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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혜 Oct 27. 2022

텅 빈 운동장에 남겨지다

날개가 없는 데도 날아올랐다. 결과는 끔찍했다. 팔과 무릎이 쓸리고 까지고 피와 흙먼지가 뒤엉켜 심한 통증으로 다가왔다.


- 성재야, 너 덕분에 이겼어.

- 너 정말 끝내 준다!


 단 몇 초를 공중에 머물며 배구공을 내리꽂았는데 우리 팀 백팀이 이겼다. 2대 3, 한 점 차이로 힘겹게 승리했지만 친구들이 해 주는 칭찬에 마음이 우쭐해졌다. 무승부로 끝날 뻔했다. 몸을 날려 받아낸 덕분에 청팀의 공격은 실패로 끝났다. 담임 선생님은 괜찮냐고 물으며 보건실에 가 보라고 했다. 반 회장과 보건실 쪽으로 가면서 힐끗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학부모 참관이 열려있던 운동회라 경기 하나가 끝낼 때마다 엄마나 아빠들은 자녀를 찾아 물도 챙기고 격려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나를 보겠다고 온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관절염 증세가 심해져 걷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언덕배기 위에 있는 우리 학교를 걸어 올라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나는 유난히 높은 곳, 뭔가 내려다 보이는 곳이 좋다. 하굣길에 낮은 지대에 얼른 도착하는 것이 아쉽다고 느껴 교문을 나서면서 아주 천천히 걸어 내려온다. 마치 빨리 도착하면 멀리서부터 기대하고 꿈꿨던 것이 사라질 것 같았다.

 

할머니 손을 잡고 절뚝거리며 동네 의원을 찾던 날,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다. 그렇게 잠시 공중에 머무는 순간 내가 원하는 것을 달려가는 것보다는 빨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아빠도 내 손을 놓은 채 각자의 길을 갔지만 다친 아이 걱정에 둘 중에 한 명은 다시 돌아올 줄 알았다.


엄마 아빠는 내 기대와는 달리 집 앞에 선 두 대의 택시를 따로 타고 떠났다. 스스로 당신들에게 힘든 순간이라 나를 살필 겨를이 없다고 위로했다. 할머니의 한결같은 정성에 부모의 부재를 느낄 사이 없이, 아니 티를 내지 않고 살았다. 때로 드라마나 영화처럼 몰래 지켜보는 부모를 상상한 적이 있다. 지켜보다 갔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내가 잘 지내는 것이 모두를 안심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학교 행사 때는 더 나서서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계주 주자여서 조금만 쉬다 다시 운동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많이 아파하니까 보건 선생님이 진통제 한 알을 주셨는데, 결국 대타가 뛸 수밖에 없었다. 몇 시간을 내리 잠들었나 보다.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담벼락 위에서 뛰어내렸던 그날처럼 엄마 아빠를 마지막으로 본 그때처럼, 운동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온데간데 없었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잡지 못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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