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 아저씨의 꿈

by 지소혜

여름의 생활필수품은 시원함을 품은 음료들이다. 숙소의 냉장고는 사이즈가 작아 음료를 비축하 기기 힘들다. 그래서 퇴근할 때 숙소 앞 슈퍼에서 꼭 음료를 산다. 갈증이 묵직한 목걸이처럼 목을 누르고 있어 얼른 계산하고 마시고 싶지만 어김없이 줄을 서야 한다. 옥계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있는 유일한 슈퍼라 인근 마을 사람들도 단골이다.


줄이 길어지는 이유는 로 있다. 매일 1.5리터 음료를 대여섯 개 사는 골수 단골이 있다. 한 번에 다 사는 게 아니라 슈퍼를 맴돌다 회사 퇴근 차량이 하차하고 사람들이 몰려들면 사러 온다. 사람들 무리에 떠밀려 슈퍼로 들어와 망설임 없이 음료대로 간다. 그리고 늘 그렇듯 콜라를 한 개씩 산다. 계산을 치를 때도 줄을 서서 가만히 있지 않는다.


- 그 새끼가 날 속였어. 자기 잘 나간다며 매일 찾아와 밥 사 주고 술 사줬거든. 사장은커녕 사기꾼이야. 속이 타 들어가. 펑크 난 데를 시멘트로 처바르지도 못하겠고. 그놈의 돈이 원수야.


자신의 순번이 될 때까지 떠든다. 반응해 주는 사람이 없는 데도 신을 향해 질문을 하고 혼자 끊임없이 얘기를 한다. 그리고 계산할 차례가 되면 료수 값을 한참 찾는다. 처음 슈퍼 갔던 날은 대단했다. 느려 터진 그의 행동이 답답했던 동네 아주머니가 그날따라 못 참겠다며 쌍욕 하는 것을 목격했다.


-미치려면 곱게 미쳐 이 놈아. 사지가 멀쩡한데 어디 가서 무슨 일을 못 해. 허구한 날 콜라로 배나 채우니까 아이들까지 무시하잖아.


아마도 숙소 앞 슈퍼가 콜라 재고를 관리하는 데는

아저씨의 취향이 한몫한 것은 맞는 것 같다. 적은 양이 입고되는 다른 음료들이 동이 나도 콜라는 있었다. 혹시나 해서 음료대를 뒤적거리며 다른 음료를 찾고 있으면 어김없이 지나가면서 한마디 한다.


- 콜라 골라.


흙먼지를 머금고 놀던 아이들이 시원한 것을 먹겠다며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다닥다닥 붙어 있을 때도 거든다.


- 콜라 골라.


키득키득. 바보 아저씨라며 무시해도 아저씨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상고를 나와 단위 농협 대출 담당 과장으로 승진한 찰나 친구에게 거액을 빌려 줬다. 잘 나가는 회사 사장으로 알고 경영하는 회사도 현장 탐방했지만 모든 것이 가짜였다. 거액의 손실은 아저씨의 일자리도 없앴지만 현실에 닻을 내리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꿈도 앗아갔다.


여러 곳을 수소문해 친구를 찾아내기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빚의 무게는 아저씨의 건강에 흠집을 냈다. 타 들어가는 속을 달랠 수 있는 것, 유일하게 위로가 됐던 것은 친구 놈이 한 박스씩 들고 왔던 콜라였다. 내다 버려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다 떨어질 때까지 남김없이 먹었다. 콜라는 사기꾼을 잡기 전까지는 포기할 수 없는 인생 처방전 적힌 조제약인 셈이었다.


아저씨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퇴근 무리에 섞여 슈퍼로 들어가는 것은 하루 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행렬의 한 명이 되게 한다. 할 일 없이 서성일 때도 머리는 가르마 따라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고 농협에서 직원들끼리 맞춰 입었던 업무용 점퍼 차림이다. 만성 질환에 시달리는 듯 탁해지는 눈빛과 마음의 침전물이 몸에 가득 쌓이며 건강의 균형이 깨져 가고 있었지만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했다.


늘 계산대 줄에 보이던 아저씨가 질병 치료로

몇 달 자취를 감췄다가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에 음료대 앞에 서 있는 아저씨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어떤 반응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래도 아저씨는 귀 기울이는 듯 왜소해진 어깨를 내 쪽으로 기울였다.


- 아저씨, 아프지 말아요! 포기하지도 말아요! 다시 와 줘서 감사해요!


일상의 한 부분에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사연을 알게 되면 안타까운 마음과 내게는 일어나지 않은 불행이라는 안도감,나도 겪을지 모르는 불안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와 관련이 없어도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힘이 될 때가 있다. 숙소 앞 슈퍼에서 아저씨는 '콜라 골라' 말고도 음료대를 정리하거나 계산대 줄이 흐트러지는 것을 관리하면서 우리의 삶 안에서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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