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치 너무 급하지 않은 긴 언덕을 내려가는 날 같으면 좋겠다.
아무리 내달려도 깊은 계곡이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여전히 고도가 유지되는 그래서 계속 유유히 다운힐을 즐길 수 있는 마치 공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그런 날이면 좋겠다.
내려 달리는 속도만큼 맞바람이 온몸에 시원하게 불어오고, 속도는 대략 20에서 25킬로이면 좋겠다.
나에게는 단지 세 가지 색깔만 필요한 날, 푸른 하늘과 간간히 떠 있는 눈 부시게 흰 구름, 그 밑 길 양쪽에 펼쳐진 녹색의 숲!
그 청량한 세 가지 색깔에 묻혀 완만한 다운힐을 마냥 즐길 수 있는 그런 날이면 좋겠다.
어쩌다 쉬었다 가려 잠시 멈춘 곳엔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 있고 그늘 밑엔 벤치가 하나 있어,
벤치에 앉으면 눈앞에 시원한 바다가 펼쳐지고 바다 먼 곳 저편에서 작은 모습으로 일렁이던 너울은 어느새 해안가 바위에 부딪히며 하얀 포말로 흩어질 때 하늘엔 갈매기가 끼욱거리고 물속을 헤엄치던 고래는 공중으로 솟구쳐 보는 사람을 감탄케 만드는,
아니면 잔잔한 물이 흐르는 조용한 북한강 어디, 열심히 찌를 노려 보던 한두 명의 강태공이 다 잡다 놓친 물고기를 바라 보며 한탄을 하는 그런 소리 외엔 아무 소음도 없는 ,
아니면 피레네 산맥 어느 능선, 발밑엔 산자락이 끝없이 포개져 보이고 그 사이사이 느릿느릿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빨간 지붕의 작은 마을이 간간히 보이는 그런 곳이면 좋겠다.
돌아오는 길도 여전히 다운힐, 속도는 대략 20에서 25킬로 장딴지와 종아리엔 부하가 걸리지 않고 심박수는 분당 60번 정도인 그런 날이면 좋겠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