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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번째

끝까지 읽는다는 것

by IRIS
좋은 삶이 아니라, 끝까지 읽힌 삶


요즘 나는
행복해서 삶을 사는 건 아니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그렇다고 불행해서 사는 것도 아니다.

그냥, 살고 있으니 그 안에 행복 같은 순간이 가끔 스며든다.
행복은 목표라기보다 살아 있음에 덧붙여지는 잠깐의 감각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잘 사는 삶’이라는 말보다 이런 생각을 더 자주 한다.

내 삶을 끝까지 읽고 싶다.

잘 정리된 이야기나
멋있게 쓰인 서사가 아니라,
그저 끝까지 읽힌 이야기로 남고 싶다는 마음이다.


읽는다는 건, 각자의 방식으로 머무는 일

사람들은 책을 저마다 다르게 읽는다.
누군가는 의미를 찾고,
누군가는 문장을 곱씹고,
누군가는 그냥 페이지를 넘기는 시간을 즐긴다.

어떤 방식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읽는다는 건 결국 각자의 방식으로 그 자리에 머무는 일이기 때문이다.

삶도 그렇다.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해석하고,
누군가는 묵묵히 견디며 지나가고,
누군가는 자주 덮었다가 다시 펼치며 살아간다.

살다 보면
스스로를 평가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자신에게 유난히 엄격해지기도 한다.
그 역시 삶에 머무는 하나의 방식이다.
인간이기에 가능한 장면들이다.

나는 요즘
삶을 완전히 떠나버리지 않는 태도만큼은 소중하다고 느낀다.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비참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을 건너뛰지 않고 다시 돌아와 머무는 것.

그것만으로도 삶은 여전히 읽히고 있다.


동화 같은 결말이 아니라, 끝에 서 있는 나

나는 모든 이야기가 아름답게 끝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훈이 남지 않아도 괜찮고, 뚜렷한 결론이 없어도 괜찮다.

다만 내 삶의 마지막 페이지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싶다.

그 자리에 서서 내 삶을 과장하지도, 깎아내리지도 않고
한 호흡으로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부족했던 이야기여도 괜찮고,
서툴렀던 이야기여도 괜찮다.

나는 잘 살고 싶은 게 아니라
끝까지 살아보고 싶다.
끝까지 경험하고,
끝까지 읽고 싶다.

그게 요즘 내가 품고 있는, 가볍지만 진지한 나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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