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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호 Nov 26. 2022

자전거로 떠난 산티아고 5

Day 2(10/26) - 피레네를 넘어 스페인으로

높고 높으니 높고 높으며,

오르고 오르니 오르고 오른다


1800년대 초,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은 스페인을 침략하기 의해 피레네 고개 중 제일 낮다는 Lepoeder Pass(구글에 의하면 해발 1441미터)를 넘었다. 그 후로 사람들은 그 군대가 지나간 길을 나폴레옹 루트(Napoleon Route)라고 불렀고 산티아고 순례자들 대부분이 그 경로를 따라 피레네 산맥을 넘는다고 한다. 바로 그 경로를 따라가기로 했다.

초입부터 가파르다.

산을 오를 때면 보통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나타나며 서서히 오르는데 오늘은 계속 올라만 가는 것 같다. 초반부터 너무 힘을 쓰면 체력 안배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 웬만한 경사가 나타나면 자전거에서 내려 밀고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아니 어느 시점에선 너무 심한 경사뿐만이 아니라 워낙 험악한 도로 조건으로 인해 줄곧 밀고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당연 걷는 사람에게 뒤처지기 일쑤일 뿐만 아니라 한참 "끌바(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 하다 보니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려는 징조까지 보인다. 나폴레옹을 따라가던 프랑스 졸개들도 고생 참 많이 했겠다.


도중에 우리의 토종 밤과 아주 유사해 보이는 익은 밤이 길 위에 무수히 떨어져 있는 곳을 지나기도 했는데, 밀고 가는 자전거와 짐이 한없이 무겁게만 느껴진 나는 벌써부터 어떻게 하면 짐을 줄일 수 있을까 궁리 중이라 아깝지만 몇 알만 주워 들어야 했다. 그 알량한 밤 몇 개도 나에게는 당장에 부담해야 할 짐이 되기 때문이다.


오르는 도중 한국에서 오신 분을 만났다. 초입에 자전거를 타고 가며 그를 추월했는데 자전거를 끌고 가느라 속도가 늦어져 어느덧 그가 나를 따라붙었다. 그는 울산지역에서 일을 하다 정년퇴임을 하고 홀로 순례길을 걷고 있었다. 이런 오지에서 만나다니.... 울산에 직장이 있었다면 지나온 인생의 어느 모퉁이에서 그와 나는 같은 솥의 밥을 나누었던 때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한 사람은 경기도에서 온 30-40대 정도의 여성분으로 나보다 더 많은 짐을 등에 메고 씩씩하게 홀로 걷고 있는 분이다. 강한 바람을 피해 어느 나무 밑에 몇 명의 순례자들이 쉬며 말을 주고 받는데 언뜻 들으니 그분의 불어(로 생각되는)가 유창하다.

<가파른 경사와 험한 도로 상태로 대부분의 시간 자전거를 밀고 가야 했다>


산을 오르는 동안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중간에 한 곳 음식도 팔고 하룻밤 묵어 갈 수도 있는 쉼터(스페인말로 알베르게)가 하나 있는데 비수기라 문이 굳게 닫혀 있어 가져 간 비상식량, 사과 하나, 육포랑 오징어 말린 것, 에너지 바 그리고 과자 몇 개 등으로 몸에 필요한 에너지를 보충했다. 수통의 물은 일찌감치 바닥이 났다.


어느덧 가파른 고갯길 한 모퉁이, 가쁜 숨 거두려 잠시 내려다본 저 아래 풍광이 대단하다. 가을걷이가 끝난 바스크 농(산)촌의 들판이 나지막한 언덕으로 둘러 싸인채 사방에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 점점이 사람의 서식처, 낡은 농가의 건물들이 산재해 있으며 그 주변에 아직도 피어 있는 이국의 들꽃과 소박한 피레네의 단풍이 가을에 색을 하고 있다. 산이 높아질수록 바람은 세기가 더 하는데 그 바람결에 소 울음, 개 짖는 소리가 간간이 실려 온다.


그러나 아름다운 풍광은 오감에 의해 이성적 정보로만 접수될 뿐 아름답다, 멋지다든가 하는 감정/감동으로 이입되기엔 이 고개를 빨리 넘어야 하겠다는 조바심이 너무나 컸다.   


