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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호 Dec 13. 2022

자전거로 떠난 산티아고 9

Day 6(10/30) Belardo에서 Burgos

오늘의 단상 몇 가지....

1. 자연의 이치, 특히 중력과 싸우지 마라.

중력은 질량을 사정없이 잡아당긴다. 나의 몸, 자전거, 지니고 다니는 물건들은 모두 질량이라는 속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덕을 오를 때 중력은 그 모든 질량의 합만큼 나를 밑으로 잡아당긴다. 짐을 가볍게 하라. 필요한 물건도 중력과의 싸움에서 불리한 요소로 작용한다. 심지어 에너지 보충을 위해 지니고 다니는 비상식량도 중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므로 필요 이상의 비상식량은 지니고 다니지 말라.

 다운힐에서도 중력은 꼭 내편이 아니다. 돌밭 등에서 더 쉽게 미끄러질 수 있고, 어쩔 수 없이 미끄러지는 경우에는 충격이 더 크다. 속도를 줄이거나 정지를 하는 것도 더 힘들어진다. 짐의 무게는 브레이크 성능이나 자신의 라이딩 기술에 걸맞게 정하라.  


재산도 그럴까? 재산이 많아서 걱정한 기억이 나에겐 아직 없어서 모르겠다.


2. 길은 여러 갈래다. 꼭 표시된 길로만 갈 필요 없다. 표시된 길은 누군가에 좋겠지만 나에게도 꼭 좋으리란 법은 없다. 경치가 더 좋은 것도 아니고 더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도 아니다. 돌아도 가고 편한 길로도 가고... 정답은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잘 나가는 줄 알았던 사람이 헤매는 경우도 종종 있고 그 반대도 있다.


3. 자전거는 꼭 편리한 이동수단이라는 자산(Asset)만은 아니다. 때로는 끌고, 밀고, 들고 가야 하는 책임져야 할 짐(Liability)이기도 하다.


내가 소유한 재산이나 인맥도 때로는 자산이기 보다는 나에게 Liability가 된다.


4. 문명을 잠시 떠나 자연에 던져진 상태로 이렇게 먼 길을 가야 할 경우, 나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아주 기본적/원초적인 도움이다. 가령, 목마를 때 건네받은 물병이나, 배고플 때 방 한 조각, 그리고 격려의 한마디면 감동받기 충분하다.

일상에서 비슷한 도움을 받아도 비슷한 강도의 감동을 느낄까? 오히려 모멸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문제는 도움의 크기가 아니라 도움을 주고받을 때의 상황이다.


상황에 맞게 처신하라.


<빗줄기가 뜸해질 무렵 도착한 작은 마을, 오르테가의 산후앙>
<이베리아 반도 북쪽 부르고스 근처, 백만 년 전에 이곳에서 살았던 인류의 흔적이 화석으로 발견되었는데 학자들에 의하면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넘어왔다고 한다>
<수직으로 세워져 있는 큰 바위는 고대 인류가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데 규모면에서는 잉글랜드 남부에 있는 스톤헨지보다 작지만 패턴에 있어서는 비슷한 것 같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돌길을 따라 가파른 고개를 오른다. 사위는 바람소리뿐>
<돌길이 급기야 돌 밭으로 변했다. 이런 곳으로  자전거를 끌고 가야 한다니..... 아니 자전거를 들고 갔다. 후회막심>
<한국인의 파워를 실감케 하는 시골 버려진 버스 창문에 그려진 태극기, 순례길 내내 의문이 들었다. 왜 이렇게 한국 순례자들이 많을까?>


<Burgos에도 역시 커다란 성당이 있다. 마리아 성당. 도시보다 더 크다. 저렇게 큰 건물을 지으려면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랐을까? >
<부르고스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 이렇게 시설이 좋은 알베르게는 처음이다. 여기서 또 브라질 친구를 만났다.

엉덩이에 물집이 생겼다. 오른쪽에 하나 왼쪽에 하나, 쓰라리다. 싸구려 판초가 심한 바람에 찢어져 방석 삼아 안장에 덧대고 탔지만 그리 도움이 되질 않았다.

알베르게에서 브라질 친구를 또 만났고, 그 친구가 준 연고를 상처에 바르고 다음날 아침 자전거 패딩과 엉덩이에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장거리 운행시 바르는 윤활유를 발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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