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나라 주주
작년 이맘때 즈음에는 좋은 일이 많았다. 노래할 무대가 있었고 처음으로 나간 콩쿠르에서 상도 받았고, 긴 시간을 이동한 곳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공연을 해, 화제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무대의 긴장감이 버거워 수면과 섭식 장애가 왔지만 흔들림 없이 일정을 소화해 나갔다.
그렇게 삶은 계속될 줄 알았다. 미리 알려주는 공연에 연습할 시간은 충분했고 나머지 일상의 어려움을 잊을 만큼 무대가 주는 설렘으로 주주는 살았다.
그런데 6개월 지날 즈음 문제가 발생했다. 3개월 전부터 콘셉트가 잡혀 동선과 곡명까지 나와 맹연습을 해, 어려운 곡이 체득되고 보여줄 일만 남아 있었는데 말이다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것이다.
취소된 게 아니라 함께 공연하는 사람의 의견이 반영되어 주주만 설 수 없게 되었다. 처음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는 다른 대안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그게 끝이었다. 이후에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열심히 살면 되는 줄 알았다. 누군가가 계속 징검다리를 놓아주면 미약한 주주는 해낼 준비가 되어 그것을 밟고 건너기만 하면 된다고 믿고 있었던 게다.
그 누군가는 계속 바뀌는 것도 모른 채, 우리에게 왔던 기회들이 무조건 우리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저 노래 불러낸 것만이 의미 있는 자리가 있고 애잔한 목소리로 위로를 해야 하는 무대가 있고 완성도가 있어 누군가의 확실한 이력이 되어줘야 하는 때가 있었다.
주주의 무대는 그 공연부터 이어지지 않았다. 흐름이 끊기고 나서 확실한 이유를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으니 '실력부족'을 선두에 두고 자의적 해석의 늪에 빠져 알지도 못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사람을 미워했다.
더 이상 목표를 두는 무대가 없다 보니 주주는 노래 가까이 오지 못했다. 계절이 바뀌고 크고 작은 환경의 변화에 몸과 마음이 적응해 가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흘러갔다.
어쩌다 나가는 콩쿠르 또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 순간 있을 요행을 바라며, 그냥 멋지고 좋은 곳을 가보는 것만이라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꾸고 도전하는 무리 속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는 주주이기에 참가에 의의를 두며 더딘 흐름을 시작했다.
누군가의 별이 될 준비가 되었는가?
아마 지금이라면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미움을 고마움으로 바꾸는 자생력만큼은 생겼다. 무대, 그거 하나만 바라보기에 삶의 다른 요소의 가치도 깨닫고 노래는 누군가를 위해 부른다기보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아물게 하는 과정을 터득해 가는 중이다.
어릴 적 주주 목소리는 어느 산골 시냇물가에 반짝반짝 빛나는 조약돌 같았지만, 지금은 삶의 다양한 모습을 살아내면서 평범하고 묻힐 듯 작은 성량이지만 속 깊은 애잔함이 깃들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단단한 호흡과 발성의 안정감 위에 큰 울림으로 듣는 이의 마음에 여운을 남길 날이 올 테다.
좀 더디 오더라도, 부족한 이력으로 가지치기되더라도 다양한 음악을 접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마음만큼은 빼앗기고 싶지 않다.
흐름을 끊어 놓은 당신, 밉지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