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형 당뇨 판정 그리고 3개월 만에 20킬로 감량이야기
1회: 갑자기 들이닥친 불청객
24년 여름, 당시 나는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매일 갱신하고 있었다. 66kg. 체중이 정점을 찍었다. 언제나 바빠서 동동거리고 뛰어다녔다. 운동할 시간은 점점 없어졌고, 식사할 시간도 부족했다. 그나마 작년보다는 많이 한가해졌는데도, 여전히 바빠서 나 자신을 돌볼 시간이 좀처럼 나질 않았다.
요일별로 캘리그래피 배우기, 월별 독서 모임과 격주 독서 모임, 도서관 글쓰기 모임, 거기에 주말농장과 베란다 식물 키우고 번식시키기 등 일정이 꽉 차 있었다. 감정이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는 사춘기 아이 키우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 중 하나였다. 여러 가지 일을 벌여 놓고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과로를 하고 있었다. 주변 동생들이 나를 보며 걱정을 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에 걸렸다. 코로나의 위세가 약해지면서 마스크를 벗는 분위기가 확산되던 시절이었다. 약 먹고 엄격히 격리를 하며 회복하는 듯했으나, 오히려 몸이 갑자기 이상해졌고, 급성 신우신염에 걸린 것이었다. 지금 기억으로 염증 수치가 5000이었던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은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중환자실에 갈 뻔했어요."
3주간 죽도 물도 먹을 수 없는 상태로 고통스럽게 입원 치료를 받은 후 구사일생으로 회복하였지만, 여전히 죽도 물도 먹을 수 없었다.
얼마 뒤, 아들 학교에 백일해가 돌았고, 하필 우리 아이가 그 동선에 걸렸다. 공부방을 운영하는 나로서는 가족들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아들과 나 모두 검사를 받았다. 그 병원은 아플 때면 주말에 자주 가는 곳이었다. 그곳에 우리 가족의 주치의 같은 의사 선생님이 있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분은 뜬금없이 피검사를 해 보자고 제안했다. 살이 찌니 고혈압으로 혈압약도 먹고 있었고, 겉보기보다 몸이 약한 나는 평소 감기나 비염에 위장 장애, 과민성 대장염을 달고 살았었다.
나로서는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흔쾌히 검사를 했는데 당수치가 100이 훨씬 넘는 결과가 나왔다. 당뇨가 의심된다고 했다. 아무 생각이 없이 다음 날 당화혈색소를 검사했는데 선생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당화혈색소 6.8이 나왔다. 결국 나는 당뇨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당뇨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나로서는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병인지 알지 못했다. 의사 선생님은 우선 본인의 블로그를 친구 추가하라고 했다. 글을 읽어 보고 공부를 해야 한다면서 당뇨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의사분들이 운영하는 유튜브를 보며 공부하라고 했다.
"3개월 후에 당화혈색소 검사를 하는데 열심히 노력해서 당뇨약을 끊는 것을 목표로 해 봅시다!"
마치 암 선고를 하는 의사 선생님처럼 나를 쳐다보며, "자, 자, 할 수 있어요. 힘내시고 도전해 봅시다."라고 말했다.
나는 의사 선생님에게 물었다.
"당뇨약을 끊는 게 가능해요?
선생님은 다소 단호하게 말했다.
"약을 끊고도 예전처럼 먹거나 생활해서는 안 되고 새로운 습관대로 살아야 합니다."
나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질문했다.
"식사는 어떻게 해야 하죠?"
짧고 강렬한 답이 날아왔다.
"밀가루만 안 먹으면 됩니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식후 측정해 보니 내 혈당은 다른 것에도 요동쳤으니 말이다.
"바로 약국에 가서 혈당계를 사서 아침 공복과 식후 2시간마다 당 측정을 하세요. 비용이 많이 들 테니 나라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봅시다. 내과 근처의 큰 약국에 가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세요."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하자, 의사 선생님은 약사에게 주라고 하며, 본인의 성함과 전화번호까지 메모해 주었다. 약국에 가서 문의해 보니 뭔가 규정이 바뀌었는지 나는 지원 대상이 아니었다. 인슐린 주사를 맞을 정도의 사람들만 지원이 되는 것 같았다.
난생처음 당뇨 측정기 세트를 샀는데 비용이 후들후들했다.
'이걸 매번 사야 하는구나! 그것도 평생을!'
그동안 건강관리를 잘 못하고 살찌도록 방치한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약사님이 당뇨 측정법을 알려주는데 왜 이렇게 어렵고 두렵던지! 바늘로 소독한 손을 찌를 땐 너무 끔찍해서 소름이 끼쳤다. 평소에 피를 무서워해서 의사나 간호사가 되는 것조차 꿈도 꿔 본 적이 없던 나였기에, 약사님이 내 손가락을 찌를 땐 차마 손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른 곳을 보며 아픈 것을 참았다.
역시나 혈당은 매우 높았다. 앞날이 정말 걱정되었다. 이 무서운 바늘로 하루에 네 번에서 일곱 번을 찔러야 한다니 끔찍했다. 게다가 2시 30분부터 밤 11시까지 일을 하는 나로서는 그 시간을 맞춰가며 측정하는 것도 걱정스러운 부분이었다.
무겁고 두려운 맘으로 혈당기를 가지고 집으로 왔다. 음식도 함부로 먹을 수 없으니 고역이었다. 혈당기는 무서워서 그 후로 일주일간 사용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당시 나에겐 사용법이 너무 어려웠다.
'의사 선생님이 잘못 진단 내리신 건 아닐까? 아니면 저 날 내가 달달한 걸 저녁에 먹어서 혹시 8시간 공북이 지켜지지 않은 건 아닐까?'
온갖 생각을 하며 현실 도피하려 애썼다. 평소 혈압으로 다른 병원에서 약을 타고 있던 나는 그 의사 선생님에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당화혈색소 수치를 말했다.
'혹시 오진이 아닐까' 하고 확인차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실망스럽게도 당화혈색소가 더 정확한 거라서 6.8은 빼박 당뇨라고 하는 것이었다. 1주일간 혈당 체크는 못 했지만 유튜브로 열심히 당뇨에 대해 공부하고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기 시작했다.
1주일 후 용기를 내서 다시 약국에 가서 혈당기 사용법을 배워 왔다. 이젠 용기를 내어 손가락을 찔렀다. 계속 유튜브로 당뇨 공부를 하였고, 눈뜨면 혈압과 혈당을 쟀다. 알고 보니 엄청나게 무서운 병이었다. 잘못하면 발을 자를 수도 있고, 생활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합병증으로 죽을 수도 있는 병이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제때 잘 먹지도 못했다. 밥 먹을 수 있는 시간에는 급히 입에 음식을 밀어 넣으며 살았다. 잠을 줄여도 해야 할 일은 끝이 없었다. 그래도 굶을 수는 없어서 살기 위해서 고구마 10킬로를 박스째 샀다. 에어프라이어에 군고구마를 많이 구워서 학생들도 주고 나도 먹었다. 고구마는 군고구마가 가장 혈당이 많이 오른다. 쪄서 먹으면 좀 낫고, 생고구마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 당시엔 그 외에도 빠르고 간편하게 커피와 먹을 수 있는 토망고나 초당 옥수수 등을 대 놓고 먹었다. 움직임은 거의 없고 달달한 음식과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였으니 살이 안 찌려야 안 찔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과연 3개월 만에 혈당을 정상화시키고 혈당약을 끊을 수 있을까?'
염려 반, 불신 반으로 시작한 내 당뇨병 극복기는 이렇게 포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