손목시계가 알려주는 고도는 대략 해발 1000미터.... 사방엔 키 큰 나무나 관목도 보이질 않고 오로지 목초지만 보인다. 그 목초지는 몇 안 되는 말이랑, 소 그리고 양들이 독차지하고 팔자 좋게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그런 높은 지역에 차 한 대정도는 무난하게 지나갈 정도의 너비로 상당한 부분의 길이 잘 포장되어 있다. 경사는 완만해졌지만 서 있기도 힘들 정도의 세찬 바람 때문에 여전히 끌바를 해야 했다.  

<대서양 기운을 받아 단숨에 이베리아 반도를 지난 편서풍은 피레네의 높은 벽에 부딪혀 찢어지는듯한 비명을 지른다. 볼륨을 크게 틀고 동영상을 보시길...>


포장도로는 자기가 가고 싶은 길로 가 버리고,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이는 돌무덤 길이 나온다. 입에선 절로 탄식이 나오고 자전거를 가지고 온 것이 무척이나 후회스러웠다. 그야말로 10미터 전진에 10분간 휴식이랄까? 더군다나 길을 잃을까 두려워 저 멀리 앞서 걷는 한 사람의 순례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죽어라 좇아가야 했다.


이제 고도는 1300여 미터.

롤랑의 샘물 주변엔 여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참을성 있게 자기 차례를 기다린 후 수통에 물을 담았다. 내 차례를 기다렸다 수통에 물을 채워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물 맛이 이렇게 달 줄이야.


프랑스/스페인 국경을 넘어 스페인으로 들어 서니  숲이 나타났고 능선을 따라 숲을 아래 위로 나누는 길이 있는데 길에는 낙엽이 허리춤까지 쌓여있다. 앞서 간 순례자들이 헤집고 간 덕분에 낙엽이 치워져 낙엽더미가 다소 낮아진 궤적을 따라 힘겹게 전진했다.    

이 낙엽 더미를 지난 후 체인과 뒷바퀴 기어세트에 끼인 낙엽을 일일이 뜯어 내야 했다.

 

새로운 자동차를 개발할 때 거쳐야 할 많고 많은 테스트중 Snow Packing Test라는 것이 있다. 법으로 규정되어 있거나 대중에 잘 알려진 테스트는 아니지만, 따라서 모든 자동차 회사가 이런 테스트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캐나다나 미국의 눈 많이 오는 지역을 염두엔 둔 테스트로서, 가령 폭설이 내리는 날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할 때 눈이 엔진 흡기계로 빨려 들어가 공기 청정기 박스에 쌓여 공기의 흐름을 막아 엔진 작동을 멈추게 하는 "Failure Mode"를 상정한 테스트이다.

이런 식의 고장을 회피하기 위해 공기 흡입구 주변에 강한 와류(=공기 압력차)를 발생시켜 눈과 공기를 분리시켜야 하는데 이토록 낙엽이 많이 쌓인 지역의 공기 흐름을 연구해 보면 해당 엔지니어에게 아주 유용한 지식이나 사례를 제공할 것 같다.   


    

<드디어 해발 1441미터 고개 정상, 걷고 있는 또 다른 순례자와 서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드디어 고개(Lepoeder Pass)의 정상에 도착했다. 때마침 같은 장소에서 만난 다른 순례자와 서로 사진을 찍어 주었는데 사진을 찍는 순간 저절로(?) 두 손이 번쩍 들려졌다. 아이고 만세! 이젠 살았다!

사진 등 뒤에 보이는 곳이 피레네 산맥 서쪽 스페인 지역, 여전히 많은 봉우리들이 보인다.

 

이제는 내리막길, 순례자 사무실에서 받아 두었던 지도의 조언에 따라 거리는 멀지만 안전한 오른쪽 길을 택해 내려왔다.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심한 바람 때문에 내려오는 도중에 두 번이나 넘어졌다.

지그재그 형태로 180도 가깝게 방향을 틀어야 하는 길(스위치백))에서 방향을 트는 순간 자전거와 나는 강한 횡풍에 노출되어 날려가듯 넘어졌다. 뿐만 아니라 도로 표면은 모래와 굵은 자갈로 덮여 있어 매우 미끄러웠다.  


