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버그와 에우로스가 샤워실에서 건넨 실존의 초대장
학수고대하던 부산여행을 하게 되었다. 휴직을 하게 되니 아무래도 쪼들리게 되고, 아파트 대출금 갚느라 앓는 소리를 하는 남편의 곡소리를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켜고 못 들은 척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던, 하지만 일망타진 해 오던 부산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해운대의 시원한 파도소리는 내 몸의 온 감각을 깨우며 환영의 인사를 건네는 듯 했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시를 읊어내는 아들의 언어지능이 나에게로부터 온 것임이 틀림없다는 착각 속의 자부심을 즐기며 해운대의 해변을 걸었다. 그렇게 고대하던 힐링여행은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보였다.
그런데 부산에서는 봄의 정령이 한껏 춤을 추고 있으리라 생각한 나의 기대는 동풍의 신 에우로스의 손짓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부산의 그것은 서울의 바람보다 훨씬 더 차갑고 셌다.
야속하기 만한 바람의 손짓 때문이었는지 기차 안 손잡이를 마구 만지다가 먹은 과자에 묻어 있던 세균들의 여파인지 여행 두 번째 날, 아들 몸이 열로 뜨끈뜨끈 데워지기 시작했다. 인후통을 호소하는 걸로 보아 감기 증세임이 분명했다. 헐레벌떡 주변 편의점을 찾았고 편의점을 뒤져 사 온 부루펜 한 잔을 들이킨 후 아이는 평소와 달리 낮잠을 청했다. 낮잠을 자라면 서러워 할 아이인데, 아이의 낮잠은 평소와는 정말 다르게 저녁, 밤까지 이어져 깨질 않았다.
호텔 밖으로 날아다니는 부산갈매기는 깡통시장의 씨앗호떡과 영도의 포장마차가 찍혀 있었을 가족사진을 물고 날아가고 있었다. 아이의 부루펜 시럽 옆에 놓인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며 원치않는 호텔콕의 아쉬움을 달래는 밤이었다.
그 다음 날, 다행히 아이 열은 내렸고 주변을 검색해서 찾은 소아과에서도 아이 상태가 호전되었다고 진단을 받았다. 아이가 호전되었다는 안도감과 광안리의 두툼하고 신선한 회를 먹으며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낼 수 있겠다는 설렘을 안고 다음 행선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이동하는 내내 소운이가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칭얼대기 시작했다. 서둘러 미리 예약한 다음 숙소로 이동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1시 반. 오늘 묵을 호텔에 도착했다. 체크인은 3시. 1시간 반이 남아 있었다.
“아아... 엄마.. 빨리 호텔에 들어가고 싶어.. 너무 힘들어.”
도파민좌 아들이 저렇게 아프다고 하면 정말 아픈거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부랴부랴 얼리체크인이 되는지 양해를 구해보았다.
‘가능합니다. 그런데 30분당 5천원 비용이 부가됩니다.’
호텔방이 준비가 되면 바로 얼리체크인이 허용되는 다른 호텔의 시스템과는 다르게, 가성비를 따져가며 예약한 이 호텔은 얼리체크인 비용을 부가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평소에 가성비가 아니라고 하면 서러울 로마담이지만...
‘만오천원즈음이야.‘
떨떠름하지 않은 척, 쿨하게, 쿨한 척, 결제를 하고 호텔방으로 들어갔다.
호텔방을 들어서자마자 아이는 하얗고 폭신폭신한 침대로 몸을 던졌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자 그제야 안도감이 밀려왔다.
“근데 무슨 어얼리 체크인 비용을 받냐?”
남편의 투덜거림에 고개를 끄덕이며 격하게 공감했다. 나는 부산 바람에 묻어 있는 소금기인지 내 몸에서 나는 짠내가 빚어내는 소금기인지 모를 것을 벗기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샤워실로 향했다.
“우와, 어메니티 엄청 좋은 건데? 음~향기도 너무 좋아”
호텔에 준비된 샴푸, 린스, 바디워시 등 어메니티가 굉장히 고급스러웠다. 호텔은 어메니티 비용을 아끼고 환경을 보호하자는 목적으로 절약형 튜브를 배치했다. 어메니티에 감탄하던 그 순간 내 짱구가 쉴 새없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얼리체크인 비용으로 추가 비용도 냈는데, 통에 어메니티를 좀 덜어갈까?‘
마침 폼클렌저를 덜어갔던 빈 통에 덜어가면 되겠다는 꼼수에 내가 감탄을 금하지 못하던 순간, 샤워기에서 내리는 물줄기와 함께 열 두 글자가 쏟아져나와 내 머리를 두드렸다.
