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곡소리가 가득했다. 회의 테이블은 현장 반장님, 경찰 제복 입은 사람들,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전화가 쉴 새 없이 왔고 몇몇 개는 아예 코드가 뽑혀 있었다. 자리에 앉지 못한 채 도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 한가운데 두 여자가 부둥켜 앉고 울고 있었는데, 세상 끝에서 들을 수밖에 없는 떠난 자를 원망하는 가슴 찢어지는 울음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오늘 하루가 넘어갈 리가 없다. 현장에서 인재사고가 날 때 그 여파는 꽤 오래갔다. 산재 처리되어 보상이 이뤄진다 해도 어제오늘 늘 보며 얘기 나누던 동료를 잊는 것은 불가능했다. 작업 현장 곳곳은 그의 손길이 남아 있고 남겨진 가족들은 몸의 일부가 뜯겨 나가는 고통과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때 즈음 하루하루는 시간의 흐름으로 느껴지는 게 아니라, 숨을 참아내는 잠수처럼 곤란하고 버거운 상태가 된다.
신씨는 가족이 없었다. 회사 근처가 집이라도 함께 등을 맞댈 가족이 없어 기숙사에서 지냈다. 그런데 사무실을 가득 채운 협상단에는 반듯한 차림의 큰형과 작은 형이 있었고, 어머님과 약혼녀는 다소 어색하게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가족들은 신씨를 누구보다도 외롭게 했던 사람들 같았다. 억 단위의 보상금이 그들을 찾아냈는지 신 씨의 불행한 사고는 가족을 한자리에 모이게 만들었다.
회사 측은 신씨가 일했던 흔적들을 없애려는 노력을 하느라 머리를 맞댔다. 사고 뒤처리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고 그의 근무일지 중 과도한 업무량을 보이는 부분은 수정되거나 파쇄되었다. 평소라면 문서 파쇄할 때 혼자 카트를 끌고 가 기계적으로 파쇄기의 얇고 긴 입술 사이로
먹잇감을 넣어주었을 텐데, 신씨의 사고 이후에는 다른 직원 한 명이 나를 도왔다. 뭔가라도 빠뜨릴까 봐 혹은 빼돌릴 수 있다는 의심을 받는 기분이었다.
현장에서 신씨는 근무시간을 넘겨 다른 동료의 일도 대신 봐주는 사람이었다. 평소 말이 없고 유순한 데다 사무실에 들른 때가 있으면 자판기 음료 하나라도 놓아두고 가는 사람이었다. 제안서 서류를 잘 접수하고 포상금도 자주 받게 해 준다고 볼 때마다 고마워했다. 어제 받아 든 음료수는 책상 위에 그대로 있는데, 야간 근무조 때 사일로 부근에서 추락한 그는 온전한 형태의 흔적을 이 세상에 남기지 못했다. 추락 지점은 그의 제안서를 통해 안전시설 보완의 필요성이 자주 강조된 곳이었다.
위험 요소를 알았지만 피해 갈 수 없었던 작업 현장은 사고 보고서에 너무나 뚜렷하게 표시된 사진으로 첨부되었다. 사진이 떨어지지 않게 뒷면에 풀칠을 하고 꾹꾹 누르는데 내 목이 짓눌리는 느낌처럼 삼키지 못한 울음이 올라왔다. 순조 로울리 없는 협상 테이블 끝에 그의 약혼녀가 보였다. 슬픔도 독이 되어 그녀의 모습은 창백하다 못해 금방이라도 꺾일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