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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호 Dec 05. 2022

자전거로 떠난 산티아고 7

Day 4(10/28) 와인이 흐르는 고장, 에스텔라

엊저녁에 들렸던, 주인은 무뚝뚝 하지만 음식은 맛 있는, 식당에 아침을 들기 위해 또 들렸다.

<말린 대구 요리,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시지요?>

메뉴판을 들고 한참 고민하다 마침내 내린 결정이 대박이었다.

말린 대구로 만든 요리! 대구의 구수한 맛과 느끼하지도 않고 짜지도 않고 적당히 맵고 바게트에 찍어 먹어도 좋고 그냥 먹어도 좋은 이 요리는 이름하여  “Bacalao Al Ajoarriero”. 북어 맛도 나는 듯했다. 가격은 10유로...


아침에 일찍 문을 여는 식당에서는  대부분  샌드위치나 주스 등 가벼운 식사만 제공하는데 이렇게 따듯하게 요리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으니 대박이 아닌가?


간밤에 잠도 잘 잤고 아침도  든든하게 먹었으니 오늘은 도보길을 다시 도전해 보자!       


Cirauqui라는 이름의 마을이 오르막 길 끝 저 언덕 위에 있다.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이지만 저 아름다운 동네에 도달하기 전에 몇 번이나 쉬어야 했다.  하기야 인생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 자식도 그렇고 어디 공짜가 있나? No pain, No gain!


마을 한가운데는 어김없이 큰 성당이 하나 있고 근처엔 작은 광장이 있다. 그리고 건물 사이로 길이 이어진다고 조가비 그림과 화살표가 안내하고 있다.

잠시 쉬며 육포와 말린 오징어를 먹고 있는데 어떤 분이 어디까지 가느냐 어디서 왔느냐 물으며 귤을 하나 건넨다. 나도 육포와 오징어를 대접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영어를 서툴게 하는 사람끼리의 대화는 때론 웃기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며 무엇보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조금도 문제가 없다. 서로가 귀 기울여 듣고 무엇보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리라.

한쪽의 영어가 유창하면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못하는 영어를 귀찮게 생각하고 무시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래도 나에겐 피해 의식이 있나 보다.  
      

Estella(에스텔라)라는 인심 좋은 마을에는 순례자들 사이에 아주 유명한 “와인 나오는 샘”이 있다. 공짜 와인을 길 가는 나그네에게 무한 공급해 주는 Bodegas Irache(신성한 양조장? 정도로 해석이 될 것 같다)은

근처 수도원이 운영하는 것으로 양조장 옆으로 규모가  포도밭이 보인다. 양조장 외벽엔 수도꼭지가 두 개 붙어 있는데 왼쪽 꼭지에선 붉은 포도주가 오른쪽 꼭지에서는 식수가 나온다. 왼쪽 꼭지 손잡이를 돌리니 붉은색 포도주가 콸콸 흐른다. 이 것이 진정 공짜란 말인가!! 누구 붙잡고 물어보고 싶지만 지키는 사람도 돈 받는 사람도, 돈 받는 기계도 없으니 진정 공짜일 것이라 못 믿을 여지가 전혀 업됴다!


한 모금 마셔보니 아주 부드럽다. 말린 오징어를 꺼내 입에 물고 와인을 한 모금 더 마셨다. 나는 와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와인은 입안을 부드럽게 적시고 목으로는 술술 잘도 넘어간다. 말랐던 오징어가 기뻐서 춤을 출 지경이다.


아예 수통 가득히 담아갈까 생각했지만 혹시 취할 까 두려워 그냥 식수를 담고 말았다. ㅠㅠ

여행이 끝난 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와인을 택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지만 말이다.


이 맘씨 좋은 양조장이 있는 에스텔라에는 슬픈 과거가 있다. 13세기 이 도시에 살던, 인구의 10퍼센트나 차지하던 유태인들이 대량 학살을 당한 처참한 역사가 있고 또 14세기 흑사병으로 도시의 절반 정도 시민들이 목숨을 잃은 비극이 있었다고 한다. 기독교에서 붉은 포도주는 예수의 피를 상징하곤 하는데 이 양조장의 포도주는 역사속에서 그렇게 희생된 사람들의 피를 뜻 하는 것 아닐까?


어느 마을에선가 샌드위치 따위로 점심을 먹고 포장도로를 따라가던 길을 계속 갔다. 작은 고개를 넘어서니 앞에는 평지가 펼쳐지고 이제 적응이 돼서 그런가 몸도 가볍고 자전거도 앞으로 잘 나아간다. 다만, 자전거 안장에 하루 종일 앉아 있다 보니 엉덩이가 살짝 아프지만 까짓것 그 정도야…

그런데 몸이 너무 가볍다 못해 어딘가 허전하다. 아뿔싸! 아차! 헐! 등에 짊어지고 있어야 할 배낭이 없어졌다. 아까 점심 먹던 곳에 내버려 두고 온 것이다. 지언 지앙, 넘어왔던 작은 고개가 다시 넘자니 왜 그렇게 높은 지 게다가 역풍도 불고…. 그렇게 해서 왕복 10킬로를…. 흠 운동을 10킬로...  운동한 셈 쳤다.    

  

아직도 해가 쨍쨍한 3시 조금 넘어 Logrono라는 제법 큰 도시에 도착해 알베르게를 찾는데 자신을 영국 사람이라고 밝힌 어떤 아줌마가 말을 건다. 어디서 왔니, 어디로 가니, 자전거는 빌린 거니 집에서 가져온 거니, 나도 옛날에 자전거 타고 많이 돌아다녔다….. 등등. 그녀가 데리고 다니는 개를 보니 우리 푸디가 생각났다. 정말로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시내로 나가보니 때는 불금 저녁이라 사람들 정말 많고 활기차다. 어느 거리에 들어서니 우리로 치면 먹자골목 같은 곳이 나온다. 다만 스페인식 먹자,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마시자 골목이다. 고풍스러운  골목길 양쪽 선술집은 끝없이 늘어서 있고,  붉은색 포도주와 군침도는 맥주의 향이 포근한 늦가을 낯선 도시를 서성이는 나그네의 코끝을 못 견디게 자극한다. ­

<같은 메뉴를 파는 바는 하나도 없다. 모든 바는 자신만의 메뉴가 있고 손님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이 크다>  
<양해를 구하고 소나 돼지로 짐작되는 동물 허벅지 고기를 아주 얇게 자르고 있는 장인의 작업 모습을 담았다>


 이 골목에 떡볶이, 파전, 어묵, 튀김, 부침, 순대 등등의 음식을 갔다 놓으면 어떨까? 스페인이 뒤집어지겠지, 아무렴!!-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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