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훔친 미술

by 글의사

미술에 대해 잘 모릅니다. 아! 수정하겠습니다. 잘이 아니고 그냥 모릅니다. 이것은 겸양이 아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에 관한 책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얘기한다는 것은 난감한 일입니다. 해서 구체적 작품에는 실력이 없으니 손을 놓고 다른 시건으로 접근하려니 기시감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우리가 가볍게 흔히 접할 수 있는 미술, 음악, 문학의 수용이나 해석에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문학은 문자라는 매개 수단이 있기 때문에 미술이나 음악에 비해 해석의 폭이 비교적 협소하다고 할 수 있고 온유, 상징 등으로 이루어진 미술, 음악은 해석의 진폭이 크고 불친절한 분야라 할 수 있는데 또 미술과 음악을 한 묶음으로 취급하기에도 무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음악은 즉물적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미술이 가장 난해하고 오만한 장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문학이 문자라는 중개인으로 이성적이어서 학습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고 한다면 미술, 음악은 직관적이어서 -물론 직관도 경험이나 학습에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지만 - 각자 타고난 유전자가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합니다. 즉 우리 모두는 타고난 예술적 떨림판의 크기와 깊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습으로는 메울 수 없는, 예술적 떨림판이 충만하다 하더라도 여러 층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창작자, 평론가, 일급독자 예를 들어 유홍준, 오주석, 손철주 등이 설명하는 미술에 대한 평을 들으면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지점을 귀신같이 짚어내고 자기 나름의 새로운 시서니으로 바라보는 관점에 감탄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안목에 사람들이 인색한 것이 불만입니다 시샘이나 시비할 일도 전혀 없는데 도 말입니다. 그냥 쿨하게 우리보다 우수한 떨림판의 해석에 고마워하고 즐거움을 느끼면 되는 것이고 또 자신에게 그들과 다른 분야에 좋은 떨림판이 있다면 그것으로 이웃과 소통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없으면 말고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자신의 유전가가 그런 것을. 이것이 사람의 품격이나 우위를 판별하는 절대적 기준도 아니잖습니까. 사람에게는 호기심, 탐구심, 명예의 욕망이 있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이지만 건널 수 없는 강도 있는 법이니 너무 연연하며 안달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흘러가자는 말입니다.


말장난을 잠깐 하자면 책의 제목이 "시대를 훔친 미술"입니다 훔친다는 것은 주인 몰래 물건이나 기태 재화를 취한다는 듯을 것인데 새대를 훔쳤다면 과연 시대의 주인은 누구인가요? 일반 백성일까요? 그들은 한 번도 권력을 잡고 시대를 운영해 본 적이 없기에 주인이라 칭하기는 무리가 있는 것 같고 왕, 귀족, 종교지도자, 자본가가 주인인가요? 그들은 비록 기득권을 가지고 시대를 주도했지만 사회를 이끌어가는 생산에 복무한 적이 없기에 주인이라 하기에는 탐탁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럼 과연 시대의 주인은 누구란 말인가? 그냥 우연처럼 시대를 살아내었던 모든 사람과 사물이 주인이라면 시대란 공기 같은 공동체여서 주인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는지. 해서 훔치고 말고 가 없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시대를 훔쳤다는 표현은 언뜻 보면 멋있는 것 같지만 이런 형용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마치 옛 유행가에 전체적 이음새는 엉망이지만 근사한 구절을 이어가는 것처럼. 쓸데없는 말장난이 길어졌습니다.


시대의 세례를 받지 않은 철학, 문학, 미술, 음악 등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것이니 재론할 필요는 없는 것이고 어찌 되었던 수많은 역사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고 강조할 것인가는 필자의 가치관에 속하는 문제일 뿐 아니라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지은이가 훔친 미술과 시대는 "모범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상식에 어긋나지 않고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반듯함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읽은 재일동포 학자 "서경식"의 책은 전혀 다른 방향과 시선으로 시대와 미술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조금 심심했다고 할까요. 갑자기 작고한 박완서의 수필이 생각납니다. 정확하게 기억할 자신은 없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책장이 늘 부족하는 것입니다 빡빡하게 꽂은 것은 기본이고 저만해도 이중으로 정리하기도 합니다. 이런 형편에 박완서시가 이사를 하게 되어 지하실에 따로 널찍한 서재를 마련할 수 있었나 봅니다. 오랜만에 여유로운 책장이어서 책이 삐딱하게 서있는 모습을 보고 책이란 본래 삐딱한 것인데 이제 본모습을 찾아준 것 같다 덜 미안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예술의 본성은 불온함 (삐딱함)에 있다고 정의하고 싶은 무식한 저 같은 사람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런 두서없는 감상문을 언제까지 올려야 하는지 싶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아 부질없음이여!!
















































































작가의 이전글채식주의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