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적인 대화를 위한 고군분투기
갑작스러운 아이의 바둑학원 폐원 소식은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바둑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바둑학원 여러 곳의 체험수업을 시도해 본 후에 선택한 학원이었다. 심혈을 기울여 고른 학원이자 아이가 만족하며 다닌 학원이었기에 충격은 더 컸다.
놀란 가슴을 부여 잡고 아이의 바둑학원 등원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바둑사범님과 딱 마주치게 되었다. 나는 바둑사범님께 공손히 두 손을 공수한 채 사범님 바둑수업을 듣는 소운이 엄마라고 말씀드리며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아이가 수업을 잘 듣고 있다는 말을 기대하며 사범님께 아이의 수업태도에 대해 물었다.
“잘 듣고 있어요. 그런데, 어머님, 소운이가 바둑 유튜브를 보나봐요? 소운이 수준에서는 알 수 없는 수에 대해 질문을 해요.”
사범님의 질문에 바둑 유튜브는 요즘 보지 않는다는 근황과 함께 아마 바둑 책에서 본 내용으로 질문을 하는 것 같다고 답을 드렸다. 그리고 아이가 바둑사범님 수업을 엄청 좋아한다며 폐원이 너무 아쉽고 혹시 다른 지점에서 바둑사범님의 수업을 들을 수 있는지 물었다.
“제가 다른 지점에서 하는 수업은 수준이 높아요. 소운이는 어려워서 못 들을 거에요. 이 주변에 바둑학원 많지 않나요?”
아이가 바둑사범님 수업을 좋아한다는 내 찬사에 기쁨으로 화답할 것이라는 내 기대와는 달리 사범님은 다른 바둑학원을 알아보라고 했다.
‘우리 아이가 질문을 많이 해서 싫었나? 다른 학원을 알아보라는 건 우리 아이가 싫다는 건가?’
그의 한마디에 바둑사범님은 내 행성에서 '내 아이를 내쫓는 냉혈한'이 되었다. 내 안의 슈드씨(당위)의 출현이다. 불쾌감이 들었다.
“아.. 우리 아이가 사범님수업을 좋아해서요. 그래서 어떻게든 들을 수 있는지 여쭤본 거에요...”
“아, 네.”
돌아서는 내 뒷통수가 표정을 지을 수 있다면 적나라하게 들켰을 민망함과 불쾌감을 긴 머리카락이 가려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주, 바둑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프로사범님이 소규모 수업을 열기로 했으니 소운이가 함께 참여하는 것이 어떻냐는 제안이었다. 아이가 사범님 수업을 굉장히 좋아하고 따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제안이었다.
그런데 그 때 문득 사범님의 대화가 떠올랐다.
고귀한 사실과는 별개로 내 뇌는 ‘우리 아이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사범님의 수업을 듣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다‘는 나만의 결론을 내리며 벌써 나를 저기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있었다.
다시 잡자, 멘탈을.
“소운아, 사범님과 수업을 계속 할 수 있다는데, 어떠니?”
“엄마, 나는 사범님이랑 수업을 계속하고 싶어. 정말 재미있게 가르쳐 주셔. 친절하시기도 하고~”
아이가 들을 수업이기에 엄마의 육감으로 아이의 선택을 무마시킬 순 없는 노릇이다. 그래, 수업은 잘 가르쳐 주시니 수강하기로 하고, 바둑 사범님께 아이의 질문이 정말 방해가 되었는지 물어보자.
안드로메다에서 지구로 돌아와 확인을 하자.
그리고 오늘 아이가 바둑학원에 마지막으로 등원을 하는 길이었다. 원장선생님은 소운이의 바둑사범님이 개별로 진행하게 될 소규모 수업 참여 여부를 물었고 나는 수업을 듣기로 했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님, 사범님이 소운이가 어려운 질문을 많이 한다고 기특하다고 하셨어요.”
“네? 기특하다고요? 아... 저는 소운이가 수업 때 질문을 많이 한다고 하셔서 수업을 방해 하는 건 아닐지 걱정했어요.”
“전혀요. 안그래도 바둑사범님이 어머님이 소운이가 바둑 유튜브를 보는 걸 싫어하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
바둑사범님은 저기 저 처녀자리 쯤으로 가버리신 거였다. 바둑사범님과 나의 연결고리는 우주의 팽창 속도만큼 빠르게 멀어져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나의 호의를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내 영혼은 화가 났고, ‘내가 호의를 표현하면 상대는 기쁘게 받아야 한다.‘ ’선생님은 아이를 긍정적으로 봐라봐야한다.‘는 나의 당위가 진실을 가려버렸다.
내 호의를 능수능란하게 받지 못한 바둑사범님 잘못이라고 외치고 싶지만 진실은 사범님은 소운이의 질문을 기특하게 생각했던 것, 그것이다.
아이의 질문을 부담스러워 한 것도 아이를 싫어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그것은 내 관념 속 슈드씨(당위)가 만들어 낸 환각성운들이었다.
안드로메다로 간 내가 지구로 돌아와 진실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질문을 하기로 다짐해 본다. 상대의 마음을 궁금해 하는 호기심 어린 질문 말이다.
명료하게 진실을 마주하고 오늘도 연결되고 사랑할 수 있게, 용기라는 연료와 호기심이라는 윤활유를 준비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
안드로메다까지 갔던 나의 항해는 비록 고됐지만, 덕분에 나는 오해라는 블랙홀을 피하는 법을 배운 소중하고 값진 경험인 것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어서 마무리하고 싶다..
실존의 삶을 위한 고군분투는 이렇게 오늘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