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이기심 덕분 굴러가는 경제학 가정응용편

랄라의 경제적 설득

by 룰랄라

요즘 '어쩔 수가 없다'로 또 한 번 흥행에 성공한 박찬욱감독은 절대로 촬영장에서 화를 안내기로 유명하단다.


격렬한 현장들이 그렇듯이 화를 낼 이유를 만가지도 찾을 수 있는 영화판에서 젊은 시절의 박감독이 화를 내기 일보직전에 영상감독님이 조용히 불러내더니 “박감독, 화를 내면 스텝들이 박감독 말을 잘 들을 거야 그런데 존경은 하지 않게 돼. 그냥 앞에서만 따르는 척할 뿐이야. 스텝이 감독을 존경하지 않으면 그 영화는 성공할 수 없어.”


대학원시절 이과인 내가 처음 접한 경제학은 첫 시간부터 흥미진진했다.


사람은 이기적이다. 이 원리로 모든 세상상황을 설명할 수 있단다. 그걸 연구하는 학문이 경제학이란다. 이견을 제시해 보라는 교수님께 우린 독립운동가는요? 자식을 낳는 행위는요? 기타 등등 많은 호기심 어린 질문을 던졌고, 그 많은 반격을 교수님은 어물쩍어물쩍 잘도 넘기셨다.


이 영상감독님은 “감독은 존경을 받아야 해~~”이렇게 말하지 않으셨다. “영화가 성공하려면!”


박감독이 화를 내서라도 달성하고픈 중요한 그 관점에서의 최고 이득이 없어질 수 있다는 지점을 펼쳐 보여 주었다.


“아빠가 부인에게 존경을 받아야 그 집 자녀들이 잘 돼.” 자식에게 무척이나 끔찍한 남편에게 누군가가 이리 한마디라로 말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신건강의학과의 원조격 대부인 이근후교수는 며느리가 들어오면 제일 먼저 잘못된 것은 지적하라고 연습을 시키셨단다.

가족이 서로를 잘못되게 하는 정신문제의 본원임을 상담과정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본인의 집은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서였단다.


자녀와 부모만 있는 사람, 이 사람의 입에선 부인이란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언젠가 마누라라는 용어의 뉘앙스에 대한 내 하대적인 느낌을 말하자 그 이후로 아예 대리하는 용어 자체가 쓰기 싫어져 버린 걸까.


그냥 부인을 통해 자녀를 낳고, 자신과 일심동체니 자신인 양 ‘부모님 모시기’라는 행위를 해야 하는 존재일 뿐인데 자아가 있고 고분고분 따라주지 않으니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파 졌나 보다?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일절 없는 우리 집과 다른 시댁 분위기에 놀라며 난 아버님 수저세트만 따로 있는 시가의 밥상문화가 못마땅해 오히려 그 수저 세트 말고 그냥 평범한 수저를 놓곤 했다.

그럼 여지없이 남자와 그 누이가 아버지 것을 찾는다. 난 그 사소한 것들이 왜 그리 싫었을까?

그 분위기에서 자란 우리 아이들이 할아버지 수저를 찾을 때 이상하게 끔찍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 문화에 젖어드는 내 아들딸이...


'이호선의 가족문제 상담프로'에서 아들이 두 번이나 부인들에게 버려지고 세 번째 며느리가 들어왔을 때 구순 연세 드신 시아버님이 꼼짝 앉고 어머니가 바치던 물을 받아 드시다가, 며느리의 정신교육으로 이제는 스스로 떠다 드시고 본인 밥그릇도 손수 치우신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부모에게는 본인 아들이 이번에도 버려지면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인해, 그 고령의 아버지에겐 최애 이득이 걸린 문제여서 상상만 해도 우스운 현실개혁이 이뤄진 거네... 생각한 기억이 있다.


우리 시가에선 난 그다지 주도권을 쥘 먼가 가 없었던 걸까, 내가 권세가의 따님이거나 부자였다면 다른 구도가 펼쳐졌을 수도 있을까, 아니면 그냥 거세지 않은 사람은 이 사회가 의견을 묻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는 법칙에 의한 거였을까?


그래도 내가 정색을 하고 아버님의 지극한 부모공경을 보고 자란 저 남자의 부인에 대한 마누라급 개념문제로 우리 가정은 파행 운영되고 있다고 언제 마주 앉아 진실되게 이야기했다면, 아버님이 저 영상감독 같은 역할을 해 주었을까? 아버님에겐 손주가 최애 이득이고 내가 손주면회를 조건으로 걸고 협박 같은 협상을 벌였다면, 들어주시지 않았으려나 싶다.

왜 현명한 대응법은 항상 한 템포 늦게 생각나 우리는 이불킥을 하며 시트콤을 찍게 되는 걸까...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


오늘 아침 '이상은의 언젠가는' 노래가 어디선가 들렸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이 음정를 흥얼거리게 된다. 난 오늘 이 가사를 아침 과일을 씻으며 부르다가 깨달았다.


이 노래는 젊을 때는 몰라 방황하고 시간이 지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회고, 상처와 시행착오 후의 "언젠가는 " 후회와 성찰, 그리고 나서의 이해와 화해를 노래하고 있는데...


나는 오히려 그 가사가 반대로 와닿는다. 우린 너무 사랑인 줄 알고 사랑하고 결혼했었다.


사주에서도 격렬히 첫눈에 반하는 불타는 커플보다는 그만그만한 예를 들면 중매로 만난 커플 등이 더 좋은 궁합이 된다고 한다.


저 노래 가사는 사랑이 보이지 않았으나 나중 빛나는 순간을 맞이하는 희망을 그리고 있는데, 슬프게도 난 오늘 아침 반대로 의미해석이 와닿았다.


"그건 사랑이 아니었어,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주지 않으면 너의 인생 제일 찬란했던 젊은 날 순간이 최하의 가치로 떨어지는 걸 보게 되는 게 너에게 최애 이득상실이 되었으면 해 "

작가의 이전글7) 직업전환기 생존의 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