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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희 Jan 05. 2022

10년 후에도 쓰고 있을까요?

드라마 <집필불가>

안녕하세요, 설님.


설님. 오늘은 저도 책 이야기 대신 다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책을 안 읽어서는 아니고요, 사실상 요즘은 키보드에 손을 얹고 뭔가를 쓰는 자체가 버거운 저로서는 그나마 좀 쉬운 글을 쓰며 한숨을 돌리는 게 나을 듯 해요. 그래서 오늘은 드라마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요즘 저는 책보다 드라마를 더 열심히 봅니다. 뭐, 열심히라고 하기는 그렇고 그냥 틀어놓은 채 보다가 잠드는, 자장가의 용도로 쓰고 있지요. 사실은 책을 읽다가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책을 좀 더 읽어야 할 텐데, 라고 생각하지만 아마 지금 저는 심신이 많이 지쳐 있는 상태인 것 같아요. 무언가를 읽고 상상하고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능동적인 행위를 해내기에는 에너지가 부족합니다. 얼마 전에 본 영화 <마나나의 가출>에서 나온 것처럼 가끔은 그냥 집을 떠나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요. 다들 알아서 잘 살겠지요. 내 관심을 갈구하는 사람들을 떠난다는 것은 두려운 동시에 짜릿한 일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내 인생이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하고 생각합니다. 산책을 해도,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셔도 마음은 항상 바쁩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시시각각 저를 괴롭힙니다. 아, 그래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은 그냥 내버려두라는 말이 있지요. 어차피 해결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웠다면, 소위 깨달았다는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듯 그 말을 하고 다닐 필요도 없을 거예요. 아주 오래 전에, 제가 20대였을 때 지금의 제 나이였던 직장 상사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고민이 없고 문제가 없으면 그게 인생이냐. 지금 돌이켜보면 그 양반의 뒷모습, 꽤 쓸쓸했었습니다.


지난 주 일요일에는 실로 오랜만에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정신없이 뭔가를 하면서 그 다음에는 또 뭘 해야 하나 궁리하다가 앗, 이러면 안 되지, 하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이렇게 주말을 보내면 주중에 내내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 하고요. 설님. 제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있다면요, 후회하는 겁니다. 저는 후회하는 것이 싫어요. 그래서 그 순간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고, 그리고 설사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후회해봤자 별 수 없으니 실패의 좋은 점이라도 찾아보려고 애쓰는 거지요. 그런데 이런 인생은 피곤합니다. 피곤하디 피곤합니다. 차라리 되는 대로 살고 나중에 가서 땅을 치며 후회하다가 결국 술잔을 들고 멀리 지평선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며 “내 인생은 완벽한 실패였어…” 하고 읊조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고 생각하고 나니, 아아 싫어, 그런 인생 정말 싫단 말이야, 하고 고개를 흔들게 됩니다.


그래서, 뭘 해야 주중에 잃어버린 나의 주말을 한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해봤습니다.(쓸데없이 고민을 너무 많이 하죠.) 그랬더니 딱 두 가지가 생각나더라고요. 집에서 늘 눈에 거슬렸던 한곳만 정리하기. 그리고 드라마든 영화든 책이든 실컷 보기.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노는 데도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나란 인간…) 1년 6개월째 눈엣가시였던 베란다를 정리하고(힘들어서 다는 못했습니다만) 그 이후에는 소파에 앉아서 4시간 동안 넷플릭스를 드라마를 봤습니다.


TV를 잘 안 보시는 설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넷플릭스를 플레이하고 무엇을 볼지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선택의 순간 중 하나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대개 뭘 봐야 할지, 무엇에 내 인생의 이 귀중한 2시간을 바쳐야 후회하지 않을지를 이보다 더 신중할 수 없을 정도로 신중하게 고르고 또 고르다 보면 내 인생의 귀중한 2시간이 다 흘러가 버립니다. 결국 저는 지친 채로 TV를 꺼버리지요. 그러나 이번 주말에는 그런 멍청이 같은 짓도 안 하기로 결심했으므로 최신작으로 메인 화면에 뜬 일본 드라마 하나를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집필불가>라는 드라마입니다.



