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카페를 다녀오고 배운 거룩한 방임

실존적인 삶을 위한 고군분투기

by 로즈마리

오늘은 휴직 중인 내가 오랜만에 회사 동료와 동료의 아이 지영이와 만나는 날이다. 주말이라 사람이 붐빌 것을 예상해 키즈카페 오픈런을 하기로 약속했다. 오픈런 같은 건 내 체질엔 맞지 않지만 만남을 학수고대해 온 회사 동료의 제안을 받아들여 키즈카페 오픈런을 하기로 하였다.

“어머,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경쾌한 안부 인사와 함께 키즈카페 오픈런은 그렇게 성공적인 하루의 서막을 알리는 듯했다.


나의 회사 동료인 지영이 엄마는 참 유능한 사람이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승진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열정을 다하는 분이다. 그리고 육아에도 진심인 사람이다. 방학이면 전국 곳곳을 누비며 아이의 체험을 위해 애를 쓰고, 오픈런은 기본이라고 할 정도로 부지런한 분이다. 에너지도 넘치고 유능하고 밝은 사람이라 함께 있으면 활력이 더해져 참 매력있다.

그런데 사실 요즘 지영이 엄마와 연락을 할 때 마음 속에서 고개드는 의문이 있었다.

평소에 나는 워낙에 감정에 관해서는 고성능 안테나를 달고 있는 사람이기에 감정을 잘 알아채고 공감도 잘한다. 아마도 그런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지영이 엄마는 좀 속이 후련했었나보다. 그래서 내가 휴직한 기간동안 지영이 엄마는 내 복직을 늘 그리워했다. 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 한 켠이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내 사랑 받고 싶은 욕구를 채워준달까..)

그런데 지영이 엄마와 대화를 하고나면 때때로 내 마음속 LED 화면에는 어김없이 배터리 방전을 알리는 신호가 뜨는 것이었다. 본인이 힘들 때 한껏 쏟아낸 감정을 들어주고 나면 정작 나는 방전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면 좋을지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키즈카페로 들어섰고, 이제 초등학교 중학년이 된 아이들은 어른들이 일일이 쫓아다니지 않아도 스스로 잘 어울려 놀았다. 우리는 카페 한 켠에 자리를 잡고 눈으로만 육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의 고성능 마이크는 끊임없이 출력을 해댔다. 그녀의 입은 멈출 줄 몰랐고 진심을 다해 공감하던 나도 영혼 없는 리액션을 기계적으로 출력하기 시작하였다. 내 동공이 풀리고 동태눈깔이 되어가기 막 전 즈음 하늘이 도우사 키즈카페 종료 시간이 다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 메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로 정해졌고 가까운 피자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엄마, 지영이는 벌써 접영 배운대. 대단하지?”

“와, 대단하다.”

“소운이도 수영배우죠?”

“네. 소운이도 배우고 있어요. 아직 초급이긴 한데요, 수영선수처럼 정말 멋지게 수영을 해요.”

정말 우리 아이는 초급이지만 수영을 좀 멋지게 한다. 나도 모르게 나온 진심에 내 아이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스쳐 갔다.


“어머 우리 지영이는 접영은 배우는데 몸에 힘이 없어서 그렇게 멋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지영이 엄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영이의 축 쳐진 배춧잎 같은 표정이 내 레이더에 잡혔고 내 안테나가 비명을 질렀다. 나는 수영의 미학부터 날씬함의 장점까지 온갖 논리를 동원해 지영이의 자존감을 수혈하기 시작했다. 속사포가 된 듯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 이후에도 지영이 엄마는 피자를 썰며 본인 아이의 공부 태도를 칼질했다. 나는 칼질한 피자도 엄청 맛있는 피자라며 양념을 치기에 바빴고...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 아이가 넌지시 내게 말을 건넸다.

“엄마 근데 지영이가 화난 것 같아."

"그래? 소운아, 네 안테나가 친구 마음을 살피느라 고생했네. 하지만 이제 그 안테나를 소운이 마음 쪽으로 돌려볼까?"

“응 알겠어.”

그렇게 아이의 마음까지 살핀 내 안테나는 집에 돌아와 몇 시간동안 전혀 작동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수신을 멈췄던 내 안테나를 충전하며 깨달았다. 아이에게 친구의 마음의 주인은 친구이니 너는 네 마음에 안테나를 맞추면 된다고 한 조언이 실은 내가 들어야 했던 조언임을...!!


타인은 그가 배우고 성장할 그만의 시간과 기회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오늘 만남에서 과도한 책임감으로 타인의 삶에 개입하여 오만하게 고치려 했던 것이다.


사랑과 존중은 거룩한 방임을 전제로 한다는 생각이 번뜩 머리를 스쳤다.


거룩한 방임이란, 그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삶 안에서 겪으며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따뜻하게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라고 정의해 보고 싶다. 거룩한 방임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사랑의 토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따뜻하게 자리를 지켜주려면 나는 내 배터리부터 충전해야 했다.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해주시다가 홀연히 기도를 하러 산에 오르셨던 예수님을 떠올리며 오늘 나는 내 안테나를 콘센트에 꽂아야 했다. ‘거룩한 방임’을 중얼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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