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알아간다는 것
어디로 가느냐보다, 어떻게 가고 있느냐
한동안 나는
늘 방향을 먼저 고민했다.
지금 가는 길이 맞는지, 남들보다 늦지는 않은지,
이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그런데 요즘은 그 질문이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다.
방향이 틀리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방향은 생각보다 자주 바뀌고,
바뀐다고 해서 삶이 망가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어디로 가느냐보다
그 방향으로 얼마나 무리해서 달리고 있었는지였다.
지금은 방향을 크게 흔들지 않는 대신 속도를 먼저 본다.
이 속도로 계속 가도 괜찮은지, 이 리듬이 나를 소모시키지 않는지.
그 기준 하나만 바뀌었을 뿐인데
삶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빠르게 가던 시절을 이미 지나온 사람의 선택
예전의 나는 속도를 줄이는 걸 실패처럼 느꼈다.
조금만 느슨해져도 뒤처지는 것 같았고, 멈추면 끝날 것 같았다.
그래서 늘 한 박자 빠르게 움직였고, 조금 과하다 싶어도
“지금은 그럴 때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 시절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덕에 도착한 곳들도 있고, 그 속도로만 볼 수 있었던 풍경도 분명 있었다.
다만 지금의 나는 이미 한 번쯤은 달려본 사람의 얼굴로 이 속도를 다시 바라본다.
계속 전력 질주하지 않아도 삶은 이어진다는 걸 알게 된 사람의 선택.
느려졌다고 해서 방향을 잃은 건 아니고,
속도를 조절한다고 해서 의지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냥 이제는
지속 가능한 쪽을 고르는 쪽이 조금 더 솔직해졌을 뿐이다.
이 속도로도 충분히 도착한다는 믿음
요즘 나는 삶이 나를 재촉하지 않는다는 걸 조금씩 믿게 된다.
물론 여전히 불안은 있다.
가끔은 “이러다 멀어지는 건 아닐까?”
“너무 편해진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불안은 예전처럼 나를 몰아붙이지 않는다.
이 속도로도 충분히 도착할 수 있고, 도착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나는 꽤 괜찮다는 감각이 조용히 따라오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정답을 더 잘 아는 게 아니라
자기 속도를 더 정확히 아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 나는 방향을 크게 흔들지 않되, 속도를 자주 살핀다.
이 속도로 계속 가도 괜찮은지, 숨이 차지는 않는지,
오늘의 나를 너무 소모시키지는 않는지.
그리고 대부분의 날에 그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응, 이 정도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