요즘 저는 하릴 없이 일본 드라마를 보곤 합니다. 일본 드라마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하릴 없이 보기에 좋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야말로 어깨에 힘을 빼고, 뭐 이런 걸 다 드라마로 만들어? 싶은 내용을 드라마로 만듭니다. 이른바 가벼움의 미학입니다. 그게 가끔은 지겹고 뻔하기도 하지만, 심신이 힘든 저 같은 사람에게는 이렇게 마음에 앙금을 남기지 않는 가볍고 단순하고 하릴없는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왜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가 하면, 저처럼 힘들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저 가볍고 단순하고 하릴없는 이야기를 멍청하게 쳐다보며 하루의 피로와 과거의 실패와 미래의 불안을 잊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책을 쓰는 저조차도 책 한 권을 잡으려면 불굴의 투지를 발휘해야 하는데 원래 읽지 않는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물론 그럼에도 기어이 책을 읽는 훌륭한 독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간과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고 책을 읽는 사람은 훌륭하고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저급하다며 폄훼할 필요는 없지요. 세상에는 좋은 드라마 만큼이나 가치 없는 책들도 많습니다. 게다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일정량의 당분이 필요한 법이고, 우리는 다들 너무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 않나요. 사람의 24시간이 모두 의미 있는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숨이 막히는 일입니까.


아, 이제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하고 드라마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집필불가> 역시 가벼운 드라마입니다. 심지어 드라마 작가가 드라마 대본 쓰는 이야기입니다. 아이고 뭐 이런 걸 또 드라마로? 그러나 일본 드라마의 어깨에 힘을 뺀 가벼움은 쓸데없이 비장하지 않기 때문에, 한 편의 드라마에 인간사의 모든 것을 담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최고의 명품 드라마는 아닐지라도 썩 괜찮은 이야기 한 편을 만드는 데는 성공합니다. 책 한 권에 모든 걸 다 바치려는 저 같은 멍청이와는 다르지요. 이런 힘 빼기의 기술, 배우고 싶습니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케이스케는 무명의 드라마 작가입니다. 이제까지 제대로 된 드라마를 써본 경험은 2번, 그것도 아무도 모르는 심야 시간대의 단막극이나 공동 집필의 경험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그는 행복합니다. 그의 아내는 유명한 소설가입니다. 아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산 아름다운 주택에서 그는 매일 가사를 돌보고 아내와 아이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며 나름대로 평화롭고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한 방송국에서 프라임 타임의 연속극을 집필해달라는 제의가 옵니다. 그조차도 놀랄 일입니다. 아니, 날 어떻게 알고? 아니, 날 뭘 믿고? 그는 잠깐 고민하지만 일단은 해보기로 합니다. 이건 분명 그의 인생에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일 테니까요. 하지만 이 방송국 놈들, 정말이지 악마 같습니다. 오늘 만나서는 빌린 돈이라도 내놓으라는듯 내일까지 기획안을 달라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드라마를 써야 하는지도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드라마의 컨셉도 남성 액션물에서 학원물, 흡혈귀물로 계속해서 바뀝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연배우로 기용하기로 한 남자 스타가 입김을 넣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케이스케는 씁니다. 어떻게든 써냅니다. "난 못 써!"를 외치고 머리를 쥐어뜯고 날밤을 새고 심리 상담을 받고 쓰고 까이고 수정하기를 반복하면서, 결국 “괜찮네” “재미있어요” 라는 말을 듣는 드라마의 대본을 완성해 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죠. 마지막 화를 쓰기까지 온갖 난관이 닥칩니다. 과연 이런 내용을 어떻게 8부작 드라마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싶었는데 이 드라마는 거기까지 즐겁게 달려갑니다. 오랜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노력하지 않고도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


일본 드라마에서, 아니 적어도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이 이야기에는 과거의 상처도 현재의 트라우마도 미래의 불안도 없다는 점입니다. 이 드라마 속의 인물들은 단순하고 평면적입니다. 그러나 또 단순하고 평면적인 듯하다가 언뜻 세상의 이치를 깨닫습니다. 때로는 그 깨닫는 과정이 너무 쉬워 보이기는 하지만, 일본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매번 뭔가를 깨닫는다는 것을 시청자로서 깨닫게 되지만, 사람이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보다는 뭐라도 깨달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낫지 않나요. 그리고 이 주인공들이 그런 것을 깨닫는 계기는 대개 그들의 평범한 생활을 통해서입니다. 매일 매일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면서입니다. 주어진 일을 끝까지 해내면서입니다. 저는 이런 건전함이 꽤 마음에 듭니다.



