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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호 Dec 01. 2022

자전거로 떠난 산티아고 6

Day 3(10/27) Zubiri에서 Punte de La Reina

오늘은 여행 경로를 바꾸기로 했다. 도보길을 따라가는 대신 포장된 차길(N-135)과 도보길을 사정에 맞게 번갈아 가면서 따라가는 것이다. 악몽 같았던 어제의 도보길을 벗어나 포장도로로 나섰다.

<Zubiri - Arga강에 걸쳐 있는 로마시대의 다리가 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N-135를 따라 달리는 것이 다소 켕기긴 하지만 일단 시도나 해 보자!  다행히 기온은 12도 정도 예상보다 포근하다. 그런데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져 판초를 뒤집어 써야 할지 좀 헷갈렸다.

한 30분 정도 달렸을까? 목요일인데도 많은 사이클리스트들이 반대편으로 달린다. 혼자서, 여럿이서,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시골 마을인 줄 알았는데 그들의 장비(?)와 복장이 우아하고 세련되어 있다. 이 지방에 무슨 자전거 관련 행사가 진행 중인가 보다. 때문에 차들도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달리며 안전거리도 충분히 지킨다. 덕분에 내 마음도 안심이 된다.

평평한 지역의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 건 식은 죽 먹기다. 피레네 산맥도 이제는 자세를 낮추고 나는 이국의 정취를 느끼며 푸디와 함께 즐겁게 달렸다.

<파랗고 낡은 푸디 목걸이를 핸들바에 묶었다>

푸디 - “푸디”는 우리 식구와 열여섯 번 성상을 같이 한 토이 푸들 강아지의 이름이다.

이민 초기 언어와 낯선 환경으로 힘들어하던 우리 식구들 특히 우리 애들에게 친구도 되어 주고 형제도 되어 주었던 고맙고 충성스럽고 소중한 우리 식구의 일원이었는데 몇 년 전 수명이 다해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다.

그리고 나는 순례길을 떠나기 위해 스페인행 비행기표를 예약하며 푸디와 함께 순례길을 떠나자고 약속했다.

갑작스레 코비드가 터지는 바람에 나의 계획이 다소 지연되긴 했지만 나는 푸디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녀석이 목에 걸고 다니던 목걸이를 노란색 하드테일 자전거의 목에 걸어 놓고 자전거를 푸디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낡고 조그만 목걸이에선 꼬리한 냄새가 난다. 집사람은 그 냄새가 싫다고 외면을 하지만 나는 그 냄새가 정겹고 냄새를 맡으면 반갑고 푸근해진다.  

아직도 이렇게 푸디의 존재를 시각과 후각으로 알아차릴 수 있어서 좋다. 그렇게 나는 푸디와 이 번 순례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로마 장군 팜플로나가 세웠다는 팜플로나 성벽 사이로 순례길이 이어진다>

팜플로나 올드 다운타운에서 몇 가지 과일과 빵을 사서 가져간 비상식량과 함께 팜플로나 성벽 근처에 있는 벤치에 점심상을 차렸다. 날씨는 여전히 비를 내릴지 말지 결정을 못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팜플로나 외곽을 벗어나 포장도로 대신에 도보길로 접어들었다.


바람은 다시 심해지고 눈길이 닿는 곳까지 가느다란 오르막 길이 길게 이어진다. 사람 그림자는 얼씬도 않고 바람 소리만 요란한 한적한 길을 한참 동안 오르다 보니 어느 언덕 위에 조그만 마을이 나타나고 마을 입구에 작은  구멍가게가 하나 있다.


그런데 그 가게에서 브라질 친구 Cesar가 나온다.

거기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었다고 하며 반가워하는 얼굴로 바나나 하나를 건넨다.

콜라 한 캔을 사서 그가 건네준 바나나와 함께 들었다. 혈당이 급격히 오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지만  그전에 에너지로 써 버릴 것이란 것도 잘 알고 있다.

