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번째

가면과 조각

by IRIS
너 가면 쓴 거 아니야?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너 가면 쓴 거 아니야?”
“그건 진짜 네가 아니잖아.”

이 말엔 이상한 전제가 숨어 있다.
어딘가에
벗겨야 할 얼굴이 따로 있고,
그게 ‘진짜’라는 믿음.

그래서 가면은
숨김이 되고, 연기가 되고, 가짜가 된다.

근데 나는 잘 모르겠다.
사람이 아무 얼굴도 없이 세상에 나갈 수 있나.

누구 앞에서든 말투가 달라지고, 속도가 달라지고, 표정이 달라진다.
그건 속이려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한 조절에 더 가깝다.

그래서 가면이 문제라기보단,
가면을 쓰는 순간
“그건 네가 아니야”라고 말해버리는
그 말이 더 문제처럼 느껴진다.


“진짜 나”라는 말이 사람을 얇게 만든다

“그게 진짜 너야.”
이 말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많은 시간을 잘라낸다.

그날의 나, 그전의 나, 그 이후의 나.
그중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가식, 도망, 변명, 변했다는 말로 밀려난다.

진짜를 만들기 위해 너무 많은 나를
가짜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진짜 나’라는 말은
요즘 나에게 조금 잔인하게 느껴진다.

진짜 하나를 세우는 순간, 나머지는 전부 설명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되어버리니까.



나는 가면이 아니라, 조각으로 나를 이해하고 싶다


나는 가면을 쓴다기보다,
나를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을 뿐이라는 쪽에 더 가깝다.

친구에게 쓰는 말,
일터에서 쓰는 말,

혼자 있을 때 떠오르는 말.

언어가 달라진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같은 생각도 누구에게 말하느냐에 따라 다른 문장이 될 뿐이다.

그래서 가면은 숨김이 아니라, 번역에 가깝다.

문제는

번역본을 원문이라고 믿을 때 생긴다.

이 모습이 나다,
이 말투가 나다,
이 태도가 진짜다
라고 고정해 버리는 순간, 나는 그 말 안에 갇힌다.

그래서 나는 가면이라는 말보다
‘나를 구성하는 조각’이라는 말이 더 좋다.

조각은 버릴 수 없다.
좋은 조각도,
못난 조각도,
말이 된 조각도,
아직 말이 없는 조각도 다 모여야 나가 된다.

그중 하나만 떼어내 “이게 진짜야”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너무 얇아진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가면을 벗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하나로 고정하려는 말에서 조금 멀어지려는 사람에 가깝다.

나는
어떤 날의 나도
완전히 가짜는 아니라고,
그렇게 남겨두고 싶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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