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이라는 것
이유가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닐지도
요즘 나는 “그냥”이라는 단어가 꽤 마음에 든다.
대충 넘기는 말 같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의 내 생각을 가장 정확하게 담고 있는 말 같다.
우리는 늘 삶을 설명하려 든다.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왜 멈춰 있는지,
왜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지.
설명할 수 없으면 불안해지고,
이유가 없으면 뭔가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아진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꼭 이유가 있어야 할까.
무엇인가를 너무 쉽게 나누는 일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누군가는 불행하고,
누군가는 빛난다고.
그리고 그 차이를 능력이나 노력으로 설명하려 든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건 꽤 단순한 설명이다.
내가 잘된 이유를 전부 내 탓으로 돌리는 것도 어리석고,
타인이 어두운 길을 간다고 해서
그의 선택과 노력을 가볍게 평가하는 것도 어리석다.
우리는 각자 다른 선로 위에 올라탄 채
앞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정확히 모른 채
그냥 달리고 있을 뿐인데,
도착하기도 전에 서로의 행로에 이름을 붙이느라 바쁘다.
우린 감정도 때론 나중에 이름이 붙인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들도 비슷하다.
사람들은 어떤 상태를 보면 곧바로 이름을 붙인다.
절망, 회피, 불안, 체념.
그런데 그 이름들은 때론 결말을 본 뒤에야 붙여진다.
이미 끝난 이야기들의 감정을 가져와
아직 살아 있는 현재에 덧씌운다.
정작 그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은 그게 절망인지, 버팀인지,
아니면 그냥 하루인지를 명확히 구분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타자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신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비슷한 사례와 통계를 근거로
“지금 너는 이런 상태일 거야”라고 말한다.
대부분은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정확하지는 않다.
타인의 인생 앞에서 조용해지고 싶어질 때
그래서 요즘은 타인의 인생에 대해
조금 더 조용해지고 싶어진다.
불행으로 가는 열차든,
별빛이 쏟아지는 선로를 달리는 기차든,
우리는 결국
각자의 끝을 향해 가는 중일뿐이다.
내가 빛난다고 해서
그게 전부 내 실력이라고 말하지 않고 싶고,
누군가 어둠 속을 달린다고 해서
그를 쉽게 평가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아, 저 사람은 지금 저렇게 살고 있구나”
이 정도의 거리감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기다림이 아니라, 오늘을 통과하는 중
요즘 나는
뭔가를 애써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살고 있다는 느낌에 더 가깝다.
기다린다는 게
꼭 무언가를 바라보고,
노력하고,
도착을 전제로 해야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기다림이라는 말조차
나중에 붙여질 이름일 뿐이고,
지금은 그저 오늘을 통과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은
굳이 결론을 내리지 않으려 한다.
의미를 정리하지도 않고,
이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도 판단하지 않는다.
그냥, 요즘은 이렇게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