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90세인 이*수 할머니. 오늘도 약국 문을 여시며 똑같은 레퍼토리를 읊으신다.
"아이고 죽었으면 좋겄어. 병원도 오기 싫은데 왔어."
우리 이*수 할머니 손님은 항상 똑같은 말씀을 하시며 약국을 방문하시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으시다.
"어머님. 그런 말씀하면 약 안 지어 드릴 거예요."
"창피해서 그랴. 구십먹은 노인네가 살겠다고 병원 다니는 게 창피해서."
할머니는 그 누구보다도 건강을 챙기신다. 소화가 조금만 안돼도 바로 병원에 오시고, 두통이 생기면 지난번에 지어간 약이 있어도 새로 원장님을 뵙고, 진찰을 받아 새 약을 타가신다.
한 번은 아랫배가 쌀쌀 아프고, 소화가 안된다고 오셨다.
"어제저녁에 뭐 드셨어요? 어머님? "
"밥 먹기 싫어서 라면 먹었어. 뭐 먹고 싶지도 않아. 죽었으면 좋겠어"
"어머님. 지금 심장이 붓고 안 좋아서 심장약도 드시고 하시는데, 라면같이 짜고 밀가루 음식 드시면 바로 병원에 입원하실 수도 있어요. 좀 챙기셔. 자식들보고 모셔가라고 하셔서 편하게 좀 계셔요."
자식에게 폐 끼치기 싫다며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답답한 나머지 나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 눈물을 글썽거리시며 갑자기 손을 잡으셨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손주 같어. 할머니가 주책이지? 갈 때 돼서 자식들한테 올라가면 짐밖에 더 되겠어. 그냥 요양보호사 와서 청소해주고, 이렇게 사는 게 편해."
"어머님. 건강하고 오래사세요. 앞으로 죽겄으면 좋겠단말 하지 마시고. 밥도 좋은걸로 잘 챙겨드세요."
어머님은 연신 고맙다고 하시며 택시타고 댁에 들어가셨다.
대부분의 어르신 손님들은 자신이 아픈걸 자식들에게 표현하시지 않는다. 약국에서는 매일같이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어린아이처럼 투정 부리시지만 실제 자식들한테는 혹여 자신이 짐 될까 걱정이 먼저 앞서신다. 손님들의 투정에 지칠때도 있지만, 자식들에게 못하는 소리 잠깐 들어 드린다 생각하고 앞으로도 잘 하기로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