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직업전환기 생존의 시간들

랄라의 육아수난사

by 룰랄라

나는 그나마 경단녀 관점에서는 유리한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전문직의 강점은 언제든 쉬었다가 다시 면허를 살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변을 살펴보면 그래서 심심치 않게 애들 키울 때 육아에 전념하다가 중학생쯤 되면 다시 직업전선으로 나오는 친구며 면허자들을 볼 수 있다. 참 현명하게 잘 사는 듯하다.


난 유돌이가 없는 건지, 내가 집에 있는 건 전체적으로 봤을 때, 효율적이지 못한 국가적으로 인력낭비라며 일치감치 “난 절대로 일중독은 아닌데, 출퇴근 중독이야!” 하며 그나마 아이를 키우며 다니기에 적합해 보이는 공적인 직업을 선택했다. 수입이 적더라도 9-6시간 대만 근무해도 되고, 퇴근 후엔 가정에 충실할 수 있는 직장 말이다.


내 능률이 회사에서 뛰어나다는 의미가 아니라 집에 있는 나는 마냥, 당최 애들을 명목으로 한 게으름뱅이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들 초등학교 저학년 때 혹시 우리 아이가 영재일지도 몰라하고 집에 5개월간 있어 보니 다시 한번 국가전체로 봤을 때 내가 있을 곳이 집은 아니라는 답을 얻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요즘 MZ 결혼 적령기 남자들이 볼 때는 환상이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아니 오히려 그냥 남자가 집에서 육아휴직하는 걸 원할 수도 있으니 그냥 돈 많이 벌어 오는 직장을 가지라고 할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유튜버 중에서 두세 명이 케미를 보이며 서로의 다른 지적 분야를 건드려 주는 진행 방식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조승연과 미키김의 여러 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스토리텔링을 즐긴다.


어느 날인가는 특집 느낌으로 미키김과 그 부인이 나온 거다. 미키김은 글로벌 브랜드 전략가로 월트디즈니랜드 전략 총괄 부사장을 역임한 글로벌 인재인데 미국의 어느 대학 시절 만났다고 하는 걸 보니 부인 또한 남편 못지않은 커리어의 엄청난 미인이라 그 둘의 얘기에 푹 빠져 들었다.


미키김은 나보다 2~3살 정도밖에 적지 않은 거의 동세대라 할 수 있는 나이대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신혼이 미국이라 그랬는지, 부인이 1년 육아휴직 후 직장에 복귀하도록 본인이 육아휴직을 해서 지금 중학생인 아이와 너무나도 좋은 시간을 보냈고 아주 좋은 관계가 그 시절 덕분에 형성되었다며 흡족해했다.


부인의 인터뷰 내용 중 인상적이었던 건 본인이 아이에게 좋은 양질의 육아를 제공하고 싶은데 본인이 나가서 얼마를 벌겠다고 직업을 이어 나가야 하나 고민하는 와중에, 가장 큰 결정타는 시어머니의 경단녀가 되지 말라는 진심 어린 조언이었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르는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믿음직한 분(옆의 남편을 가리키며)이 해 주시니 안심하고 다시 직장에 나갔다고 한다.


아, 미모도 미모지만, 나와 비교도 안 되는 학벌과 집안 배경들을 가지고 있는 듯한 분위기인 건 알겠는데 가슴 한편이 싸해지도록 부러웠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그냥 지는 게 아니라 백기투항 정도의 느낌이랄까?


오버랩되는 나의 직장 지키기 수난사...


나보다 한 10년 앞선 여성 분들은 또 결혼하면 직장에서 관두는 걸 기정사실로 알고 있었다고 하니 난 그에 비해 감사해야 하는 거겠지?


두 달의 산휴를 시가에서 보내고 불은 몸에 맞는 옷이 없어 백화점에서 옷을 한 벌 구매해서 입어 보는데 옆에서 보시던 시어머니가 “ 너는 이 어린애를 두고 나가는데 신나니?” 정말 궁금해하면서 물어보시던 그 표정이 떠오른다. 순간 애가 분유에 적응을 못 하면 어쩌나 하던 나의 마음은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아싸~~! 나 출근한다 속으로 오히려 쾌재를 불렀다.


