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도 없는 인생 Ep.2

기계공학은 어떤 곳인가?

by 설계도 없는 인생

기계공학=남자, 술, 공부

예비대학은 기계공학부의 집행부 선배 20~30명과, 프로그램에 신청한 신입생들이 함께하는 OT였다.
2박 3일이었는지, 3박 4일이었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 며칠 동안 ‘기계공학이 어떤 곳인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는 것.

술과 함께했던 OT는 분명 재미도 있었지만, 어딘가 암울한 기운도 감돌았다. 남자만 가득한 분위기.
그 속에서 나는 막연히 기대했던 ‘대학생활’의 낭만이 깨져가는 걸 느꼈다.


사실 대학생이 되면, 고등학교 내내 미뤄뒀던 연애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신입생 300명 중 여학생은 20명도 안 됐다.

그 분위기 속에서 "아, 여긴 그냥 남자들의 우정을 열심히 쌓아야 하는 곳이구나"라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연애는커녕,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이 먼저였다.

(그래도 학교 다니며 CC도 해보긴 했다. 이건 나중에 따로 풀어볼 만한 에피소드다.)


예비대학에서 느꼈던 그 감정은 개강 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남자 무리들과 술 마시고, 당구를 치러가거나, 과제를 하는 게 당연한 일상이 됐다.
그 사이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평균 이하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불안감을 느꼈다.

1학기가 끝나갈 무렵, 같이 놀고 공부했던 친구의 성적이 훨씬 높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순간 느꼈던 상대적 박탈감은 생각보다 깊게 꽂혔다. 내 평점은 3.5. 무난했다. 하지만 '무난함'이 위로가 되진 않았다.

그렇게 무난하게 1학년 2학기를 마치고 군대에 다녀왔고, 2학년은 다시 ‘공부하는 머리’를 되찾는 데 시간을 썼다. 3학년은 과제에 치였고, 현장실습을 나가며 조금씩 현실을 알게 됐다. 4학년은 졸업과 취업 준비를 병행하며 정신없이 지나갔다. 졸업할 때 내 성적은 3.6쯤. 여전히 무난했다.

특출 나지도, 그렇다고 처지지도 않는 숫자.

그래도 기계공학과 취업률이 나쁘진 않았기에 다행히 졸업 전,

부산에 위치한 대기업 H사 1차 협력사에 R&D 직무로 합격하게 됐다.

졸업 전에 합격한 자리였고, 주변에서도 “잘 됐다”라고 말해줬다.

하지만 나는 딱 3개월 만에 퇴사를 선택했다. 누구에게는 섣부른 결정이라고 여겨졌었을 수도 있지만,
그때의 나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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