고개 넘어 위치한 Roncesvalle(1000여 미터)는 작은 마을이지만 전략적 요충지인 것 같다. 8세기(778년) 프랑크의 대제이자 신성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샤를마뉴의 침략군과 이 지역에서 살던 바스크족 사이에 커다란 전투가 벌어졌는데, 스페인에서 전쟁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샤를마뉴 군대의 본진을 후방에서 방어하던 부대가 매복해 있던 바스크 전사들에 의해 전멸했다는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사는 바스크족은 이슬람에게도 당하고 나폴레옹에게도 당하고 스페인 내전 때도 당하고, 지정학적 이유로 외세에 시달렸던 과거는 우리의 그것과 본질면에서 동일하다.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바스크 지역인 팜플로나의 거리에서 마주친 어떤 건물엔 "당신이 있는 곳은 스페인도 프랑스도 아니다. 바스크 국가를 위하여!"라고 크게 적혀 있다. 그 것은 수난의 역사를 거쳐 온 한 많은 바스크 사람들의 자존심과 아이덴디티를 강렬하게 외치고 있는 구호이다.

우리의 과거 특히 근대사가 그런 것처럼 바스크 민족이 겪은 아픔과 각성도 아직 진행형이다.


<브라질 친구를 또 만났다. 오후 4시 늦은 점심이자 이른 저녁을 먹었다.>

나보다 앞서 도착한 브라질 친구를 또 만났다. 그가 차지한 식탁에 동석해 늦은 점심이자 이른 저녁을 먹었다. 사진 뒤에 보이는 멋진 건물은 수도원 건물이고 수도원외에도 알베르게, 박물관, 식당, 기념품 판매점 그리고 예배당등이 있다. 보통 걷는 사람들은 이 곳에서 순례길 첫날 밤을 보낸다.

   

오늘의 목적지 Zubiri까지는 앞으로도 20여 km 남았다. 한두 시간이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커다란 오산.... 오늘의 카운터 펀치는 숨어서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이라 조그만 언덕도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기를 반복해야 했고 마지막 km 의 산길은 내리막임에도 정말 되돌아보기도 싫을 정도로 험악한 길이었다.


아주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은 쨉도 안되게 오래된 옛날, 아프리카 북쪽에 있던 커다란 땅덩어리가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엄청난 에너지에 의해 북쪽으로 서서히 밀려와 유럽의 땅덩어리와 마치 우리의 차전놀이식으로, 세상의 종말을 고하듯, 구천의 모든 악귀가 포효하듯, 천지를 진동시키며 충돌을 했는데 그 힘으로 평평하던 대지는 3000미터도 더 되는 높이로 하늘로 튕겨 올라 피레네의 영봉들이 되었고 그 주변 아주 넓은 지역까지도 1000미터를 넘나드는 고지를 이루었다.


그리고 찢어져 솟구쳐 올라온 고지의 표면에는 마치 공룡의 등, 날카로운 지느러미처럼 심한 요철의 패턴이 날카로운 암석으로 불쑥불쑥 튀어 나왔다. 

<사진을 찍을 만한 여유가 곧 없어졌다>

Zubiri까지 마지막 수 km의 길은 바로 그런 요철의 바위길이다. 걸어가기도 힘든 길을 자전거를 끌고 때로는 요철을 넘느라 들고 가야 했다.


사진에 요철패턴의 바위길이 보인다. 튀어 나온 암석의 높이는 갈 수록 높아져 나중엔 사진의 것보다 서너배는 높았졌고 패턴도 길과 평행하지 않아서 계속 요철을 넘어 가야했다. 이런 바위길은 이미 지쳐버린 나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리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 가는 속도는 더딘데 시간은 이미 7시가 넘었다. 해는 서편으로 기울어져 숲속엔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어졌다. 최대한 빠르게 최대한 열심히 앞으로 나아갔다.


도착지에 제대로 도착할 수 있을까? 혹시 산짐승이 나타나질 않을까? 심신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까스로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가로등이 켜져 있고 나는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갈증이 몰려와 수차례 물을 마셨지만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아마도 전해질이 부족한 것 같아 소금을 먹고 자판기의 설탕 덩어리 주스도 사서 마셨다.


손목 시계는 내가 오늘 3500칼로리를 소비했다고 알려주고 있다. 자전거에 달고 온 3개의 가방과 등에 짊어진 배낭을 포함하면 소비된 열량은 더욱 많아지리라.


그러고 보니 오늘 소변을 한 번도 안 봤다.


아무래도 내일부턴 순례 여정의 전략을 바꿔야 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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