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년 9월 13일
어린 시절 책에 관한 기억 하나.
아마 중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가끔 아버지의 작업실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작업실이라고 하니 무슨 대단한 공간인 것 같지만 그냥 고만고만한 방이 그림을 그리는 곳과 작은 서재로 나뉘어 있던 그런 곳이다. 그곳 책장에는 이런저런 책들이 꽂혀 있었는데, 옛날 책들-주로 60, 70 년대에 출판된-이다 보니 대부분의 책들이 세로로 조판된, 그리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게 되어 있는 책들이 많았다. 펼쳐보면 책의 장르에 상관없이 문장 중간중간에 한자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것도 기본이었고, 제목 자체가 한자로 쓰여있어 애초에 펼쳐볼 마음을 차단하는 책도 많았다. 그런 책들이 빼곡하게 있는 책장을 훑어보다 어느 날 눈길을 끈 책이 하나 있었다. 그 책은 크기가 다른 책에 비해 유난히 작고 얇은 데다 다른 책들과는 달리 신문지로 겉이 싸여 있어 제목을 알 수 없다 보니 내 호기심의 그물망에 걸려들었다. 곧바로 그 책을 뽑아서 펼쳐보았는데-혹시 19금?- 반은 일본어이고 반은 한글인 일종의 ‘일한대역’인 책이었다. 그리고 펼친 책의 가장 앞면에는 어설프게 그린 남자아이의 모습이 있고 그 아이의 상단에 제목이 역시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자왕린어”. ‘이건 무슨 동화책인가?’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그 자리에서 한숨에 다 읽어버리고 약간 멍한 상태가 되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것이 어린 왕자와 나의 첫 만남이다.
프랑스어로 된 원작이 일본어로 번역되고 다시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분명히 이런저런 오역과 의역과 또 알 수 없는 오류들이 섞여있었겠지만 그 어려움을 뚫고 내 마음으로 넘어오는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들로 나는 마치 그 소년을 사막에서 만났던 비행사가 되어 당황하면서 끌려가게 되는 그렇지만 불쾌한 기분은 전혀 없는 그런 상태로 제법 긴 시간을 책장 앞에 서있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으니 소년 임에 분명하고 아직 어린아이의 티도 가시지 않았을 나이이지만, 책을 읽는 내내 어린 왕자보다는 어른인 비행사의 시선을 가졌었던 것 같다. 왜냐 하면 나는 책의 시작 부분에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그림을 보고 중절모를 먼저 떠올렸는데, 이것은 작가가 내건 ‘아이의 마음 테스트’에서 입구 컷을 당하는 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비행사와 어린 왕자 사이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입구컷의 굴욕은 어느새 잊어버리고 어린 왕자의 생각과 시선과 마음에 자연스럽게 젖어들게 된다.
특히 그때의 내 마음에 콕하며 파고 들어온 것은 왕자가 자기 별에서 의자를 옮겨가며 하루에 마흔 번이 넘도록 노을을 바라봤던 에피소드였다. 그 당시 우리 집은 제주시의 서쪽 끝 변두리에 위치한, 주소만 제주시인 바닷가 시골 마을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조그만 마을이었지만, 운 좋게도 그 마을의 바다가 살짝 서쪽으로 나있어 날씨가 조금 도와주는 날이면 아주 근사한 저녁노을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저녁나절이 되면 가끔 노을을 보러 바닷가로 나가곤 했는데, 노을도 노을이지만 저녁의 바닷가는 즐길 거리가 제법 많았기 때문이다. 수건 하나 들고 집을 나서서 5분 정도 걸어가면 낮은 둑이 이어지는 바닷가에 다다르는데, 물에 발 담그다 수영을 하기도 하고 주변 바위에 붙어 자라는 보말이나 소라를 따기도 했다. 그러다 빨간 해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동쪽 하늘부터 어둑어둑해지면 적당히 몸을 닦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 날들 중에 노을이 유독 인상적일 때가 있었는데, 그날의 하늘과 기온과 바람, 그리고 보는 이의 마음이 한데 모여 특별한 노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떤 날은 동쪽의 보라색부터 서쪽의 붉은색까지 하늘이 통째로 무지개가 되기도 하는데, 중간중간 흐르는 구름들은 서쪽에 있다고 붉지만도 않고, 동쪽에 있다고 어둡지만도 않은, 그들 각자의 색을 가지고 이 장관에 악센트를 준다. 