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린 여자의 울음

by 지소혜

주말 저녁은 지우고 싶은 시간이다. 그 시간이 없어진다면 다시 숙소로 돌아갈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현실 상황은 일주일을 지내기 위해 엄마가 만들어 준 반찬과 계절 옷가지들 쇼핑백에 담아 옥계로 가는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간혹 숙소에 같이 지내는 친구와 시간이 맞으면 정류장 벤치에 한두 시간 먼저 나와 일부러 막차를 타고 들어갔다. 작정하고 몸과 마음 여기저기에 생채기처럼 나 있는 직장 내 언어폭력의 흔적들을, 정류장의 왁자지껄한 소란 속에서 실컷 대상을 욕하며 자연 치유하려고 애썼다.


강릉 시내에서 옥계로 가는 시외버스는 대부분 대중교통 차량 운행이 드문 마을을 지나간다. 중간 경유지마다 보부상들이 내렸다. 손수 재배한 야채나 곡류, 수작업으로 만든 기구들이 그들의 행랑에 담겨 있다 돈으로 바꾸어졌다. 주말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들에게 총결산이었다. 수입이 괜찮았든 변변치 않든 약주를 걸치고 식구들에게 건네 줄 무언가가 손에 들려 있는 것만으로 흡족한 기분인 듯했다.


정류장은 강릉 중앙시장 입구인 데다 옆으로 남대천이 흐르고 있어 사람들의 말소리는 강 물줄기를 오선 삼아 구성지게 들려올 때도 있었다. 그 가운데에 있는 누구도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정류장이 주는 집단 체면은 숙소 친구와 내게도 위로가 되었다. 우리가 사무실에서 하는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소소한 업무들이 그래도 꽤 괜찮은 일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 이 미친년아!


적어도 체구가 작은 운동복 차림의 술기운이 오른 남자의 욕설이 정류장의 분위기를 깨 전까지는 말이다. 정류장 사람들은 일제히 시선이 소리 나는 쪽을 찾고 있었다. 여느 사람보다 재빨리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던 건 높이 치솟은 남자의 손바닥 때문이었다. 금방이라도 금이 갈 듯한 찰싹 거리는 소리가 내게는 날카롭게 들려왔다.

- 왜 자꾸 따라다녀? 지겨워 죽겠어. 그냥 집에 처박혀 있으란 말이야.


웅크린 여자는 울음을 간신히 찾아내며 남자의 손찌검과 발길질을 견뎌내고 있었다. 싸움을 말리기 위해 두 남녀 가까이 가는 사람들은 이미 그들을 알고 있었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며 남자는 여자를 향한 행동 수위가 심해져 말려야 했다.


- 네가 내 일을 다 망쳐. 사람들이 너랑 다닌다고 손가락질해.


여자를 향한 남자의 행동이 잦아들 때까지 정류장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여자와 남자 쪽으로 나누어 서성거렸다. 두 남녀는 동거인 관계이고 같이 살게 된 것은 얼마 안 되었다고 했다. 같은 동네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가 나서서 딱한 처지들이라며 두 남녀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건강이 안 좋은 여자는 주로 집에서 지내고 남자는 하루 품팔이를 해 근근이 살아갔다. 둘 다 가족이 없었다. 남자는 지방 일거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역에서 갈 때 없어 레일 위를 위험하게 오고 가는 여자를 봤다. 데려오지 않으면 며칠 내로 죽을 것 같이 보여 며칠 돌봐줄 생각이었다. 자신의 처지 또한 뜨내기처럼 떠돌았지만 아이처럼 따르는 여자에게 정이 깊어졌다.


집에만 있는 여자는 남자가 자신만 두고 떠날 것 같아 하루 종일 불안해하다 곧잘 남자가 일하는 곳을 수소문해 찾아갔다. 남자가 반기지 않았지만 한밭 집 근처 의자에 앉아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그리고 여자가 생리적 현상을 참지 못해 간신히 해결하고 나면 꼭 남자는 일자리에서 잘렸다. 서둘러 여자의 손을 잡고 다시 오지 않을 공사장 사람들에게 한바탕 욕설을 하며 여자를 감쌌다.


남자는 호위무사 같은 행위에 지쳐있었는지 모른다. 당장 살아갈 변변한 돈이라도 없는 것이 한탄스러워 여자를 밀어내고 있었다. 오늘이 관계를 끝나는 날인 것처럼 남자는 홀연히 떠나고 싶어 했고 여자는 남자를 잃고 싶지 않았는지 원망과 하소연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남자는 달래는 사람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여전히 웅크린 채 흐느끼는 여자로부터 멀어져 갔다. 여자는 남자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따라가고 싶어 했다. 발걸음을 재촉해도 모자랄 판인데 여자는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허우적댔다.


- 손을 잡으세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친구와 나는 우리 손에 쥔 짐들을 내팽개치고 여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여자는 땅거미가 짙게 깔려 앞을 못 보는 게 아니었다. 아주 오랫동안 아무도 찾지 않는 어두운 터널에 앉아, 외로워하며 울었을 어린 시절부터 세상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



이전 08화사랑합니다! 사랑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