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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by 글의사

농업혁명에 대해 저자는 한마디로 차갑게 정의합니다.

그것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이며 덫이었다고. 이 신선한 의견에 반박이 쉽지 않은 이유는 그가 제시한 증거물과 상상력이 상당한 개연성과 설득력이 있습니다. 엉뚱한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 세대 전, 즉 우리 부모세대는 자식이 5 ~ 6명은 평균이었습니다. 전쟁의 폐허 위에 한참을 성장하는 개발도상국의 생산력이 뒷받침되기는 했겠지만 국가의 도움 없이 자식의 양육은 각자도생 각 가정에 부과된 명제였습니다. 남자는 노동시간을 따져볼 것도 없이 일기계가 되어야 했으며 특히 여성은 가정, 보육, 교욱을 모두 떠안아야 하는 고단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국가적으로야 노동력이 늘어나고 비례해 소비자가 증가했으니 환호했겠지만 개인은 정말 피곤한 삶이었습니다. 농업혁명ㄹ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생산력의 증가와 인구의 증가가 비례해서 성장을 거듭했지만 농부의 입장과 여성의 처지는 암담했습니다. 우리나라야 그 딸들이 성찰해서 저출산이란 무기로 반란에 성공했지만 인류는 덫에서 허우적거린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현재의 저출산에는 사교육, 양육, 보육 외 다른 부분의 부담도 많겠지만 어머니 세대가 살아온 세월에 대한 반감도 중요한 요소이리라 짐작합니다. 5 ~6명의 자녀를 생산하고 키우면 거의 20년은 자신은 실종되고 노역에서 시작해 노역으로 끝나는 인생이 아니었을까요. 어떤 미사어귀로 여성을 칭송해도 그건 거짓말, 사기. "화양연화"가 있기나 했나요.


농업혁명이 역사상 최대의 사기이고 덫이라 해도 인류는 이미 돌아갈 다리를 불태워 버려서 그냥 굴러갈 수 박에 없었습니다. 생산력과 인구가 폭발적을 증가함에 따라 몇 백 명 단위의 공동체에서 천만, 억의 사회구성체로 발전하면서 이전의 신화는 낡은 것이 되었고 한층 세련되고 정교한 접착제가 필요했습니다. 소박한 집을 짓는 설계도와 몇 백 층의 롯데월드의 설계도는 당연히 달라야 하는 것처럼.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법, 인권, 화폐, 제국의 비전, 종교 등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도 함께.

저번에 자본주의를 너무 몹쓸 놈 취급하지 말자고 얘기했던 것이 기억나는데 제가 평소에 자본주의에 대해 날 선 비판을 많이 했지만 큰 틀에서 바라보는 소회를 간단한 소설로 풀어보면 우리 윗세대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 세대를 염두에 두면 돈은 제법 벌었지만 가부장적이고, 마초, 파쇼적인 아버지가 있었다고 합시다. 해서 바람도 피우고, 자식, 마누라에게도 폭언과 폭행도 하고 말이죠. 하지만 어찌어찌해서 자식인 나를 대학까지 보내주고 괜찮은 밥벌이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뒤돌아보면 상처도 있고 아버지로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 긍정할 수 없는 부분이 많지만 혈육이라는 장막을 잠시 걷어 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견지하면 개인적 자질도 있겠지만, 시대적 상황이나 문화적 정서, 악착스러운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해서 이해해 줄 면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제 내가 아버지가 되어 사회적, 문화적 정서도 많이 달라졌지만 아버지가 물려주는 유산도 어느 정도 있고 살만하니, 교사로 아버지의 삶을 성찰해 부인과 자식을 사랑하는 따뜻한 새로운 아버지로 거듭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희망"입니다.


농업혁명의 새대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역사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p342에 있는 필자의 견해를 적으면서 농업혁명에 대해 마감합니다.

"그러면 왜 역사를 연구하는가? 물리학이나 경제학과 달리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시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서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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