대해, 우리를 묶어주는 접착제에 대해 의심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인류의 미래를 위한 것인가라고.
유발 하라리의 문장은 머뭇거림이 없이 단호합니다. 적극적이고 공격적 해석입니다. 저는 이런 태도가 무척 좋습니다. 책이란 어차피 작가의 세상에 대한 해석이고 우리는 그 해석을 다시 걸러내어 나름 해석하는 것이라면 비록 논쟁적 일지라도 색깔이 뚜렷할수록 우리의 생각을 깊게 할 수 있습니다. 기계적 균형이랍시고 비겁함에 숨어있는 흐릿한 색깔은 시시합니다.
유발 하라리는 뛰어난 요리사이기도 합니다 그는 식재료 하나하나를 아주 까다롭게 선별하고 심지어 재료가 재배된 지역을 풍토, 기온, 바람까지 세심하게 살피고 상상합니다. 또 레시피는 알기 쉽고 친절하며 손님에게 따뜻한 배려가 있습니다. 앞에 있는 화덕의 불 세기와 어떤 순간 어떤 상태에서 재료를 투입해야 하는지 머릿속에 이미 정리가 되어 있어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가 완성한 음식은 완벽해 우리 같은 범인은 감히 감별할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먼 나라 찌질한 소시민이 당신에게 시원 블루 한잔 권하면서
"고마워요 유발!!! 당신의 요리는 정말 대단했어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겁니다. "라고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