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미선택
나는 정말 선택해 온 사람일까
나는 오랫동안 내가 중요한 순간마다 선택해 왔다고 믿었다.
상담의 길, 진학, 대학,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에 분명 ‘예’라고 말한 내가 있었다.
그래서 내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정말 선택한 걸까, 아니면 흐름에 몸을 맡긴 걸까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이상하게도 반발심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인생의 중요한 기로가 또렷한 장면으로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잠깐 멈춰 세웠다.
선택은 분명 있었는데
결단의 장면은 없었다.
내 기억은 영화가 아니라 사진이다
생각해 보면 내 추억은 영화처럼 이어지지 않는다.
앞뒤가 분명한 서사가 아니라
사진처럼 남아 있는 순간들에 가깝다.
그때의 공기, 표정, 감각만 또렷하고
왜 그 장면이 다음 장면으로 이어졌는지는 흐릿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선택의 삶을 거의 상상하지 않는다.
그 삶이 없어서가 아니라
비교할 수 없게 기억해 왔기 때문이다.
선택되지 않은 삶은 지워진 게 아니라 애초에 같은 프레임에 담기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선택하지 않은 순간조차 선택이었다.
미룬 것도, 유예한 것도,
흐름에 몸을 맡긴 것도
모두 ‘내가 나이기 위해’ 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내 삶은
우연처럼 보이면서도
결국 늘 나로 수렴한다.
선택도 나고 운명도 나다.
나일 수 없는 선택과, 미완의 결말
그렇기 때문에 이런 두려움이 생긴다.
혹시 나는 나를 너무 단단하게 규정해 온 건 아닐까.
나일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면 나는 무너질까.
아마 처음에는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이해도 되지 않고 설명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 선택을 설명하지 못한 채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떨까.
미완의 결말을 내 삶에 남겨두고
끝없이 사고하고 재단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감사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기뻐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죽음 이후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말 이후의 삶이다.
이미 끝났다고 느낀 선택을 해결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것.
나였다고 봉인하지도 않고
틀렸다고 폐기하지도 않는 태도.
그때 나는
비로소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영화의 첫 장면은 여전히 선택일 것이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선택이 반드시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나는 여전히 나를 믿는다.
다만 그 믿음이 감옥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선택되지 않은 사진 몇 장을
조용히 내려놓고 다음 첫 장면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