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는 여름 찬 공기

by 지소혜

언니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퇴근 후 피아노 학원을 향할 때 그냥 마음이 들뜬다. 먼저 와 있던 윤희 언니가 왔어? 하며 반겨주는 것이 좋았다. 습관처럼 언니가 연습하는 방 문을 살짝 열었다. 반색하는 언니 대신 을씨년스러운 느닷없는 여름 찬 공기가 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원장 선생님도 언니의 행방을 모른다고 했다. 회식으로 늦거나 감기몸살로 못 나올 때는 퇴근 전에 어김없이 전화가 왔다.


- 소혜야 미안해, 혼자 집에 가야겠다.


듣고 싶었던 언니의 목소리는 곧 적막한 작은 시내를 무너뜨릴듯한 앰뷸런스 소리로 변화했다. 다급하게 길거리로 뛰쳐나갔는데,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언니가 오지 못하는 이유를 듣고 말았다. 촌각을 다투며 생명유지를 위해 병원으로 향하는 언니를 내내 기다렸지만 돌아오지 못했다.

언니는 낮에 회사 동료들과 인근 지역 기관에서 개최하는 행사에 다녀왔다. 운전을 하던 상사는 반주가 걸쳐진 상태라 평소 익숙한 길에 무모함을 보였다. 7번 국도 곳곳은 산새를 끼고 나 있다. 직선 도로가 아닌 곡선의 자유로운 물 흐름 같은 구간은 차선도 하나라 차량 운행이 적다고 절대 추월하면 안 된다. 운전대를 잡은 그 사람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앞서 가던 느린 속도의 차량을 추월했고 구부정한 산새에 가려졌던 맞은 편에서 오던 차량과 정면충돌했다.


차량은 폐차 지경으로 파손되었는데, 에어백이 터진 앞 좌석 사람들은 멀쩡했다. 운전석 뒷자리에 앉아 벨트를 했던 언니도 외상이 거의 없었다. 앞 좌석과 차량 내부 돌출된 곳에 머리를 심하게 몇 번 부딪혀 계속 두통이 지속되는 것 말고는 그 사고의 후유증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회사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던 현장 사람이라 사고 수습은 회사 총무과 직원들이 나서서 했다.


언니는 간단한 타박상 치료만 받고 집에 와 안정을 취했다. 저녁까지 계속되는 두통은 정도가 심해졌고 급기야 언니의 가녀린 몸을 쓰러뜨렸다. 앰뷸런스가 피아노 학원을 지나가는 그 시각에 이미 언니의 호흡은 희미해져 갔다. 손도 써 볼 새도 없이 언니의 머릿속에는 붉은 피가 계속해서 고였다. 사고 후 응급실 갔을 때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는데 좀 더 큰 병원으로 가 정밀검사라도 받았으면 언니는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사고였다. 현장 직원으로 일하고 있던 언니의 오빠만이 진실을 밝힐 수 없는 현실의 중압감에 술에 빠져 지냈다. 운전을 한 사람은 현장 직원들의 권익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었고 회사와는 맞서는 입장이었다.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게 회사가 사후처리를 도운 덕분에 그는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회사와의 협상에는 우호적인 태도로 바뀌면서 임기를 마쳤다. 언변이 좋고 외면적 카리스마가 압도적이라 그를 대신할 사람이 없었다. 언니의 오빠는 그 사람을 고소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진실을 알아 요동치는 마음보다는 손해날 것이 없는 평온한 관계를 원했다.


언니의 삶이 어떻게 소멸되었는지 말하고 싶었다. 잠깐 안타까워해도 곧 잊힐 게 분명했다. 장례식에서 쓰러진 연인에 대해서도, 길가에 나 있는 언니 방을 지나면서 눈물을 삼키는 누군가에 대해서도 운전을 한 사람에게 찾아가 알려주고 싶었다. 더 이상 피아노 학원을 가지 않았다. 언니를 집어삼킨 길을 혼자 다니는 건 더더욱 자신이 없었다. 마치 죽음을 예고하듯 불안감을 주던 길가의 언니 집은 몇 해가 지난 뒤에 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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