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즐겁지가 않다.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당직실을 지나 사무실 현관문을 나서야 하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겪는 고통이다. 우리 회사 식당은 직원 기숙사와 함께 별도 건물이다. 당직실은 사무실이 있는 본관 중앙 출입구와 정확히 직선거리로 있다 보니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그 안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평소라면 저녁 무렵 당직 근무 전까지는 불이 꺼져 있고 텅 비어 있는 곳이다. 그런데 벌써 한 달째 그곳은 섭대리의 거처다. 누가 그곳으로 섭대리를 쫓아냈는지는 모른다. 그는 업무도 없이 허울뿐인 총무부 소속 대리에 책상도 없이 회사를 다니는 대기발령자였다. 점심도 따로 먹었다. 윗분 누군가가 식당에서도 그를 보고 것이 불편하다고 해 동기들마저 그를 챙기는 것을 꺼려했다.
- 적어도 밥 먹을 때는 건들지 마!
며칠 전, 사람들이 다 빠진 뒤에 식사를 하러 간 섭대리에게 모직원이 다가와 주의를 줬다. 밥도 다 못 먹고 울분에 못 이겨 식판을 날리며 외친 말이다. 그 모습이 식당에서의 마지막이었다. 당직 실외에 그가 있을 곳이 없었다. 후임자도 없어 짝꿍 섭대리 책상은 먼지가 쌓여갔다.
섭대리의 대기 발령 사유는 영애가 실신하던 날 밤에 직원 기숙사에서 벌어진 폭력사태 때문이다. 묘하게도 볼링부 모임 후 뒤풀이 때 영애, 섭대리 그리고 영애 연모남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고 한다. 영애는 고백만 하고 마음을 접을 생각이었고 연모남은 약혼을 자랑할 생각이었다. 섭대리는 그냥 영애 옆에 앉기만 해도 설레고 들뜬상태였다.
모임 자리에서 영애는 더 이상 짝사랑도 허락 안 되는 품절남이 되는 연모남의 약혼에 충격받아 계속 울고 있었다. 울다 지쳐 실신 상태가 되었을 때 호흡이 불안정해 119를 부르는 상황까지 갔었다. 섭대리는 영애를 보살펴 달라고 내게 전화했다. 그리고 연모남은 자신이 데리고 기숙사로 갔다.
때린 게 아니라 혼자 넘어진 것이라 변명해도 사람들은 조용한 회사에 막 피어오르는 연애사를 여기저기 퍼 날랐다. 연모남이 꽤 오랫동안 얼굴에 상처를 달고 살았고 섭대리는 술 먹고 홧김에 폭력을 행사한, 회사의 핵심 인재인 자신보다 높은 연차 선배를 때린 하극상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때린 이유를 궁금하는 것도 한 시즌이었다. 섭대리가 당직실에서 6개월을 근무하고 명예퇴직 처리되어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위로금을 받았다는 것을 승리자의 위대함으로 치부했다. 매일 문이 열린 당직실 책상에 앉아 정면으로 보이는 동료들에게 괜찮은 척 인사 나누고 안부 묻다가 어느 순간부터 가려진 시야 안쪽에 있는 소파에 앉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그만두기 몇주 전에는 문을 걸어 잠가 인기척도 느낄 수가 없었다.
점심시간에 누구 하나 그 문을 두드려 안부를 묻기가 쉽지 않았다. 약속이나 한 듯 당직실 앞을 지나갈 때 목소리를 낮췄다. 섭대리가 하던 일은 나머지 직원들이 일을 나눴고 분산된 업무는 지지부진하게 처리되어 갔다. 회사 사람들이 가끔 그를 떠올리는 이유가 그의 미완성의 일방적 연애사나 외로운 가정환경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예산 처리에 오류가 나고 원인을 찾아내지 못할 때였다.
섭대리가 떠나자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더 이상 반찬통을 챙기지 않았다. 자리 짝꿍으로서 적어도 해 줄 수 있는 것이 당직실 냉장고에 반찬류와 간식을 그가 오기 전에 넣어두는 것이었다. 영애는 섭대리에 관한 것을 묻지 않았고 다른 직원들도 차즘 시간이 흐르자 그에 관해, 불편한 점심시간을 만든 것에 관한 시원섭섭함만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