나도 소설 엔딩 때문에 고민해.  자주 말이야. 그럴  자기 자신에게 물어봐. 나는   이야기를 쓰고 있지?   결심을 했지? 등장인물의 대사도 모두 자기한테서 나온 거야. 이야기의 전개도 무한한 선택지 중에 직접  가지를 선택하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하면서 만든 거잖아. 선택에는 이유가 따르기 마련이야. 이런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자기만의 세계관이  안에 녹아 있을 거야. 드라마의 엔딩도 분명 당신 안에 있어. 쓰면서 찾다 보면 분명히 찾을  있을 거야.


저도 나름대로 마감이 익숙한 글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제게 다가오는 지점이 많았습니다만, 과연 글쓰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떨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소설가인 아내가 드라마 대본을 쓰는 남편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지점도 재미있었고, 지금껏 남편을 열렬히 응원했다가 정작 남편의 작품이 인기를 끌자 알 수 없는 질투심에 사로잡히는 지점도, 직접 그런 일들을 겪지 않고는 그리기 힘든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가장 부러웠던 것은, 아내의 작업실이었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인 만큼, 아내의 작업실은 이 집에서 가장 크고 멋집니다. 중정을 가로질러 문을 열면 들어갈 수 있는 아내의 작업실은 온통 책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아내는 그 가운데에 놓인 한눈에도 멋져 보이는 책상에 앉아 글을 씁니다. 그에게는 비서도 있습니다. 비서는 온갖 청탁 및 출판에 관한 자질구레한 업무를 담당하고, 아내의 소설에 관한 의논도 함께 합니다.(제일 부럽습니다.) 제가 가장 부러워했던 것은 아내가 하루 온종일 글 쓰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뱀파이어 소설을 쓰기로 한 아내를 위해 비서는 서점에서 뱀파이어 관련 서적을 잔뜩 사 옵니다. 그 책들을 읽으며 아내는 소설의 초안을 떠올리고, 자신의 책상에 앉아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지요.


저는 저렇게 우아하게 일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 작업 방식은, 오래된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에 등장하는 주부 작가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머리띠로 머리를 질끈 묶고 식탁에 앉아 온갖 훼방을 받으며 쓰고 또 쓰는 것이지요. 요즘은 가족들을 피해 카페로 가서 씁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집을 나가면 꼭 제 방을, 제 책들로 가득찬 방을 만들 생각이에요. 아니면 숲속에 작은 집을 짓고 그곳의 너른 식탁에서 일할 계획도 있습니다. 과연 그 꿈은 이루어질까요?


“PD님, 저한테 재능이 있을까요? 각본가의 재능이요.”

“그런 걸 왜 나한테 물어. 10년 후에 봐야지. 자네가 10년 후에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면 요시마루 케이스케에게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


그렇군요. 우문현답이란 저런 것이었군요. 저도 어영부영 곧 10년을 채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제게도 일말의 재능은 있는 거겠지요. 하지만 재능은 스티븐 킹 아저씨가 말했듯이 아무것도 썰지 못하는 무딘 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그 칼을 갈고 닦아야 합니다. 과연 저는 앞으로 10년 후에도 계속 쓰고 있을까요? 쓸 수 있을까요?


얼마 전에 저는 북토크 도중에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제가 쓴 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이 뭐냐고요. 생각해 봤는데 없었습니다. 정말 없었습니다. 그것들은 저에게 이미 과거의 것이 되었어요. 뭐 정말 오랜 후에 그런 질문을 다시 받는다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어쨌든 없습니다. 저는 그것보다는 앞으로 무엇을 쓸지가 더 중요하고요, 무엇을 쓸지를 생각할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를 즐기며 살아가다 보면 썩 괜찮은 미래에 당도해있지 않을까, 가 지금의 제가 품는 작은 희망입니다. 10년 후에도 제가 계속 쓰고 있을지, 책을 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주 오랜 뒤에 먼 지평선을 게슴츠레하게 바라보며 술잔을 들고 “썩 괜찮은 인생이었다…” 하고 읊조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2022년 1월 5일

이제 마흔다섯 살이 되어버린 수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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