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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건우 Jun 29. 2023

함박꽃을 아시나요?

       

설악산을 오르기 전날에는 항상 마음이 설렌다. 이번에는 어떤 모습으로 내 가슴에 와닿을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새벽 3시 집을 나선다. ‘하지’가 갓 지났지만 차가운 기운이 목과 팔을 스치고 지나간다. 드문드문 보이는 차들 사이로 두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렸다. 한계령 일출을 보기 위해서다. 굽이굽이 돌고 돌아 한계령에 도착해서, 급히 주차를 했다. 오색 방향으로 내려다보니 붉다 못해 새빨간 태양이 기암절벽 사이 구름을 뚫고 올라오고 있다. 오늘도 설악은 범상치 않은 하루를 내게 선물해 줄거라 말하고 있는 듯했다. 배낭을 메고, 등산화 끈을 묶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채도를 높여가는 태양을 뒤로하고 설악의 품에 안기기 위해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은 힘들지만 벅찬 하루가 될 것이다. ‘하늘아래 첫 암자’라고 하는 ‘봉정암’을 드디어 오르는 날이다. 한계령에서 서북능선을 따라 중청봉과 대청봉에 오르고, 다시 내려와 소청봉을 거쳐 봉정암에 이르는 코스다. 20킬로 이상을 걸어야 하고, 3000미터 가까이의 오름과 내림을 반복해야 다다를 수 있다. 한계령에서 출발해 서북능선에 올라타자 끝없이 펼쳐진 운해가 날 반긴다. 내륙의 운해는 첩첩산중에 걸쳐 있어 오묘하고 신비한 매력이 있다면, 설악산의 운해는 바다를 향해 광활하고 끝없이 펼쳐진 것이 매력이다. 너무 아름답고 매혹적인 풍광에 운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또한 ‘잘나면 얼마나 잘 났냐’며 항상 자연 앞에 겸손하라고 꾸짖는 것 같기도 하다. 자연이 선물하는 멋진 풍광에 눈이 팔려 걷다 보니 어느 듯 중청봉에 도착했다. 손에 잡힐 듯 대청봉이 보인다. 매번 느끼지만 설악산은 엄한 아빠 같은데, 대청봉만큼은 포근한 엄마의 품 같이 느껴진다. 중청봉에서 살포시 고개를 들어 대청봉을 바라본다. 티끌 하나 없는 파아란 하늘 바탕에 보이는 대청봉의 능선은 예술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대청봉에 올라 표지석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남긴다. 사진에 담긴 내 모습은 이 세상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는 듯한 표정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올라왔던 길을 돌아 목적지인 ‘봉정암’으로 향한다. ‘봉정암’에는 법당에 부처님이 없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자장율사가 당나라의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셔와 다섯 개의 사찰에 봉안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봉정암’이다. 대청봉에서 소청봉을 지나 엄청 가파른 비탈길을 한참을 내려가야 봉정암에 다다를 수 있다. 길이 가팔라 미끄럼 타듯 내려오고 있었다. 이름 모를 예쁜 야생화가 내 눈을 붙들고, 진한 만리향 향기가 코 끝을 자극했지만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갈 길도 멀지만 지나온 비탈길을 거슬러 오르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런 나를 부여잡는 것이 있었다. 단아하고 청아한 모습, 은은하게 풍겨오는 꽃 내음은 기꺼이 나의 발걸음을 돌려세우고 말았다. 보는 순간 저절로 미소를 머금게 만드는 꽃이었다.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다 핸드폰을 꺼내 포털의 ‘꽃검색’ 찬스를 이용했다.

‘’ 함박꽃’ 일 확률이 85%입니다.’

그랬다. 내가 왜 이 꽃을 보고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목련과에 속하는 ‘함박꽃’은 산에서 자라는 목련이라고 해서 ‘산목련’이라고도 불린다. ‘아고산지대’의 봄은 우리가 느끼는 봄 보다 한 달 이상 늦다. 치악산의 백목련은 5월에 접어 들어서야 볼 수 있고, 소백산의 철쭉은 5월 말에 절정을 이룬다. 나를 저절로 웃게 만든 단아하고 청아한 함박꽃은, ‘하지’가 지났지만 설악은 이제야 봄이 절정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목련은 처음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꽃이다.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나가고 2학년이 시작될 무렵, 늦은 사춘기가 찾아왔다. 슈베르트의 ‘보리수’를 듣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다. 박목월의 ‘사월의 노래’를 듣고,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읽었다. 양희은의 ‘하얀목련’을 듣고, 서정윤의 ‘홀로서기’를 읽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아’와 앞으로 살아갈 ‘자아’가 내 안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을 때였다. 고등학교 2학년 첫 월말고사를 앞둔 즈음, 교실 창 밖으로 새하얀 목련이 보였다. 너무 단아하고 아름다웠다. 지금껏 꽃을 자세히 본 적도 없지만, 꽃이 내 마음속 깊이 새겨진 것도 처음이었다. 화려해 보이기도 했고, 가련해 보이기도 했다. 사춘기인 내 마음과도 비슷해 보였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멍하니 목련만 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꽃잎이 활짝 흐드러지더니,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한순간 모든 꽃잎이 와라락 떨어졌다. 앙상해진 나무 밑에 수북이 쌓인 꽃잎은 불쌍하다 못해 처절해 보였다. 내 눈에서 눈물도 와라락 쏟아질 것 같았다.


그렇게 목련은 내 인생에서 두 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사춘기 때 만난 백목련은 아프지만 오래 간직하고픈 첫사랑처럼 다가왔고, 오십을 목전에 둔 오춘기 때 만난 산목련은 언제나 만나면 즐거운 오랜 친구처럼 다가왔다. 백목련은 잘난 체 말고 겸손하게 살라고 가르쳐 주었고, 산목련은 자신을 사랑하며 살라고 가르쳐 주었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기 위해 ‘봉정암’ 가는 길에 만난 함박꽃, 그날은 함박꽃이 부처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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