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다정함을 원하면 안 되는 사람들

랄라의 유럽부부 완패기

by 룰랄라

‘대기업에 다니는 서울자가에 김 부장이야기’에서 류승룡이 명세빈하고 손잡고 황톳길을 걷는 게 김 부장 새로운 인생 승리의 결말인 걸 보고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으니 그 드라마가 히트를 친 거겠지? 저 장면을 달성할 수 있는 부부가 의외로 많진 않겠어 속으로 생각하며 나는 그 모습이 너무너무 부러웠다.


아주 잠깐 네덜란드에 거주할 때였다. 머리도 희끗한 중년부인이 나와 같이 로테르담과 유트렉 중간쯤의 우든기차역에서 내린다.


여긴 우리나라처럼 시술이며 염색을 공들이지 않기에 생각보다 나이가 젊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자전거주차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그 부인이 마중 나온 할아버지와 조우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서로 엄청 반가워하더니 안고 뽀뽀를 한다.

출퇴근 마중인 것 같은데 저녁에 나를 반기는 강아지가 생각나도록 또 그럴 때마다 내가 '누가 보면 이산가족 상봉하는 줄 알겠네 ~~' 하고 싫지 않은 인사말을 할 때처럼, 저리 환대받고 사는 저 부인은 참 좋겠다 생각했다.

우리나라였으면 아니 저 커플은 불륜이네 확신받고 저마다 다음 모임에서 어느 불륜커플이 나이도 들어서는 훤한 길거리서 그러고 있더라고 떠들 텐데 ...

우린 부부끼리 저리 표현하고 살면 동네에 패가망신살이라도 뻗치는 역사를 갖고 있는 게 아닐까?

나도 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


벨기에는 네덜란드 인접국이라 당일치기로 대표하는 세 도시를 다녀오기에 딱 좋아서 각각 삼일에 걸쳐 브뤼셀, 겐트, 브뤼게를 여행하였다. 우리나라 서울의 전철처럼 거미망 같은 기차가 네덜란드 전역과 벨기에까지 촘촘히 뻗어 있다.


3번째 가장 먼 도시 ‘브뤼게’는 멀어서 안 되고 조금 간단해 보이는 ‘겐트’ 여행에서는 기차 앱을 보며 예정에 없던 플랜더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와 파트라슈의 도시 ‘안트베르펜’까지 충동적으로 끼어 넣으며 중간중간 우리가 3호선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듯이 능숙하게, 맞는 플랫폼을 찾아가서 목적지 도시행 기차를 잘도 골라 탄다.


내가 느끼기에도 능숙한 태도가 보였는지 프랑스 필 나는 여자애가 자기 앱을 들이밀며 이 플랫폼이 맞냐고 물어본다. 하하, 유럽에서 서양애가 동양애? 한테 길을 묻네.


다음 역에 내리기 위해 기차 중간칸에 서서 기다리는데 앞에 프랑스 가족 다섯이 있다. 초등학생들로 보이는 2녀 1남 3남매를 둔 키 작은 아빠와 훤칠한 엄마가 곧 있으면 도착인데, 갑자기 포옹을 하더니 키스를 한다.

연애하는 청춘남녀가 따로 없다.

내 눈에 띈 것은 아이들의 머 새로울 것도 없다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왜 사랑 호르몬은 어느 나라에서는 3년 만에 사라지는 걸까? 설마...

혹시 이 나라에선 여자가 힘들어 보일 때 저리 안 하면 남자가 조리돌림을 당하는 풍습이 있는 게 아닐까?


나 홀로 여행이라 그런지 유독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눈에 자주 들어온다.

특히나 부부단위 여행객 천지다.


한때 우리나라 카페에 나이 지긋한 분이 앉아 있다고 젊은이가 나가라고 한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다.

기사에서 유럽 젊은이들은 오히려 비싼 카페에 잘 못 들어가고 연금수혜자들인 노인들이 점령하고 있다고 보았던 듯하다.

그 말이 맞는지 여행객 대부분이 노부부들이다.

참 부러웠다.


내가 머무는 홈스테이 집 부부의 시부모님은 날씨 좋은 봄이 오니 프랑스를 거쳐서 스페인·포르투갈로 렌트를 해서 한 달 여행을 가셨단다.

거의 매년 그렇게 가신단다.

참 부럽다.


혼자 여행을 하며 알게 되었는데 나는 '혼여'를 하느니 안 가겠다고 결심할 만큼 혼여 체질이 아니다.

이 좋은 풍경을 감탄하며 얘기할 사람이 없고 그 맛난 음식을 같이 먹으며 행복해할 동반자가 없으니 맛도 안 나고 행복해지지도 않는다.

여행에 참조하기 위해 여행유튜브를 보다 보니 거의 혼자 아니면 부부가 많다.

친구나 동료와 그리 긴 여행을 가기엔 기간과 여정을 맞추기도 힘들뿐더러 성향차이로 의견일치를 보기엔 서로에게 너무 힘겨운 감정노동이 된다.