어렵게 직장을 일 년쯤 다닌 시점에 활동적이시던 어머니가 더 이상 우리 아들을 봐줄 수 없겠다고 선언을 한 날, 동네 어린이집이 한돌부터는 받아 준단다며 알아보는 내 앞에서 시아버지와 남편은 당연히 내가 관두고 애를 봐야 되지 않겠냐는 압박을 가했던 거 같다.


생각해 보면 난 애 키우기 좋은 직장을 선택한 거였는데 그때 무슨 이유가 직장에 있었던 건지 왜 육아휴직 등의 카드는 활용할 생각을 못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정년 후 집에 계시던 그리도 손자를 매일 보기를 원하시던 아버님은 왜 어머니를 도와 반 정도의 육아를 할 테니 당신이 계속 좀 봐주구려 하시던가, 무슨 초상이 난 듯 눈물 흘리며 본인이 관두고 애를 보겠다며 간구 어린 협박을 하던 남편은 무슨 명분을 내세우며 본인 직장을 관두진 않았었던 건지 기억에 없다.


많은 이들의 결론처럼 시가를 떠나 친정 옆으로 이사를 가는 것으로 해결을 보았고, 그로 인해 시부모를 모시고 살자던 남편의 소원은 자연스레 어딘가로 날아갔던 것 같다.

주6일 근무하던 그 시절에 토요일마저 아버님의 바램에 따라

시가에 가서 손주를 뵈드리며 일박을 하고 왔으니

나도 그 시절엔 참한 새댁였던 걸까?


수입이 많지 않던 우리가 애 봐주는 분을 들여가며 육아를 할 생각은 못 했던 것 같고, 시가에 우리 엄마가 오셔서 우리 아들을 봐줄 순 없지 않나.


우짜둥둥, 한돌 된 아이를 어린이집을 보내겠다는 결정에 눈물을 흘리던 남자라 친정 옆으로 마지못해 이사를 따라왔던 것 같다.


그다음 해에 둘째도 태어났고 엄마는 기쁘게 산후조리며 두 아이의 육아를 말없이 감당해 주셨다. 자신의 딸의 직장을 지키기 위해서였는지는 과묵한 우리 모녀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지난했던 양육을 끝내자마자 내 마음 저 밑바닥에 파묻혀 있던 울분이 올라왔다.


그냥 그 후로도 많은 사건들마다 묻고 묻고 또 묻고 보내왔던 많은 시간들은 날아가지 않고 켜켜이 쌓여 있었다.


눈물 나게 부러운 미키김 부인의 며느리의 경단을 막는 시엄마와 직장으로 부인을 복귀시키며 아이와 기쁜 양육을 만끽하는 남편까진 바라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우리 부부노후생활이 가능하려면 사람을 바꾸려 해선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이러저러한 남편의 잘못을 지적하자 바로 공격에 방어하려는 듯


“네가 직장 안 관뒀고 우리 부모님 안 모셨잖아!”

우리의 미래에 대한 내용과는 관계 없어 보이는 엉뚱한 항변에 찬물을 뒤집어 쓴 듯했다

동갑이라 오히려

너라는 호칭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남편에게

보란 듯이 나도 너는!이라 대응하며 난 또 짜릿했다.


21세기가 시작된 지도 까마득한데 30년 동안 곱씹고 묻어 둔 남편의 울분을 마주한 날, 이제는 모실 분도 한 분밖에 안 남았으니 두 분이 오순도순 사시는 게 아름답겠다는, 정말로 이 남자는 내가 가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나를 삼켰다.


“남편, 직장도 징그럽게 안 관두고 본인 부모도 안 모시는 여자와 29년을 같이 지내느라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 이젠 그만 참고 살고 싶은 대로 원껏 어머니와 노후를 즐겨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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