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버스를 놓치면 일어나는 일

by 지소혜

퇴근 버스 놓쳤다. 다음 버스는 한 시간 뒤에 다. 무작정 기다리거나 걸어서 갈 수 있을 때까지 발걸음을 옮길지를 결정해야 했다. 숙소까지는 소 걸음으로 2시간 걸린다. 같이 사는 동기에게 전화했더니 도심의 번화가도 아니고 해질 녘의 시골길은 위험하다고 낭만 찾지 말고 다음 버스를 기다리란다.


길이 닦여 있더라도 주변으로 띄엄띄엄 집이 있고 동해안을 등뼈처럼 지나가는 7번 국도와 영동선 레일이 나 있어 적막한 길은 아니었다. 다만 가로등이 어쩌다 하나씩 있고 횡단보도나 신호체계가 뚜렷하지 않은 길이 대부분이라 달리는 차를 조심해야 했다. 더욱이 낯선 차가 멈춰서 길을 묻거나 회사 점퍼를 입은 직원들이 숙소까지 태워주겠다며 불러 세 때는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할 정도로 긴장되었다.


거절할 말이 마땅치 않았지만 친구를 중간에 만나기로 했다며 얼버무렸다. 친구는커녕 걷기 시작하고 30분이 지나자 다리가 저려왔다. 발바닥 굴곡이 도톰해 오래 걸으면 유연함이 부족한 평발이라 근육 어딘가는 탈이 나고 발가락이 아파왔다. 쉴 곳도 마땅치 않아 길 옆에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는 반반한 돌 위에 걸터앉았다.


- 저기요!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해 넋을 놓고 있던 터라 누군가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내 얼굴 가까이 그 사람이 턱을 내밀고 말하는 순간 눈앞에 자전거를 탄 사람이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 너무 놀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 길을 잃었어요. 자전거로 동해안을 여행 중인데 시내가 어느 쪽일까요?


한 짐 가득한 배낭에 챙 달린 모자를 쓴 사람은 지쳐 있었다. 그을린 얼굴에 가느다란 눈매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탓에 유난히 반짝이다 못해 번뜩였다.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 발동해 손을 죽 뻗어 시내 방향을 가리키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 자전거로 한 시간 정도는 가야 될 거예요.


생각보다 멀다고 느꼈는지 배낭을 툭 내려놓고

털썩 주저앉았다. 오히려 서 있는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목적지가 교차하는 느낌이랄까. 여독이 잔뜩 묻어나고 자유로와 보이는 그 사람이 순간 부러웠다. 그는 간절히 머물 곳을 찾았고 나는 그의 배낭을 넘겨받아 떠나고 싶었다.


굳이 놓친 버스 대신 걸어가길 고집한 것도 단 한 번이라도 방해받지 않고 갈 길을 선택하고 싶어서였다. 회사에 있는 동안 나는, 나로서 온전하지 못했다. 성적인 농담과 거친 말은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려왔다. 그들의 말을 듣고 당황해 얼굴색이 바뀌거나 울먹해하는 모습을 보여야 상황이 종료됐다.


단단해지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아니 어떤 경험과 선택을 해야 강해질까 싶었다. 도전을 두려워하고 부모 말 한마디에 주저앉는 선택 온 내 모습이 자전거와 함께 나타난 사람 앞에서 더욱 초라하게 느껴졌다.


- 더 쉬었다 가요.


가던 길을 마저 가려는데 그 사람이 잡았다. 말동무가 되어 달라고 서슴없이 얘기하며 인근에 가 볼만한 곳도 소개해 달라 했다. 점 어두워져

더 걷는 것이 무섭기도 했지만 길에서 만난 사람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도 불편하고 긴장됐다.


곧 버스의 불빛이 길을 비추기 시작했고 정신없이 정류장을 향해 뛰었다. 꼭 타야 한다는 절박함 같은 것도 있었지만 숙소로 빨리 돌아가서 아픈 발을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버스가 어둠 속에서 하루를 사느라 지친 사람들을 태우고 움직일 때 그 사람과 자전거는 나와는 반대방향으로 해안길을 따라 완만하게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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