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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 가득 40년...인디아나 존스

2023년 6월 29일

by 행크

미국의 시트콤 <빅뱅 이론>의 한 에피소드에 나오는 내용인데 워낙 기발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두고두고 언급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1편인 <레이더스>은 존스 박사와 독일의 나치 조직이 성궤를 찾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주요 줄거리이다. 성궤는 모세의 십계명이 새겨진 석판을 보관하기 위해 솔로몬 왕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성물인데, 우여곡절 끝에 나치 조직은 성궤의 성스러운 힘에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존스 박사가 성궤를 차지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그런데 <빅뱅 이론>의 인물들이 이 영화를 수십 번 보고 나서 내리는 해석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기가 막히다. 그들은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존스 박사가 하는 역할이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데, 존스 박사가 있든 없든 나치는 성궤를 찾았을 것이고, 또한 존스 박사가 있든 없든 나치는 전멸하는 결말을 피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게 말이 되냐 생각하다가도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망연자실해지다가 결국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끝없는 수다와 말장난이 이어지는 이 시트콤은 배경이 MIT이다 보니 정말 황당하고 기발한 이야기가 난무하는데 가끔은 이렇게 뜬금없는 통찰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금 <인디아나 존스> 이야기를 새삼스레 하는 이유는 얼마 전 그 다섯 번째 영화가 개봉했기 때문인데, 이 영화는 나에게도 각별한 영화인 것이 내 인생 처음으로 내 돈 내고 극장에 가서 본 영화가 바로 이 영화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데, 어떤 계기로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지 않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시내의 극장을 향했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에게 조금 혼이 나긴 했지만 전혀 후회되지 않은 영화였다. 왜 그 영화를 골라서 보게 된 걸까 생각해 보면 가장 그럴듯한 이유는 아무래도 감독의 이름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이름은 잘 알고 있었는데, 그전에 <죠스>와 <크로스 인카운터>를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이더스>는 그 믿음에 화답하는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영화였다.


그 뒤로 중학교 2학년 때는 그 2탄인 “마궁의 사원”, 고등학생 3학년 때는 3탄 “최후의 성전”까지, 개봉하자마자 바로 극장에 달려가서 존스 박사와 함께 신나는 모험을 즐겼던 추억이 있다. 이 3부작은 내용이 밀접하게 연결되지는 않지만 팬들에게는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영화들이고 그렇게 멋지게 완결해 줘서 참 고마웠다. 그 시절, 어쩌면 수월하게 통과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그 시간에 조용히 옆에 같이 있어주었던 무심한 친구 같은 그런 캐릭터였다, “인디아나 존스”는.


<레이더스>의 극장 관람 이후로 영화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생활동안 극장을 들락날락하며 많은 영화들을 섭렵했다. 그때 보았던 수많은 영화들 가운데는 지금도 별처럼 빛나는 영화들이 많지만, <인디아나 존스>는 내 인생의 영화들 중 단연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늘 편치만은 않았던 집안 사정과 우리나라 중고생은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거쳐 가야만 하는 입시의 압박 속에서 마음 풀 곳 없던 나에게 존스 박사가 머무는 곳은 거기가 어디든 자유와 해방과 탈출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약간은 시대에 뒤처진 채로 네 번째 영화 <크리스털 해골의 왕국>이 개봉했고 또다시 많은 시간이 지나서 이제 이 시리즈의 마지막인 <운명의 다이얼>이 개봉했다. 이제는 내가 변한 건지 세상이 변해 버린 건지, 해방과 탈출 그리고 자유로움의 매력은 간 데가 없고 조금-사실은 많이- 늙어버린 존스 박사가 약간의 뜀박질에도 힘겨워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그런데 그런 힘겨워하는 그의 모습과 그를 보며 안쓰러워하는 나의 마음이 또 싫지가 않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나는 그가 종횡무진 세계를 뛰어다니던 그 모습을, 그리고 그 모습에 기뻐하고 흥분했던 나를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2시간 30분이 조금 넘는 상영 시간 동안 나는 그 영화만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를 처음 만났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40 년 세월을 함께 돌아보고 있었다. 40 년 지기 옛 친구가 이젠 더 만나러 오지 못할 것 같다고 하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네고 있는 모습을, 그 떠나는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실제로 이번 영화는 이전 영화들의 여러 장면들을 오마주 하며 나 같은 옛날 팬들에게 크고 작은 추억들을 선물하였다. 그리고 40 년 긴 시간을 함께 즐거워해준 것에 대하여 서로 고마워하고 그 시간 동안 각자의 우여곡절을 딛고 살아남은 서로에게 격려와 위로를 건네는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영화 후반부에서 존스 박사는 자신의 시대인 현대로 가지 않고 아르키메데스의 시간에 남으려 한다. 늙어서 학교에서는 퇴직하였고 아들은 월남전에서 사망하였으며 아내와는 이혼한 현재의 시간에는 기대할 것이 없는 남루한 현실만이 남아있고 돌아가는 순간 자신의 모험은 막을 내리겠지만, 시간 여행으로 도착한 2 천여 년 전 과거에는 여전히 흥미진진한 역사 속-무려 아르키메데스가 살고 있는 시라쿠사이다-을 모험하는 자신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끝까지 붙잡으려는 부질없는 몸부림이고 동시에 이 영화가 막을 내리려 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의 진한 아쉬움이기도 하다. 시리즈의 마지막인 이번 편은 재미와 완성도는 분명히 초반 3부작에 비하면 많이 모자라다. 하지만 이번 편이 이전 편들 처럼 신나고 정신없이 재미있었다면 작별의 시간이 아니라 또 다음 편을 기대하게 될 것이 아닌가? 영화가 재미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시리즈의 마지막인 <운명의 다이얼>만큼은 왠지 이런 만듦새가 마음에 들기도 한다.


영화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배역을 가장 멋지게 마무리하고서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해리슨 포드’ 할아버지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고 훗날 언젠가 세상을 떠나시면 그때 다시 한번 ‘인디아나 존스’ 5부작을 감상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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