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라의 네덜란드 단기유학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어진 어느 날 나에게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외국에서 그것도 생소한 네덜란드에서 6개월간 단기 연수를 하게 되는 기회가 주어졌다. 곧 있으면 정년퇴직을 얼마 안 남겨 둔 시점에서 인생을 돌아보고 요즘 퇴직 후 인생이 길어 그 기간을 설계하고 보내는 첫 세대라던데, 한번 미리 연습과 설계를 해 보자는 심정으로 출발하였다.
6개월간의 유럽에서의 생활이니 여행도 즐기면서 가볍게 지나가는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하며 마냥 신나 하며 그리 큰 두려움 없이 떠나 왔다.
그런데 웬걸 도착한 날 밤부터 어디 우주 한가운데라도 떨어진 양 두려움이 엄습해 오더니 설렘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가슴 한편이 싸해지는 경험이 찾아왔다. 역시 나이 50 넘어서 무리였던 걸까?
나는 출발 시 목표를 항상 그렇듯 3가지로 어렴풋이 정하고는 왔다.
우선, 네덜란드는 언덕이 없을 정도로 평지라 자전거 천국인 나라이니 자전거를 타고 사방을 돌아다녀 보자였다. 네덜란드로 연수지를 확 정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고 거주지에서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 40 킬로 거리를 왕복으로 다녀오기도 하며 어느 날은 체력의 한계점을 느껴 보기도 하였다. 네덜란드의 겨울은 우기라 돌아오는 길에는 진눈깨비가 흩날려 직경 1센티는 되어 보이는 얼음에 얼굴을 맞아가며 장갑 낀 손으로라도 가리고 오다 보니 ‘ 비는 와라, 나는 자전거 탄다’ 하는 네덜란드인들조차 자전거를 멈추고 잠시 비를 피하는 모습을 보고, 아 지금 이 정도 진눈깨비는 흔한 건 아니구나 하고 멈춰 서 조금 잦아들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한국에서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달리던 속도를 생각하면 안 된다. 처음이라 길도 익숙지 않고 시간이 배는 걸리는 듯했다. 구글 맵이 알려 주더라도 중간중간 이 길을 말하나 저 길을 말하는 건가 서서 고민하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한번 잘못 들어서면 되돌아오느라 시간을 꽤 낭비해야 하는 경험이 준 그나마의 요령이다.
도착한 다음날은 거주등록과 허가 신청을 하느라 시청과 이민센터들을 찾아다니고, 바로 그다음 날 20킬로로 나오는 유트랙을 목표로 갔다가 3시간이 걸려 간 기억을 떠올리면 어제는 유트랙보다 더 먼 곳을 1시간 조금 넘어갔으니 제법 네덜란드에서 라이딩하기 목표는 달성됐다고 해도 되겠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보면 꼭 강가를 끼고 가게 될 때가 많은데, 낮은 땅인 네덜란드의 물과의 사투와 정복의 결과이겠지만, 땅 위에 자전거 길을 호수를 끼고 간다는 느낌보다는 물 위에 자전거 길이 나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많다. 처음에는 아슬아슬 저 강에 빠지면 어쩌나 염려하며 다니던 길이 이제는 이 정도 폭이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것쯤은 알게 되었다.
나의 두 번째 목표는 외국에 나오는 이 누구나 그러하듯 영어 듣기 향상이었다. 도착하고 어느 정도 적응한 지 2주가 되던 날은 유튜브에서 유익한 듣기 프로그램들을 여러 개 찾아내어 대략 2주 동안은 열심히 구독한 듯하다.
빨간 모자의 현지영어 구사력을 흡수하고 최수진의 모닝 뉴스를 매일 아침 그리 열심히 듣다 보면 돌아갈 시점에는 내 목표가 달성되어 있을 것도 같았다. 네덜란드는 한국과 반대로 겨울이 우기이다. 1월 한동안 안개 끼고 비 오고 우중충하던 날씨가 한 2주간 계속되어 어쩔 수 없이 열공하던 내 모습은 어느 일 주간의 화창하던 의외의 낮은 땅에서 맛보기 힘든 해님 얼굴 마중 나가느라 저 멀리 사라져 갔다. 그 후 약 한 달이 지난 이 시점에서는 짬이 나더라도 영어 유튜브보다는 다른 채널을 열심히 탐닉하는 내 모습에 ‘ 아 영어 듣기가 머 6개월 한다고 향상되겠어~~’ 하는 반 체념 상태로 넘어간 듯하다.
