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 사랑할 겁니다!

by 지소혜

스무 살이 두려웠다. 특히 사랑에 서툴러 주선된 만남 자리에서도 별 말을 하지 못했다. 한껏 차려입은 주선자들의 입담에 끼여 음식이 체할 정도의 불편함을 몇 시간 견뎌야 했다. 거절하지 못하는 것도 태도처럼 보여 얼버무리는 답변을 쑥스러운 긍정의 신호로 여기는 것 같았다. 도대체 머리손질이며 화장이며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학생에서 이른 사회인이 된 초짜 어른으로의 급격한 변화는 어깨 잔뜩 움츠리게 만들었다.


- 사랑합니다!


사무실 휴게실 자판기 쪽에 있던 직원이 나를 보자마자 외쳤다. 당황스러운 나는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근무하던 항만 쪽 현장 부서는 더더욱 바다 사나이 같은 활력을 지닌 입담의 소유자가 많았던 탓에 사랑 고백 같은 표현들을 난데없이 받을 때가 많았다. 특히나 숫기가 없던 직원의 천생배필로 나를 점찍 연인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한번 엮기 시작한 설정은 소문으로 돌기도 했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워 눈에 안 띄려고 퇴근 버스를 일부러 놓쳤다. 혼자 한 시간 뒤에 오는 일반 버스를 기다리며 근처 매점 휴게실에서 마냥 앉아 등대를 가로지르며 출렁거리는 바다만 볼 때가 많았다.


숨는다고 한들 제일 어리고 감정의 변화를 감추지 못 지켜보면 웃음이 머금어지는 막내를 가만히 둘리가 없었다. 장난인 것을 알면서도 설정인 줄 알면서도 맞장구쳐 주는 노련함은 한참 뒤에나 생겼다. 오히려 진짜 사랑이 내게 오듯, 어색한 장난과 불편한 설정 속에 한 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매점 주인과 안면을 트고 나서는 버스가 오기 전까지 매점 일을 도와드렸다. 그 주인의 조카라는 사람이 가끔 나타났다.


부서는 달랐지만 같은 회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특별히 마주 보고 대화 나눈 기억도 없다. 내가 버스를 기다릴 때면 사고사로 남편을 잃고 매점 일에 몰두하는 고모를 묵묵히 돕는 모습만 보았을 뿐이다. 갈 때마다 보이고 매점 주인이 다정하게 대하기에 특별한 관계일 거라 추측했었다. 조카의 존재는 사람들이 고모와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 같았다.


매점은 현장을 드나드는 운송차량 기사들과 7번 국도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이 왔다. 대부분이 건설업의 호황을 기대하며 운송차량에 전재산을 쏟아붓고 목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조금이라도 더 일하기 위해 재촉해서 말하고 허겁지겁 식사들을 했다. 찾는 물건을 못 알아듣거나 계산이라도 틀리면 격앙된 목소리로 쉽게 변했다.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으면 어김없이 내 곁에 다가왔다. 나란히 서서 손님을 맞고 나서 매점 뒷정리까지 도운 날은 숙소까지 태워다 줬다.


차로 10여분이면 도착하는 숙소가 멀리 있었으면, 단 둘이 있는 동안에 얘기라도 재미있게 나눴다면, 운전하는 그의 옆모습을 마음껏 쳐다보며 미소라도 지었다면 그가 내 마음의 동요를 눈치채지 않았을까. 지낼만하냐는 질문에 고개만 끄덕이지 말고 힘든 내색을 말로 했다면 그의 따뜻한 위로의 말을 더 듣지 않았을까 싶었다. 숙소 친구들이 사랑의 열병으로 전화를 붙들고 밤을 새우고 연인과의 싸움에 울고불고할 때도 스무 살의 설렘은


- 내일부터 나도 사랑할 겁니다.


다짐만 남긴 채 더 이상 현실화되지 못했다. 부서가 바뀌면서 더 이상 바다로 향하는 길 잃은 사람들이나 인생역전의 한판을 꿈꾸는 사람들이 오고 가는 항만 매점에 갈 일이 없어졌다. 새로운 부서의 적응이 쉽지 않아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우연히라도 마주쳤으면 했다. 어느새 다가와 옆에 서서 그냥 상황들을 지켜만 봐줘도 어떻게든 그 순간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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