단것을 걱정 없이 실컷 먹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힘든 순례길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작은 즐거움이자 보상이다.

알고 보니 브라질 친구 Cesar는 1978년생이다. 드론이랑, GoPro카메라, 스틸 카메라 등등 거의 전문가 수준의 촬영 장비를 들고 다니며 때때로 이곳저곳에 멈춰 촬영하느라 바쁘면서도 나보다 훨씬 빨리 이동을 하는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이기도 하다. 그런 친구도 급한 경사와 주먹만 한 돌들이 굴러 다니는 고갯길에선 별 수 없다. 끌바를 하는 수밖에…. 물론 끌바도 나보다 빠르다.


산끝에는 풍력 발전용 바람개비가 줄줄이 서 있다. 바람개비에 가까워 오니 소음이 심하다. 저주파의 소리라 고막에 닿는 소리도 컸지만 청각으로 구분하지 못하는 낮은 주파수의 압력은 몸으로 느껴진다. 지나친 비교인지 모르나  폭탄이 터질 때 몸으로 충격파를 느끼는 것처럼…

<용서의 언덕을 오르는 길은 누구를 용서하는 것처럼 힘들다>

 용서의 언덕(790미터) – 누구를 용서하는 것은 언덕을 올라가는 것처럼 힘든 일이라는 뜻일까? 아님 언덕에 올라 누구를 용서하라는 뜻일까?


누가 어떻게 명명했는지 모르나 이 맹랑한 이름은 어딘지 모르게 도발적이다. 애써 외면 하지만 편안한 대로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비난도 하고 단죄도 하는 나의  양심을 툭툭 건드리는 것 같아 왠지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순례의 길, 수양의 길, 구도의 길에 꼭 있어야 할 필수과목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구를 용서할 것인가?

이런 질문조차 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이제 그냥 집으로 돌아 가시라 혼내 주는 천사나 사대천왕 동상이라도 만들어 세우면 좋겠다.


사실 성경의 가르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마 18)”는 이 고개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오르는 것보다 훨씬 힘들 것이다.

언덕 위의 바람개비는 고개를 힘겹게 넘는 편서풍을 맞아 신나게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바람이 심했던 용서의 언덕>
<용서의 언덕엔 바람이 심하게 분다. 덕분에 풍력발전용 바람개비들은 신나게 전기를 만들고 있다. 볼륨을 크게 하시길>

용서의 언덕에서 나는 누구도 용서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도 못했다. 그냥 심한 바람과 발밑에 보이는 광경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언덕을 지나서는 다시 N-135를 따라 줄곧 내리막길을 신나게 그러나 조심스럽게 달렸다. 하늘은 여전히 비를 내릴까 말까 고민 중인 오후 서너 시쯤 Punte de La Reina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공립 알베르게보다 비싼 사립 알베르게에 투숙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 완전히 컴컴해질 때까지  투숙객이 나 하나밖에 없어 실망했다. 너무 붐비는 것도 싫지만 적당히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도 순례길에서 즐길 수 있는 재미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빨래도 하고 인터넷도 실컷 썼다.


<왕비의 다리-Punte de La Reina-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

Punte de La Reina – 왕비의 다리. Punte는 스페인, 이태리 말로 다리라는 뜻(프랑스 말로는 Pont)이다. 11세기 스페인의 어떤 왕이 순례자들을 위해 다리를 하나 지어 놓곤 이름을 “왕비의 다리”라고 불렀다. 그 후론 동네 이름도 아예 왕비의 다리가 되었다. 순례자를 위한 다리라면 “순례자의 다리”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데….


어쨌든 그 마을엔 마을보다 더 큰 교회/성당이 있고 교회 안에 우리의 레전드, 스페인의 수호성인 야고보의 동상이 어두운데 서 있다.

나는 이 마을이 좋았다. 사립 알베르게도 좋았고 동네에 있는 어느 식당도 음식이 맘에 들어 좋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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