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을 위한 삶의 고군분투기
요즘 나는 당근으로 내가 쓰지 않는 물건을 파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팔아서 이문을 남기는 것도 쏠쏠하고, 집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어서 당근 앱을 하루에 몇 번이나 클릭하며 중고 거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입지 않는 꽤 쓸만한 코트를 팔게 되었다. 당근에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구매자에게 연락이 왔고, 집이 멀어 택배 거래를 하게 되었다. 구매자는 먼저 돈을 송금했다. 통장 잔고가 두둑해지는 걸 보며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설 연휴가 맞물려 있었다. 양해를 구하고 고향에 다녀온 뒤 택배를 부치기로 약속했지만, 연휴의 여파와 시댁 일정 등으로 약속한 날을 또 넘기고 말았다. 다음 날, 약속을 지키지 못한 찝찝함으로 당근 앱을 열었다. 택배를 부쳤냐는 구매자의 물음에 나는 오후에 꼭 부치겠노라고 재약속을 했다.
그날, 아이와의 스케줄을 끝내고 피곤함을 이끌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문득 택배비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것이 기억났다. 답변이 늦은 구매자와 실시간으로 연락하기보다, 늦게 보낸 부채감을 덜기 위해 택배비를 내가 부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500원가량의 택배비를 내고 드디어 물건을 보냈다. 며칠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구매자에게 송장 번호를 보내며 넌지시 덧붙였다. "택배를 늦게 부쳐 미안한 마음에 택배비는 제가 부담했습니다. 좋은 구매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배송이 늦어 미안한 마음을 '택배비 대납'이라는 호의로 갚는 내 행동이 참 우아해 보였다. 하지만 돌아온 답장은 뜻밖이었다. 구매자가 이미 입금할 때 택배비를 포함해 보냈다는 것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입금액 끝에 붙어있던 '2,000원'이라는 숫자가 그제야 떠올랐다.
‘아, 택배도 늦게 보냈는데, 택배비 보낸 것도 제대로 확인을 안 했구나.’
순식간에 '좋은 판매자이자 시혜를 베푸는 우아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이 무너져 내렸다. 수치감이 밀려왔다. 동시에 내 마음 안에서는 내 잘못이 아닌 이유들을 찾아대는 허약한 자아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방어기제 씨'의 출현이었다.
아차 싶었다. 택배를 늦게 보낸 것도, 택배비 확인을 못한 실수도 그저 인정하고 사과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미안함을 정확하게 인정하는 대신 '시혜'로 갚으려 했다. 나의 비겁함이 수면 위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실존으로 산다는 것은 우월해지는 과정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수용하고 인정하며 더 나은 선택을 해나가는 과정이다.
나는 구매자에게 내가 놓친 게 많았노라고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오버된 금액만큼만 부담하게 된 셈이지만, 마음만은 택배비를 다 부담하고 싶을 만큼 미안하고 감사했노라고 고백했다.
오늘 또 당근을 통해 배운다.
결국 인생은 우월해지는 과정이 아니라, 나와 타인을 겸손하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과정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