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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잠 Aug 17. 2024

아파서 시작된 생각

시간이 지나 바람이 빠진 풍선 vs 하늘 높이 날다 터진 풍선  

자율신경실조증을 달고 사는 건 꽤 불편한 일이다.

이 병이 생긴 건 20대 중반이었는데 큰 전조증상도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원인 모를 두통, 어지럼증, 전신근육통 등이 하루도 빠짐없이 밀물처럼 밀려들면서 그제야 몸이 뭔가 잘 못 됐음을 알아차렸다.

그럼에도 생소한 병이었던 탓에 나는 병명을 아는 데만도 3년 가까이 걸렸고 그동안 날린 돈은 헤아릴 수가 없다.  그 뒤로 시간이 꽤 흘러 이제는 그때만큼 아프진 않지만 병은 여전히 평범한 일상을 여러 방식으로 방해하는 재주가 있는데 수시로 어지럼증을 불러일으키고 두통, 브레인포그, 전신근육통 등 다채로운 모습으로 잊을 만하면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체력 이상으로 조금만 무리했다 싶으면 어김없이 찾아오며 그럴 때에 2,3일 앓으면서 끙끙대는 외에 내가 있는 건 없다. 나는 자율신경실조증이 생기기 전까지 성격이 급하고 뭐든 시작하면 양껏 쏟아붓고 그렇게 꽉 찬 하루를 보낸 데서 오는 만족감으로 하루를 보내는 편이었는데 병이 거기에 발을 걸어 나는 열심히 달리다 나동그라진 꼴이 되었다.


워낙 사는 게 복불복이고 아픈 건 어쩌다 딸려오는 변수 같은 거라 불평을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사소한 일까지 방해받을 때면 꽤나 무기력한 기분이 든다.

몇 안 되는 내 취미에는 책 읽기가 있었고 평소 집에서 뒹굴기 좋아하고 그렇다고 심심한 건 싫은 나에게 독서는 최적의 취미였는데 말이다.

일단 어느 날인가 책을 정신없이 읽었다 싶으면 그다음 날부터 온몸이 지끈거린다. 머리도 근육도 모든 게 두드려 맞은 것처럼

그럴 때면 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채로 빙빙 도는 머리를 가지고 천장을 봤다 원치 않게 생긴 공백에 유튜브를 켰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기도 하고 그 무기력감에 어쩔 줄 모르게 돼버린다.

그러면서 그때부터 책 읽기는 갑자기 나에게 형용할 수 없이 애틋하고 소중한 뭔가가 돼버린다.

언제든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모든 상황과 환경이 충족되어야만 할 수 있는 일

근데 생각해 보면 이건 책 읽기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가지를 뻗어간다.


가까이할 수 없기에 애틋하고 그래서 더 소중해져 버리는 것

그건 다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보면 얼마 전 끝난 연애도 비슷했다. 

나는 최근까지 몇 년간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하는 연애를 했었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사이에 아주 아무 일도 없는 것은 아니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가 제법 가깝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런 생각이 오래 이어지기도 전에 우린 늘 다퉜고 끝에는 또 서로를 아주 미워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채로 헤어지곤 했다. 

그 사람은 평소에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문제일 때가 많았고 나는 말을 하지만 다투는 순간에는 마음에 없던 다른 말을 하게 되어 결국 우리는 늘 서로가 하는 말을 오해하게 됐고 끝내는 서로에게 닿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해결되지 못한 채 끝나서인지 마지막까지도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어쩌면 있었을지도 모를 이상적인 순간에 대한 미련이나 가정들이 내 생각 속에서 더 애틋하고 간절해지기도 했던 거 같다.  


헌데 그러면서도 이제 나는 이런 식으로 애틋하고 소중한 일들이 없길 더욱 바라게 됐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닿을 수 없어서 영원히 미지의 영역이자 아린 환상으로 남는 것보다 매일 조금씩 힘들고 버거워도 부닥치며 가깝고 익숙해져 손에 잡히는 일상으로 자리 잡은 모습을 보는 게 훨씬 좋다고 여긴다.

황홀한 꿈보다 또렷한 촉감이 느껴지는 실재하는 하루가 나의 삶이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늘 아파도 책을 읽는다. 적어도 책 읽기는 나에게 아린 환상 같은 게 되면 안 되니까

또 요즘 들어 전엔 못 해봤던 것들을 하나씩 시도하는 중이다.

그 경험 때문에 나는 아플 수도 있지만 아플까? 하는 망상에는 시달리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어느 누군가 이카루스에 대했던 말도 떠오른다.

"사람들은 이카루스가 너무 욕심을 부렸던 나머지 결국 추락해서 죽은 것에만 초점을 두지만 이카루스가 실제로 날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 지는 잊는다고."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카루스가 아니어도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결국 죽게 된다.

그렇게 나도 이카루스처럼 하늘을 날아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내일도 모레도 어딘가에 부딪칠 내가 오늘의 이 기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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