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굽는 것 좀 배우고 와요

by 지소혜

내일 출근하면 사직서를 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회사에 큰 피해를 입혀 권고사직당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의도치 않았지만 내 행동이 팀원 모두를 한순간 공포에 떨게 했다. 입사한 지 6개월도 안되어 벌어진 일이라 심리적으로 겪는 고통은 버거운 업량보다 치명적이다.


사건의 발단은 왼손에서 시작됐다. 씨 쓸 때만 오른손을 사용하고 나머지 일을 할 때에는 왼손을 쓴다. 특히 음식을 먹을 때도 왼손을 쓰다 보니 오른손 사용하는 동료 옆에 앉으면 조심해도 팔꿈치가 부딪히곤 한다. 그 불편한 상황에서도 고기를 굽는 것은 주로 막내의 몫이었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직급이 낮을수록 굽는 고기는 윗사람 쪽에 먹기 좋게 쌓였다. 그래서 부딪히지 않게 맨 끝에 앉거나 되도록 먹는 속도와 양을 조절해가며 고기 굽는 역할까지 하는 회식 자리는 곤혹스러운 업무의 장이었다.


짓꾿게도 회식 자리의 섭식 장애는 신입사원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비췄고 뭔가 응에 어려움을 겪는구나 싶어 다른 부서 회식 때도 호출이 왔다. 동기들이 먼저 챙겼다. 유난히 회식 자리에서 불편해하자 다른 부서 회식 때는 손님으로 가는 거니까 편안하게 먹으라고 했다. 급기야 우리 팀을 총괄하는 임원까지 알게 되었다


- 오늘 무조건 막내는 고기만 먹는다!


회식 장소가 확정되고 팀장이 선언했다. 임원이 온다고 해 회식 자리 배치는 평소라 달랐다. 끝 쪽에 앉으려던 나의 계획은 잘 지내는 걸 보여주려는 팀장의 계략으로 임원과 마주 보는 자리로 바뀌었다. 더 먹기 힘든 자리지만 최선을 다해 먹었다. 누가 챙겨주지 않는 이상 임원의 몫까지 구워가며 왼손의 서툰 가위질로 고기를 잘랐다.


- 그만 굽고 먹어요.


임원은 친절하게 자신이 고기를 굽겠다며 내 쪽으로 고기를 놓아주셨다. 연신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고기를 폭풍 흡입할 태세를 갖췄다. 이 기회에 먹는 것도 눈치 보는 심약한 신입사원에 대한 우려의 시선들을 걷어낼 생각이었다. 그 순간 옆자리 문대리도


- 잘 먹겠습니다 전무님!


외치며 젓가락을 꽂았다. 그런데 그의 오른손과 나의 왼손이 동시에 한 고기를 향했는지 내가 고기를 집 어두는 순간 그의 팔과 부딪혔고 그 바람에 고기를 놓쳤다.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뜨겁게 익고 있던 고기는 맞은편으로 날아갔다.


외마디 비명소리도 못 듣고 너무 놀라 화장실로 도망갔다. 팀장님이 물수건으로 임원의 이마를 연신 누르고 모두들 나를 향해 원망의 눈빛을 보내며 안절부절했다. 너무 당황하니까 말도 안 나왔다. 문대리는 팀장보다 더 호들갑 떨며 화상 병원 응급실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눈을 치켜뜨고 외쳤다.


- 고기 굽는 것 좀 배우고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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