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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잘안 Mar 17. 2022

중년의 남편을 바라보며

그대, 외로워 말아요

미워하고 증오한다던 신혼 시절을 지나 15년을 함께 살고 나니, 남편은 곧 50이다.

세월이 닳고 달아 이제 서로 닮아가는 지경에 이르니, 그 쪽이 안쓰럽고 작아보이기만 한다.


작은 회사를 책임지고 있다보니,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남편은 예전같지 않게 수척한 얼굴로 말수도 줄어들었다.

식사 중에도 멍하니 천정을 쳐다보고 '뭐하느냐' 물으면, '응, 회사 일...'이라고 입을 닫아 버린다.


며칠 전, 남편은 항상 의지하던 선배로부터 충고같은 비난을 들었다.

'누가 그러던데, 너 요즘 변했대...' 등등등....

자기가 아닌 누군가의 얘기라며 입을 땠지만, 결국 남편은 날선 말들에 베이고 말았다.


젊은 날, 전쟁처럼 싸우고 나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단순무식'이 장점이라던 남편이었는데, 세월의 흐름에 호르몬의 변화를 거스를 순 없었나보다.


단단한 바위같던 남편은 없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같이 쳐져있는 눈썹과 어깨를 보니, 안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여보...힘내....그런 사람들 말 다 듣지마...."

상투적인 몇 마디였지만, 진심을 우려내어 담았다.

말할 데라도 있는 게 다행이라며, 어색한 눈맞춤을 하고 남편은 일어섰다.




3년 전쯤, 남편의 친한 형님이 세상을 떠났다.

사업적으로 서로 의지하며 힘이 되어주던 사이였는데, 삼남매를 두고도 우울증을 해결하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 것이다.

황망한 가족들만큼이나 남편도 힘들어했다.

가장의 무게를 나누지 못해, 혼자 몇 달째 약을 드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난다.


남편은 그 형님의 마음이 요즘 이해가 간다고 했다.

얼마나 괴로웠을지, 얼마나 외로웠을지...


중년의 삶.

20대의 불꽃같은 청춘을 보내고, 30대 장작을 모아 불을 지펴 올리고, 40대에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지키려 달려온 인생.

꺼져가는 모닥불을 다시 바로 세우고, 새로운 장작을 패기 위해 여전히 분주한 50대를 맞이하는 남편을 보니, 고맙고 사랑스럽고 안쓰러웠다.




아이들만 보이던 내 눈에, 어느새 우두커니 앉은 남편이 보였다.

늦지 않았나 모르겠지만, 이젠 남편에게도 '요즘 기분은 어때요?'라는 돌봄이 필요할 것 같다.


어색하지만, 그에게도 손을 내밀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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