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로를 앞서가는 몰이꾼

by 지소혜

여자는 자물쇠를 부숴 버릴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일터에서 일어나는 여자의 의도하지 않은 추태를 막아 보려고 일 나가기 전에 여자가 잠든 방문을 걸어 잠갔기 때문이다. 안에는 여자가 마실 물과 끼니를 때울 주먹밥과 마른 식빵이 있었다. 그리고 음악이 흘러나올 수 있는 안테나 부러진 소형 라디오가 여자 곁에 있었다. 하지만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남자뿐이다.


남자가 자신을 버리려고 할 때마다 여자는 어떻게든 남자를 놓치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다. 남자의 옷자락을 잡는 것은 물론 무릎이 쓸려 피가 나는 것도 모르고 남자의 신발끈에 손가락을 걸기도 했다. 기어코 남자를 부여잡던 여자지만 더 이상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사라진 방향을 알더라도 쫓아가면 남자를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하루 종일 제대로 된 식사도 못했을 여자의 몸은 무겁다 못해 우리의 손을 움켜쥘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와 벤치에 겨우 앉는 것을 돕고 나서 우리는 옥계로 가는 막차를 타야 했다. 숙소 친구와 나란히 앉아 차창 밖에 홀로 남겨진 여자를 본다. 전히 남자가 사라진 방향 쪽을 원망스럽게 보고 있다.


무엇을 보고 있을까. 보이기나 할까. 짙어가는 어둠은 상점에서 뿜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도 빨아 당겼다. 우리의 시선 또한 더 이상 여자에게 머물 수가 없었다. 막막한 20대를 시작하던 우리의 처음은, 꿈과 열정보다는 빈틈없는 직장 생활의 맞춤옷을 껴입어야 했다. 답답해 벗어던지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 머뭇거렸고 가족에게조차 내색하지 못했다. 회사 숙소에서 지내다 어쩌다 집에 갈 때도 엄마가 해 주는 밥만 먹어도, 그 뜨신 밥의 기운이 목구멍을 휘감고만 있어도 사회생활의 힘듬이 녹아내렸다. 그런데 엄마 앞에서도 괜찮은 척 의연한 척 생채기 가득한 마음을 숨겨야 할 때가 많았다. 여자에게 남자는 엄마였을까.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무너져가는 여자를 부축하는 내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여자가 이제껏 걸어왔을 길과 앞으로 걸어가야 하는 보이지 않는, 막막한 길에 우리도 함께 서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버스가 출발하면서 여자의 모습이 차창에 미끄러진다. 우리 향하는 옥계에 가까워질수록 여자의 모습은 점점 작아져 갔다.


수없이 남대천 정류장을 오고 가면서 직장 생활은 반복된 패턴처럼 구조화되어 갔다. 먼저 다가와 혹은 곁에 잠시라도 머물며 푸르른 시절을 빛나게 해 준 사람들은 패턴을 끊어 주거나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의욕을 주었다. 희망을 탁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먼지바람이 시야를 가릴 때가 있다. 그 불편함이 내면과 외면의 싸움으로 번진다 해도 혼자가 아니어서 버틸 수 있었다.


일요일 늦은 저녁 옥계로 돌아갈 때 선로 위를 오고 가며 위험천만한 사랑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여자가 떠오를 때가 있었다. 롭지 않을 결심에 마음껏 안겨 울 수 있는 누군가를 반드시 만났을 것이다. 확연한 길 위의 선로는 앞을 보지 못하는 여자에게는 어디론가 향할 수 있는 지도 같았다. 자갈과 달리 발바닥을 받쳐 주는 정확한 너비로 놓인 침목은 여의 발걸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도왔다. 그리고 여자가 꿈꾸는 사랑은 몰이꾼처럼 선로를 앞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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