그럴 때면 잠시 넋을 잃고 사위가 캄캄해질 때까지 서쪽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어린왕자를 몰랐던 그 시절의 나는 노을이란 이렇게 하늘이 만들어주는 아주 예쁜 자연 현상이라고만 생각했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지만, 왕자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의 나는 노을을 이전처럼만 바라볼 수는 없게 되었다. 이쁜 노을이 질 때마다, 심지어 노을이 잘 보이지 않을 때도 한 번씩 자기 별에서 노을을 바라보고 있을 왕자를 떠올렸고, 마흔몇 번씩 의자를 옮겼던 그 마음을 가늠해보곤 했다. 왕자는 하루에 그렇게 많이 노을을 바라본 이유가 외로움 때문이라 했다. 외로움이 얼마나 깊었으면 그렇게 했을까? 어쩌면 자기 별에 밤이 오는 것이 싫었던 걸까? 노을을 본다고 그 외로움이 누그러지지는 않을 것 같고, 깊은 외로움 위에 밤까지 내리는 것이라도 미루고 싶어 하염없이 의자를 옮겨 앉았던 건 아닐까? 사춘기 시절,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던 감정들 속에서 이렇게 어린왕자를 통해 외로움이라는 감정 하나를 뽑아 올려 마주 할 수 있었고, 내가 뭘 한다고 그것이 어떻게 되지 않다는 것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저 과하게 날뛰지 않길 바라며 필요하면 노을의 도움을 좀 받을 수도 있을 테고.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모자로 잘못 본 바람에 왕자에게 잠시 샐쭉한 시선을 받아야 했던 내가 노을 이야기의 공감을 통해 그와 제대로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고 내가 살던 마을, 다니던 학교까지 버스로만 40 분이 넘게 걸리는 그 마을도 조금 더 좋아졌다. ‘이 촌 동네에도 좋은 구석이 있긴 하네…’ 하면서.
그 뒤로 대학생이 되어 다시 한번 <어린왕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있던 동네 서점에 별생각 없이 들어가서는 더욱 별생각 없이 -사실은 책 값이 싸서- 집어 들고 왔고, 더더욱 별생각 없이 오랫동안 방구석에 던져두었다가 한참을 지나서야 읽었던 기억이 있다. 예전 그때처럼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다 읽었는데, 대학생 시절에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은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 그리고 밤하늘의 별들이 아름다운 이유’에 대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화가라는 직업을 가졌던 덕에 자라면서 도록이나 실물로 보아 왔었던 많은 그림들에서 막연히 느끼긴 했지만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던 ‘내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서 처음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이다. 어떤 풍경이나 그림뿐만 아니라 즐겨 듣는 음악, 좋아했던 영화에서도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고, 호감을 갖게 되는 이유와 그 과정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좋은 책들의 특징은 읽고 나서 읽은 이의 마음에 그 책만의 인상을 남긴다는 것인데, <어린 왕자>는 읽은 후의 내 마음에 “추억”이라는 단어로 남아있다. 읽어 왔던 책들 중에 그 인상이 강렬하기로는 <어린 왕자>보다 훨씬 더한 책들도 여러 권 꼽을 수 있지만, 이 책은 ‘오랜 친구’, ‘언젠가 갔었던 여행’, ‘어느 작은 포구’, ‘오래된 마을의 골목’ 같은 느낌으로 남아 있는 책이다.
얼마 전, 내가 <어린 왕자>를 처음 만났던 그 나이와 비슷해진 딸아이가 <어린 왕자>를 집어 들고 그때의 나처럼 단숨에 읽고 나서는 내게 말했다.
“아빠, 내 인생의 책을 하나 찾았어요! 바로 <어린 왕자> 예요!”
열세 살 아이의 입에서 나온 ‘인생의 책’이라는 표현에 슬쩍 웃음이 나왔지만 그 진지한 얼굴을 보니 나도 곧바로 진지해져서 한참 동안이나 아이와 책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고 왕자는 나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훗날의 추억 한 조각까지 선물해 준 셈이었다. 이 아이에게 <어린 왕자>는 어떤 책으로 인상 지워질까? 나처럼 아이에게도 추억 같은 책이 되어 준다면 정말 좋겠고, 아빠와 함께 이야기 나누었던 그 시간이 <어린 왕자>의 추억들 중 하나의 풍경이 되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이건 아빠의 욕심인가.. 아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