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소혜 Jan 24. 2023

아빠는 저쪽에 있어요

나의 사랑 나의 가족

설 차례를 지내는데 아빠가 없다. 작년 이맘때만 하더라도 아빠는 안방에서 먹향을 풍기며 신문지에 붓으로 뭔가를 쓰시며 차례상에 올려지는 것들을 확인했다.


-포는 올렸?


조리하는 음식과 달리 건조 상태로 된 포는 접시에 담기만 하면 되는 데도 엄마는 매번 놓쳤다. 이번 차례 때도 역시나 포는 오빠가 절을 하고 나서 빠진 것을 알았다. 아빠가 계셨으면 엄마에게 한 소리 하셨을 텐데,


-포를 챙기는 것을 보니 너희 아빠 오셨나 보다.


아빠의 음성 대신 떨리는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을 하느라 엎드렸을 때 왈칵 눈물이 솟았다. 힐끔 울 언니를 보니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눈물이 흘러내려 닦는 중이었다.


작년 여름에 지내던 할아버지 제사 때만 하더라도 아빠는 제사상 앞에 계셨다. 꼼꼼히 음식을 정렬하시고 정갈하게 절을 올렸다. 가족 모두는 아빠의 눈짓에 따라 순서를 지키며 예를 다했다. 그때도 병색이 완연하였는데 흐트러짐이 없었다.

불과 6개월이 흘렀을 뿐인데 차례상을 기준으로 볼 때 아빠는 이쪽에 없다. 신위에 이름이 적혀 있다. 평생을 우리 가족의 선봉장처럼 움직였던 수를 상실했다. 저마다 독립을 해 살아도 부모님 만큼 열심히 살지는 못하는 터라 우리 가족에게 아빠는 여전히 필요한 산그늘이다.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고 쉬고 싶을 때 찾아드는 곳 말이다.


행히 엄마 품이 남아 있어 감사한 명절이다. 차례를 지내고 아침을 먹었다. 서둘러 엄마에게 세배를 드렸다. 병풍처럼 둘러고 있는 자녀, 손주, 며느리 모습들에 엄마는 만세 동작을 하며 좋아하셨다. 외롭지 않을 만큼 형제자매를 통해 자손이 뻗어갔기에 엄마는 혼자 남겨졌지만 혼자가 아니다.


저쪽 세상 어딘가에서도 먹 향기를 풍기며 화목하게 지내는 우리를 보며 흐뭇해하실 아빠가 그려진다. 각자의 삶에 지뢰 같이 예측 못할 어려움과 맞서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삶의 어려움이 아빠가 남겨준 묵묵한 기질 때문에 화로운 일상으로 희석될 것이다. 그렇게 아빠는 우리 곁에 의지 속에 살아 계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와 헤어지고 난 후 삼일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