아 해님 얘기가 나오니 생각나는데,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집에는 2살 5살의 형제애기들이 같이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는 2살 이안이가 나를 ‘해님, 해님’하고 부른다. 이안이 엄마의 해석에 따르면 ‘형님’의 변형인가 하는 설을 제시하는데, 내 생각에 떠오른 것은 엄마는 자그마한 체구인데 그에 비해 나는 커다라니 아기가 언젠가 접한 달님 해님 동화에서 나를 해님으로 규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어찌 됐던 진짜 이유는 나중에 이안이가 크면 만나서 한번 물어보기로 하자.
해님 얘기로 어물쩍 핑계 대고 넘어가며 나의 영어 듣기 열공은 끝이 난 것임을 ‘작심삼일을 계속 또 반복해서 꾸준히 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잖아’ 하고 아무리 다그쳐도 다시 불지 펴지지 않겠거니 하면서 ‘이쯤에서 포기도 용기야’ 하는 소리가 더 커져 있음을 눈치채셨으리라.
유럽 한복판에 있는 네덜란드에서의 6개월 단기 연수라, 누구나 유럽여행을 꿈꾸지 않을까, 맞다 나의 세 번째 목표는 유럽 ‘샅샅여행’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사를 하고 주민센터에 가서 전입신고를 하면 바로 처리가 되는데, 그와 비슷한 거주등록이 도착 바로 다음 날 가서 신청했음에도 다음 주에는 오겠지 하고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잊혀 가던 어느 날, 지금 다시 찾아보니 정확히 도착한 지 한 달이 되던 날 우편으로 거주번호가 왔다.
지금 생각하니 기죽어 오매불망 기다리던 때와 달리 갑자기 내 우편물이 도착했다는 그 소식에 너무나 반가워 흥분하고, 머리에 떠오르면 바로 실행하고 있는 나의 습관대로 나는 그날 밤부터 현지 은행 계좌 트기, 네덜란드 기차권 신청하기 등의 후속 조치에 밤늦도록 매달리며, 혼자 하는 처음 유럽 여행이 걱정되어 주위의 추전대로 여행 카페에 가입하여 동행 구하기에 나섰다.
한 카페는 가입자 수가 적어 잘 안 구해지는 것 같아 2일 후에는 제일 큰 그런 종류의 카페에 들어가니 가입자 수가 5배라 동행 구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신나게 나는 또 여기저기 대화방에 끼고는... 그 큰 카페에 가입한 바로 그날 ‘입금 동행사기 피해’를 입게 되었다.
피해를 입은 줄도 모르고 천진하게 그 방에서 수영복도 준비해야 하냐고 묻는 나에게 또다시 그럼 이런저런 프로그램도 하게 또 얼마를 더 부치자 하는 말에, 그건 추가금이니 만나서 드리겠다 하니 안된다는 말에 갑자기 싸해지며 뒤늦은 눈치를 챘다는...
그걸 깨달은 밤은 하루 꼬박 지새우며 영사관에도 전화하고 한국사이버수사대며 국민신문고에 안내대로 접수하였고, 한 이틀 후에 정신 차리고 보니 여기 와서 마음 편해 늘었던 몸무게 3킬로가 원상복구 되어 있더라는 슬픈 이야기 정도로 마무리해야겠다.
두 건의 여행동행을 진행했던 터라 나머지 한건도 의심이 되어 여러 가지를 확인하던 중 파리여행을 하셨다고 하시니 에펠탑 배경으로 된 사진이라도 한 장 보여 주셨으면 한다 하니 느닷없이 다른 동행 구하시겠다던 포르투갈 한 달 살기 팀 덕분에 나는 이미 비행기 티켓팅을 한 지라 다음 주면 포르투갈 첫 여행을 떠난다.
내가 동행을 구한 가장 큰 이유는 ‘혼여’의 두려움과 외로움도 있었지만, 네덜란드의 익숙해진 일상을 훅 떨치고 또다시 타지로 여행을 가지 않을 것 같은 나에게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어쩠던 강제성은 부여되었다.
이 사건은 평생 큰 규모의 조직에서 일정한 룰을 따르는 일을 해오던 좁은 세상에 살던 나에게 이 넓은 세상은 쓴 맛을 보여 주었지만, 그것도 나의 인생 후반 준비에 꼭 필요한 수업이었다는 과거지사의 교훈으로 벌써 자리매김되어 있다.
어느 정도는 성공한 자전거 타기, 작심이주로 실패한 듯한 영어 듣기 공부, 강제성 부여는 성공한 이제 시작하려는 유럽 곳곳 여행으로 나는 이렇게 인생 중반 커튼을 한번 닫고 4개월 후 그리운, 타향살이에서 깨달은 소중한 내 고향 한국에서 막을 다시 올리며 남은 인생은 자전거로 한반도 곳곳을 누비며 가끔은 외국인을 만나게 되면 내 장기인 내 멋대로 하고 싶은 말하기 엉터리 영어로 안 들리는 대로 대화도 하면서 한국어도 조금 가르쳐 주고 있으리라 막연하게 설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