‘너, 이걸 가져가면 당당하겠어?’
샤워기의 물줄기와 함께 선지자 콜버그님의 목소리가 계속 쏟아져 내렸다.
‘너는 지금 콜버그님이 얘기하신 도덕 단계의 몇 단계에 있는 거니?’
‘소운이 앞에서 당당하게 그 행동을 할 수 있니?’
"샴푸 한 병에 내 양심의 단계를 팔 것인가?“
유난히도 물줄기가 따가운 샤워를 마친 후, 머리를 말리러 나왔다. 머리를 말리려 드라이어를 켠 순간 드라이어의 바람은 나를 그 때로 데리고 갔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비겁했던 그 순간.
결혼식이 끝나고 축의금 목록을 살펴보던 중이었다. 3만원... 나의 결혼식 식대는 5만원이 넘는데, 그 날 회사동료인 그녀는 내 결혼식에 와서 식사를 하고 가고 심지어 나에게 식사가 정말 맛있었다고 품평을 하기까지 했었다.
‘흠... 뭐지?’
직장을 옮긴 그녀가 몇 년 후 연락이 왔다. 그녀가 결혼을 한단다. 5만원을 내고 남편이랑 같이 결혼식 뷔페를 즐기려고 했다. 3만원에 먹고 갔으니, 여기 식대는 더 저렴하니 남편이랑 같이 다녀오면 좋겠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축의금의 손익계산서 앞에서 작아지는 나를 인지하지 못한 채 내 마음은 나의 찌질한 명석함에 취해 한껏 부풀어 있었다. 축의금을 내고 식권 두 장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신부대기실에 가서 인사를 했다.
”남편이랑 같이 왔어?“
”아... 아니..“
내 입이 지금 뭐라고 하는거야? 거짓말을 씨부렁거렸다.
‘붉어진 내 얼굴 눈치챈 거 아니야? 아리스토텔레스는 얼굴이 붉어지는 게 순수함의 상징이라고 했는데... 순수함의 상징은 무슨...’
그의 문장이 무색하게도 내 얼굴은 그저 비겁함의 열기로 타올랐다.
”남편이랑 같이 오지~ 맛있게 먹고 가~“
남편을 투명인간으로 만든 그 순간, 나는 그 묘하고 깊은 수치심에 휩싸였다. 뷔페에서 나는 남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고 그날 내가 좋아하는 스시를 입으로 먹었는지 코로 먹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음식을 밀어 넣을수록 목구멍이 자꾸만 막히는 것만 같았다. 최애 음식 스시를 맛있게 먹던 남편은 인어공주처럼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고 나는 인어공주를 물거품으로 만든 마녀가 된 것만 같았다. 쥐구멍이 있다면 찾아서 숨어버리고 싶은 마녀.
다시 부산호텔로 돌아온 나는 드라이어를 냉풍 모드로 돌렸다. 동풍의 신 에우로스가 드라이어의 바람을 빌어 나에게 전하는 말을 듣도록. 깨어있도록.
결국 나는 향기롭고 고오급스러운 그 샴푸를 담아오지 않기로 선택했다. 콜버그와 동풍의 신의 도움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몰라서가 아니라, 바로 내가 알기 때문이었다. 정직함이란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기 위한 거울이 아닐까 싶다.
우리 시어머니는 기품이 있으신 분이신데, 심하게 아끼려고 하는 행동을 ‘추접스럽다’고 표현하신다. 부산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의 시어머니가 말씀하신 그 ‘추접스러운’ 행동을 한 그 때의 내가 추접스러웠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부산여행의 마침표를 찍으며 다다른 결론은 찌질함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용기있는 선택을 한 나는 결코 추접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정직의 선택이 추접스럽지 않은 체화된 선택이겠지만, 추접스러운 욕망과 양심이 전투하는 내 심연에서는 무샴푸의 선택이 고귀한 실존의 시간이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도 내 몸에서는 부산을 향하던 내 몸에서처럼 여독까지 더해진 짠내가 났다. 그런데 짠내의 결이 왠지 달라져 있었다.
종착역 플랫폼에 발을 딛자 불어온 에우로스의 동풍은 블링블링 핑크빛의 고급스러운 히말라얀 소금이 빚어내는 향기를 내 몸에서 퍼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