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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호 Nov 19. 2022

자전거로 떠난 산티아고 4

Day (10/25)- 팜플로나에서 SJPDP

지난밤 팜플로나 기차역에 오후 8시경에 도착 후 기차역 광장 한편에서 자전거 박스를 열어 자전거의 상태를 점검했다. 비록 박스의 외부에는 여기저기 상처가 났지만 다행히 자전거는 멀쩡했고 박스에 같이 담아 가지고 온 짐과 가방들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역사에서 나오는 불빛과 주변 가로등 불빛 아래 자전거를 조립하고 3개의 가방을 자전거에 달았다. 때마침 브라질에서 온 또 다른 자전거 순례자 Cesar(어떻게 발음을 해야 할지는 아직도 모르겠다)와 같이 조립을 끝내고 이젠 쓸모가 없어진 자전거 박스를 가까운 쓰레기통에 같이 치웠다. 박스야, 수고 참 많았다. 이제는 편히 쉬거라!


브라질 친구는 영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몰랐지만 이심전심으로 그도 나와 같은 알베르게를 예약했다는 것을 알고 같이 자전거를 타고 어두운 팜플로나 거리를 같이 헤매다 예상시간보다 훨씬 늦게 숙소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숙소라고 해 봐야 네 개의 2층 침대, 8명의 남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도미토리이다. 그런 도미토리가 네 개인가 있다. 그리고 비좁은 화장실 겸 샤워실이 남녀 각각 한 개씩.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부엌 겸 투숙객끼리 교제할 수 있는 거실이 있고...  같은 방에는 한국에서 온 젊은이가 하나 있었다. 산티아고를 갔다가 이제는 역방향으로 여행 중이라 한다.


그런데 오늘이 우리 부부의 35주년 결혼기념식이다. 여보 미안하고 고마워!!!


다음 날 아침 일찍, 시차와 긴 여행으로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비가 조금씩 뿌리는 서늘한 팜플로나 시내로 나선다. 그런데 자전거는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고?

팜플로나와 관련해 기억해 둘 만한 두 가지 -- 하나는 Running of the Bulls, 그리고 또 하나는 헤밍웨이.

<팜플로나 기념품 가게 앞에 세워진 황소 달리기 모형 사진, 저 걸 배경으로 사진 찍는데 3유로 내야 한다. 도x놈들>

왜 그런지 몰라도 스페인 사람들은 소를 괴롭히는데 특이한 재주가 있는 것 같다. 투우 경기(투우 경기의 결말은 누구나 다 알듯이 소에겐 비참한 최후다)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고.....  

Running of the Bulls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흥분된 소떼를 좁은 거리(팜플로나의 old 다운타운의 골목길)로 몰아넣고 사람과 소떼가 어우러져 미친 듯 달리다 혹자는 넘어져 소에 밟히기도 하고 부상도 당하는데 심한 경우에는 부상으로 인해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고 한다. 이는 소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어떤 소는 사람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부상도 당하는데 때로는 심한 부상으로 도살장으로 직행하는 신세를 면키 어렵게 된다.

사람들은 그걸 보고 소리도 지르고 즐거워도 하고 깔깔거리며 술도 마시는 기괴한 광경을 연출하는데 팜플로나 그러한 기행의 으뜸 도시이다.


<유서 깊은 팜플로나 타운홀 - 일 년에 한 번 7월 초, 여기서 황소와 사람들의 기행이 시작된다>


이런 기행은 매년 7월 초에 열리는데 이 때문에 인구 고작 20만 명의 작은 마을에 약 백만의 관광객이 몰려들어 모든 숙박시설이 동이 나고 그야말로 난리 부르스가 며칠이어진다니  특히 황소 입장에서 보면 팜플로나야 말로 엽기적 황소 글라디에이터의 비극이 일어 나는 그라운드 제로이다.


<도시의 옛 거리 - 황소와 사람들의 레이스 트랙인 셈이다. 처음 이곳에 던져진 소는 얼마나 황당하고 놀랄까?>

<흥분한 소와 겁먹은 중년 남자의 쓰러져 있는 모습의 동상이 리얼하다>

이후 나는 순례길에서 스페인 소를 만날 때마다 몹시 겸손해 지려 무척 노력했다. 나를 보고 흥분해서 덤벼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면서.... 소야, 소야 나는 착한 순례자야


팜플로나는 또 헤밍웨이가 소설 "해는 또다시 떠 오른다"를 쓴 곳으로도 유명한데 그가 자주 들르던 카페가 아직도 영업 중이다. 이름하여 Cafe Iruna. 카페 앞에서 인증 사진만 찍고 돌아섰다. 나는 갈길이 먼 사람이니까....

<헤밍웨이 단골 카페 - 카페 이루나>


팜플로나 중심가를 간단히 돌아보고 이번 순례길, 아니 모험 길의 시작점 프랑스 St Jean Pied de Port까지의 이동은 Alsa라고 부르는 스페인 버스와 자전거로 했다. 버스를 타고 프랑스 접경에 있는 작은 마을 Roncellevas로 이동한 후 거기서 자전거를 타고 피레네 산맥을 넘어 그 작은 프랑스 마을까지 내려갔다.


다운힐! - 국도(?)를 따라 1057미터의 고개에서 164여 미터의 SJPDP까지의 구비구비 피레네의 계곡을 따라 내리막길! 내 목숨을 하드테일 자전거, 특히 브레이크와 타이어 성능에 걸고 내려 달려야 했던..... 평생 잊지 못할 긴장되고 신나는 다운힐 라이딩을 어떻게 글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내리 꽂히는 듯, 수많은 커브길을 50킬로 넘나드는 속도로 내려 달리며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순간의 지형과 도로 조건, 곳곳이 비에 젖어 미끄러운, 보이지 않는 커브길 반대편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차들(다행히 차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길을 조금만 벗어나면 깊은 낭떠러지,,, 정말이지 모든 영혼을 집중하느라 내 몸의 근육과 오감은 물론 여섯 번째 감각(그게 뭐든지)까지 긴장할 대로 긴장하고 팽팽할 대로 팽팽해졌다. 잡념은 사라지고 온 신경은 브레이크의 강약을 조절하는 두 손가락 끝의 아주 섬세한 움직임에 주의한다. 명상이 별건가? 이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고단계 명상 그 자체이다!

  

<피레네를 넘는 1057미터의 어느 재, 독일 말로는 Joch, 영어로는 Pass, 스페인 말로는 나도 몰라>


대관령이 고작 850여 미터(도로가 지나는 곳의)인 것을 생각해 보면 혹시 독자는 이해할 수 있으려나?!

그러나 이 것은 단지 서막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드뎌 프랑스 입성! 가파른 다운힐을 마치고 나는 내 자전거(이름은 푸디)가 한층 미더워졌다>

작은 프랑스 마을에 들러 순례자 사무실을 찾아 가 이른바 크레덴샬을 받고 알베르게에 투숙한 후 식료품점에서 저녁거리와 아침을 샀다.

내일은 1441미터 고지를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치 1800년대 초, 이베리아 반도 전쟁 때  피레네를 넘어 스페인을 침공한 나폴레옹의 군인처럼 다소 흥분되기도 하고 긴장감이 도는 밤을 보내야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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