부부는 경제공동체며 서로 양보해도 그리 큰 손해 날 일도 없는 사이다 보니 긴 여행도 할 수 있고 한달살이도 가능하다.


90년대에 처음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신혼여행을 동남아로 가는 게 유행인 시기였는데 그 당시에도 남편의 동의를 얻어 태국방콕에 가기가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남편은 비행기 타는 게 너무 싫으시단다.

항상 남이 싫다면 거절당하는 게 싫어서 두 번 권하지 않는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에 한 번 오지... 너무 외롭다...”


단칼에 ”아니야. “


우쒸, 괜히 한번 말해 봤다..,

알면서도 혹시 모르는 배려 깊은 말이라도 듣고 싶은 마음에...


도리어 가족방에서 오가는 대화를 보더니 우리 아들이 "5월 연휴 끼고 3일 연가 가능하니 내가 갈까? " 한다.

바쁜 아들 붙잡고 머 모자지간에 여행할 일 있나...


”아니야, 괜찮아... “


젊었을 때부터 부모님 돌아가실까 봐 해외여행은 못 간다고 노래를 불렀던 남편의 가사가 생각이 났다. ‘하물며 지금 80대 부모를 두고 어찌 오겠어.’

키스하는 부모 대신 헌신하는 어머니만 보고 자란 남편이다.


쉬운 나를 설득하고 섭섭함을 씻어 낸다.


가정단위 생활이 너무 당연한 그네들이 정말 부러웠던가 보다.


내가 미쳤었다.


네덜란드에서 돌아와서 갑자기 일주에 한번 토요일 점심이나 일요일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을 했다. 가기 전 내 일기장 목표에 ‘한 달 한번 가족식사하기’ 쓰여 있는 걸 보니, 지금 생각하니 감상적 깨달음 후 내가 너무 ‘급발진’ 했다.


나 혼자서 가족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돌아와선 화목한 가정을 위해 밥이라도 일주 한번 먹자를 가열차게 실현한다고 스스로 뿌듯해했던 거 같다.


화목한 가정의 정의가 꼭 한 달에 한번 밥을 같이 먹는다는 아니란다. 그냥 밥 같이 안 먹는 그냥 그저 그런 가정일 수도 있는 건데...


왜 갑자기 ‘그저 그런’에서 ‘화목한’으로 떡상하고 싶었던 건지. 외로웠던 게지.


내가 정의 내리고는 내가 우리 가정은 일주일에 한 번도 밥을 같이 안 먹는 해체가정이에요.


상담 중에 내뱉은 나의 말이 우리를 정말로 해체시켰다.


가족이 원하는 건 성과가 아니라 저녁 한 끼, 대화 한 마디였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 김 부장의 ”돈 열심히 벌어다 줬잖아 “ 가 통하지 않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온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는 삶을 인정하는 결말 “내가 가진 건 많은데, 기대서 울 데가 없더라.”


다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내 편은 없었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김 부장의 엔딩에서처럼 만나야 할 부부가, 너무 먼 곳에 있어 도저히 어깨가 기대어지지 않는 드라마와 다른 현실이 슬프다.


내 또래 정도인 여가수가 신혼 초에 부부싸움을 하고 돌정도 된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갔는데 그 남편 되시는 분이 그냥 그러고 말아서 이혼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으며 가슴이 싸했었다. 나는 그때 직감적으로 알았던 거 같다.

우리 집 남자 같은 사람이 거기에도 계시는구나.


요즘 직장동료와 점심을 먹다가 지금은 요리도 90프로는 남자인 자기가 한다며, 신혼 초에는 사람 만나는 문제로 부인이 승리해서 일주 한 번만 만나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단다.

부인이 싸우면 갓난애 기를 두고 그냥 친정에 가 버렸단다.

우아 머리가 좋은 건가. 애를 두고...

자기 부인은 못돼서 이길 수가 없다며 애들 다 크면 졸혼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결혼생활 과정에서 이긴다고 좋아할 것도 없겠다. 그 승리가 언젠가는 역풍을 맞이할 수도 있겠구나.

역풍을 맞는지 먼지 눈치 못 채는 이도 있을 수 있겠다.

자기가 누린 게 승리가 아닌 너무 당연한 이치라 확신하고 둘러 보지도 않는 사람도 있다.


우리 집은 거꾸로 남편이 승리했던 거 같다.

대기업 술상무도 아니니 집에 좀 오라며 한참 싸울 때, 일언지하에 남편은 본인은 술을 먹어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며 싸움도 거두절미하고 타협 없이 그 생활을 확정했다.


나는 참 스킬이 부족한 사람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에너자이저이신지 그렇다면 건강하시다고 좋아하며 셰어하우스를 공유하는 것 같은 그저 그런 가족에서 만족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밥 같이 먹는 가족 만들자고 가족을 해체시켜 버렸다는 웃픈 이야기를 쓰고 말았다.

작가의 이전글9) '푸드덕' 날고싶은 펄떡이는 물고기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