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비교적 평탄한 길, 강한 바람이 뒤에서 불어와 도움이 됐다. 덕분에 77Km를 주파했다.
에피소드 하나 – 로그료뇨 시내를 벗어나 서쪽으로 조금 달리다 보면 그리 크지 않은 호수가 하나 나타난다. 둘레가 한 3-4킬로 정도 될까? 그런 정도의 호수인데 순례길 표지석에 새겨진 화살표는 호수 오른쪽으로 돌아서 가라고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휴대폰 구글 지도는 왼쪽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어느 쪽을 택해도 결국엔 오른쪽 길과 다시 하나로 만나기 때문에 나는 왼쪽 길을 택했다. 고리타분한 표지석 보단 첨단의 GPS 기술을 선호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님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고...
조금 가다 보니 반대편에서 10여 명이 그룹을 지어 달려오다 나와 맞딱 드렸다. 그 지역 달리기 동호회 주말 아침 달리기 행사인 듯했다. 멤버도 남녀노소 다양했다.
그중 나이가 제일 많이 들어 보이는 분이 내 앞에 멈추더니 마치 월드컵 축구 가나전을 감독하던 벤투호처럼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알 수 없는 스페인(?) 말로 내게 무어라 한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순례길은 이쪽이 아니라 저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 같았다.
나는 웃으면서 전화기를 보이면서 나도 잘 알고 있고 결국은 두 갈래 길이 다시 만나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다.
그는 못 알아 들었는지 전화기를 볼 생각은 안 하고 자기 일행을 보고 뭐라고 하더니 돌연 방향을 180도 바꾸어 내가 향하는 쪽으로 앞서 뛰어가며 나보고 따라오라고 한다. 일행 중 몇 명은 무어라 투덜 대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 들은 방향을 바꿔 그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나도 할 수 없이 속도를 늦추며 그들 뒤를 따라갈 밖에…...
표지석이 보이는 길이 나오자 그는 손짓으로 저쪽으로 가라고 일러주었다.
죄송하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정열적이고 그래서 다소 사나워 보인다는 선입견이 내게 있다. 남자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고 물론, 그분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나는 나의 선입견이 정말 선입견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약간의 지체가 있었지만 나는 그들이 참 고마웠다. 자기들도 계획된 루트가 있었을 텐데, 멀리서 온 나그네를 위해 경로를 바꾸다니. 물론, 그들은 스페인이 보유하고 있는 이 문화적 자산, 즉 순례길이, 이 자랑스러울 게다. 그리고 스페인에 끼치는 경제적인 파급 효과도, 그 중요성도 잘 알고 있을게다. 그러나 어쨌든, 참 고마웠다. 다시 보자 스페인 사람들!
도중에 같이 여행하는 에너지 넘치는 쾌활한 한국 아가씨 다섯 명을 만났다. 몸은 지쳐 보였지만 친구들끼리 함께하는 여행이라 무척 행복해 보였다.
<별이 흐르는 마을, 은하수를 따라가는 나그네의 그림이 어느 시골 호텔 외벽 한가득 그려져 있다>
작은 마을 Belorado의 시립 알베르게에 도착해 오늘의 여장을 풀었다.
샤워를 하려고 보니 샴푸가 눈에 띄질 않는다. 자전거 장갑도 잃어버렸고…. 어제는 슬리퍼 한 짝(그래서 나머지 한 짝도 그냥 버렸다)을 잃어버렸는데, 참 내…
덕분에 짐이 좀 가벼워졌다.
식당이 8시나 연다고 해서 가까운 식료품점에서 삼겹살과 상추, 양파를 사서 알베르게에서 구워 먹었는데 소금도 없고... 물론 쌈장은 기대도 안 했지만… 어쨌든 먹었다.
<삼겹살과 메추리 알 그리고 일본 라면은 훌륭한 식사가 되었다>
알베르게에서 그 브라질 친구를 또! 만났다. 워낙 낯선 곳에서 혼자 여행하다 보니 말도 안 통하는 그 친구와 반가운 마음으로 근처 바에 가서 시원한 맥주 한잔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